[테마여행]바다 한가운데 내려앉은 천사

2006. 4. 13.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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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프랑스 <2>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

우뚝 솟은 에펠탑을 등지고 봄기운이 완연한 곳을 찾아 프랑스 서북부에 위치한 노르망디 해안으로 달려갔다. 기차에 몸을 싣고 복잡한 파리를 30분 정도 벗어나자마자 새파란 잎사귀가 봄바람에 춤을 추고. 푸른 초원 위에서는 예쁜 양들이 풀을 열심히 뜯으며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역시 시골에서 자란 태백촌놈(필자의 별명)에게는 화려한 도시보다는 소박한 꿈이 무럭무럭 자라는 시골이 좋다. 산과 바다를 보면 어머니 품안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데 고층빌딩 숲은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고질 병이 프랑스에서도 발병해. 할 수 없이 파리를 떠나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노르망디로 몸을 옮겼다.

영국 해협과 이마를 맞대고 있는 노르망디 지방은 벨기에인과 켈트인이 처음으로 정착했고. 로마 시대에는 시저에게 정복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으면서 도시의 명맥을 이어 왔다. 지금은 프랑스의 낙농 지역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원래 이곳은 여러 인종들에게 지배를 많이 받았다.

그 이유는 노르망디 지역의 토양이 비옥한데다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아름다운 해변이 끝없이 펼쳐지고. 맑고 청정한 날씨가 사람들의 발길을 재촉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르망디 해안을 찾는 이유는 아마 프랑스 건축사에서 가장 빛나는 '몽생미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모 항공사의 광고에도 등장한 몽생미셸은 오롯이 천 년의 모진 풍파를 이겨 내고 늠름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바다 위로 솟아 있는 수도원이다.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 지은 수도원

퐁토르송이나 렌 기차역에서 버스를 타고 바닷길이 열린 제방을 따라가니 멀리서 수도원의 첨탑부터 시작하여 짙은 갈색의 건물들이 차례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다소 무뚝뚝하고 배타적인 인사를 건넨다. 천 년의 역사를 모질게 겪은 수도원답게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그리 상냥하지도 새색시처럼 수줍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거칠고 남성다운 씩씩함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수도원 앞에는 옛날의 자취를 알 수 있는 바닷물이 고여 있다. 옆으로는 푸른 잔디 위에서 순한 양들이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으며 노르망디가 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몽생미셸의 전체 이미지는 프랑스 여행지로 손색이 없을 만큼 사람들에게 궁금증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바위 산 전체가 마치 하나의 수도원 건물처럼 보이고 눈이 부실 만큼 푸른 하늘 밑에 서 있는 둘레가 900m. 높이가 78.6m나 되는 몽생미셸의 웅장함은 찾는 이로 하여금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몽생미셸은 708년 아브랑슈의 주교였던 생 토베르가 꿈속에서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 지었다고 한다. 수도원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생 미셸은 대천사 성 미카엘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프랑스의 슬픔을 간직한 수도원

바다 한 가운데에 놓여 있는 화강암 위에 세워진 수도원은 밀물이 몰려올 때는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유일한 출입구인 '왕의 문'이 닫히는 순간 개미 한 마리조차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아주 완벽한 성채를 보는 듯하다. 원래 이 섬은 시시이 숲 가운데로 솟아난 작은 산이었는데 오랫동안 자연의 침식 작용으로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15m나 될 정도로 컸고. 파도 또한 매섭고 사나웠다. 중세에 성지 순례를 위해 이곳을 찾은 수도사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아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지금은 1875년 육지와 연결시킨 퐁토르송 방파제가 있어 더 이상 만조 때 수도원이 완전히 물에 잠기지는 않지만 주변에 조용하게 움츠리고 있는 바다가 마치 발톱을 감춘 호랑이처럼 느껴져 예사롭지가 않다.

처음 이곳은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시작했지만 천해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종교 목적과는 달리 프랑스의 위정자들에 의해 항상 정치적으로 악용되었다. 14세기 '백 년 전쟁'때에는 프랑스가 영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 높은 방어용 벽과 탑을 쌓아 해군 전략기지로 요새화 되었다. 또 나폴레옹 시대에는 정치범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옛 모습을 다시 찾아 베네딕트 수도회 수도사들이 평온하고 조용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여행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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