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 당신의 선택은?

2006. 4. 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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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형준 기자] 1980년대에 '제이슨'과 '프레디 크루거'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할리우드에서는 주로 유령이나 기이한 심령 현상을 다루는 공포물들이 주로 제작됐다. 그 시절을 대표하는 공포 영화로는 오컬트 마니아들이 지금도 열광하는 <엑소시스트> 시리즈가 있으며, <아미티빌> 시리즈 역시 비디오 시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속편을 제작하는 저력을 과시한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엑소시스트>가 다뤄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엑소시즘(악마 퇴치 의식)'에 관한 영화다. 소재가 그런 만큼 할리우드에서는 이 영화가 그 유명한 오컬트 고전 <엑소시스트>를 표절했다는 소문도 나돌았지만, 영화를 직접 본다면 그런 생각까지는 들지 않을 것 같다.

여름이 우리를 찾아오려면 다소 시간이 남아 있어, 다소 뜬금없는 시기에 개봉한다는 생각도 들지만, 미국 현지에서는 예상 외로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준 관객과 평론가도 많았고, 1976년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전해진다. '실화'라면, 우리는 그것을 '과장'이라고 의심하면서도 보게 되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공포'가 아닌 '법정 스릴러'

▲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의 포스터
ⓒ2006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

아쉽게도 이 영화는 공포 장르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절반의 관객에게는 실망을 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제법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 반대의 관객에게는 여전히 어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영화는 이제 아예 구성 자체가 도식화된 보통의 공포 영화와는 달리, 영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부터 차별화를 시도한다. 관객이 생각하는 공포영화라면 살인마나 유령이 등장하면서 몇 번의 '깜짝 쇼' 끝에 허무한 결말과 함께 크레딧을 올리는 것이 상식 아닌 상식이 됐는데, 이 영화는 특이하게도 '차분한' 법정 스릴러임을 표방한다. 그렇다고 '반전'을 앞세운 피곤한 스릴러 영화도 아니다.

악마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는 '새벽 3시'가 되면, 매번 잠에서 깨어나 고통에 시달리던 '에밀리 로즈(제니퍼 카펜터)'는 '무어 신부(톰 윌킨슨)'가 주도하던 엑소시즘 도중 사망하고 만다. 결국 '무어 신부'는 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면서, 무신론자임을 표방하는 여성 변호사(에린 브루너)의 변호를 받게 된다.

이 영화는 장르의 특성상 잘 나간다는 흥행 배우는 없지만, 모두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과 목소리를 가진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재판의 진행을 맡은 판사는 물론이고, 검사와 변호사까지 모두 차분하다. 심지어는 피고인이 된 '무어 신부'까지도 무죄를 주장하기보다 조용히 자신의 입장 전개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이 영화가 공포 장르임을 보여주는 장면은 오직 '에밀리 로즈'를 맡은 제니퍼 카펜터의 미쳐버린 연기 뿐.

예상을 뒤엎는 이 차분한 이야기 전개는 '반전'이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긴장감 있는 구성'이라는 진정한 매력을 살리고 있지만, '에밀리 로즈'로 등장하는 제니퍼 카펜터의 연기도 살리는 이중 효과를 연출한다. 이제 막 배우의 길을 걸은 20대 여배우로서는 출연을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을 법한 연기들이 대부분이라 놀랍기까지 하다.

그녀의 연기를 보면, 데뷔 때부터 '예쁜 연기'만 고집하다가 고질적인 연기력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신인 여배우들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우리나라의 영화 관객이나 드라마 마니아들도 이제는 연기력을 눈여겨본다는 사실을 이제 그녀들도 알아야 한다. 배우로서의 수명을 스스로 늘리고 싶다면, 영화 관객과 드라마 마니아들의 그런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에밀리 로즈'를 연기하는 제니퍼 카펜터. 험한 연기를 가리지 않는 그녀가 놀랍다.
ⓒ2006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

'사실'을 볼 것인가? '진실'을 볼 것인가?

심령 현상이나 무속 신앙은 현실에서는 무시당하기 일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말하는 '증거'는 우리의 눈으로 확인이 안 된다는 점도 그렇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냐는 것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의 변호사 '에린 브루너(로라 린니)'는 '사실(fact)'을 요구하는 검사에게 '진실(truth)'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있거나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의미하는 '사실'이 눈 앞에 보이는 현상이나 사물을 중시하는 뜻으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지는 단어라면, '진실'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더 깊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왜 귀신에 호기심을 갖고, 과학이 부정하는 일부 현상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갖는지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다면, '에린 브루너'의 변론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신부의 변호를 맡으면서 '무신론자'로서의 정체성에 혼동을 느끼는 '에린 브루너'의 모습도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악령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관객은 혼란에 사로잡힌 '에린 브루너'를 보며 다시 한 번 의문을 느낄 것이다.

그렇듯 '사실'과 '진실', 신(神)의 존재 유무라는 큰 갈림길을 돌아보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그런 탐구 정신 덕분에 특별한 공포 영화가 됐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의 '깜짝 쇼'를 제외하고는 공포 영화의 이야기 전개와는 거리가 멀어, 극단적인 공포를 맛보길 원한다면 이 영화에 대한 흥미는 반감될 것이다.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한편의 차분한 법정 스릴러다. 이 영화만의 그런 특성을 충분히 파악하며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모처럼 뭔가 남는 공포 영화를 봤다는 유익함을 즐길 수 있다.

▲ 이 영화는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사실'과 '진실'에 대한 공방전이 주된 이야기다.
ⓒ2006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

/박형준 기자

덧붙이는 글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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