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첼의 거침없는 힘과 위력에 압도당하다

2006. 3. 21. 11: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형순 기자]

▲ '조안 미첼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소격동 소재 국제갤러리 입구
ⓒ2006 김형순

조안 미첼(Joan Mitchell)은 잭슨 폴록, 윌렘 드 쿠닝, 로스코 등 1세대 추상표현주의 대가의 뒤를 이은 2세대 여성 작가로 그의 개인전이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4월 4일까지 열린다. 연대기별로 2층에는 50~60년대와 1층에는 70~80년대 16편 작품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 작품 가격만 해도 400억대가 넘는다 한다.

미첼은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비교적 평온한 삶을 마무리한 드문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아버지는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였고 그의 어머니는 시인이자 잡지사 편집자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술과 문학에 일찍 눈을 떴고 명문 미술대인 시카고 인스티튜드 석사과정까지 마쳤고 또한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공부했다.

조안 미첼(Joan Mitchell, 1925~1992) 프로필
▲전시장 입구 모자이크된 작가 사진. 조안 미첼이 애견과 수영 등을 좋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력 및 학력>

1925 2월12일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

1947-50 시카고 인스티튜드 학사, 석사 졸업

1948-49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여행

1950 뉴욕 컬럼비아 대학 졸업 1955 프랑스로 이주

1992 10월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

<개인전>

2006 '조안 미첼개인전' 국제갤러리(서울)

2002 '조안 미첼회화전' 휘트니 미술관(뉴욕)

1999 '미첼회화-드로잉전'(월커아트센터, 미네소타)

1994 '미첼전-80년대'(죄드폼 미술관, 파리)

<수상 경력>

1971 마이애미, 옥스퍼드, 오하이오 대학 명예박사

1973 브랜다이스(Brandeis) 대학 미술 대상

1989 프랑스 문화부 장관상 1991 파리시 미술대상

그는 반 고흐, 세잔, 마티스, 칸딘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49년 이후에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표현추상주의 서클인 아티스트 클럽(Artists' club)에 가입했고 당대 대가들인 쿠닝, 폴록, 클라인, 호프만 등과 교류했다. 1952년 뉴욕 '뉴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미첼은 뉴욕 생활에서만 매달리지 않고 1955년에는 캐나다 화가인 리오펠(J. P. Riopelle)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고 1959년 이후에는 파리와 뉴욕을 오가면 작업을 했으며 1967년 이후에는 아예 파리 근교 베테유(Vétheuil)에 상주하며 그림을 그렸고 1992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어린 시절 추억

작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시카고 미시간 호숫가와 그때 받은 정감 넘치는 추억을 그림의 밑바탕으로 삼았다고 한다. 잃어버린 천국 같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의 수수께끼 같은 작품 어딘가에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런 행복감이 없었다면 이렇게 감동과 에너지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 같다.

작가의 이런 심정을 인용한 갤러리 홈페이지 작가의 세계 중 일부를 여기에 소개한다.

"내 그림은 미시건 호수, 물 혹은 광야에 대한 내 감정을 시(詩)로 반복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내가 그리고 싶은 것입니다. 커다란 호수 그 바람과 날씨, 부서지는 파도처럼 항상 나의 악몽 속에 나타났습니다."

▲ '무제(Untitled)' 1957 유화 241.3×224.2cm 30대 초반의 역동적 힘이 넘치는 작품으로 응집된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추상표현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2006 김형순

추상표현주의, 미국 독자 미술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황폐된 유럽과 다르게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고 비약적 발전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이런 시대적 조류에 발맞추어 미국 미술도 유럽의 영향권에서 벗어서 독자노선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때 생긴 미술 사조가 '추상표현주의'이다. 일종의 미국 미술의 독립선언이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은 물론 폴록(J. Pollock)이다.

18세기 우리에게 단원이나 혜원이 있었다면 20세기 미국에는 폴록이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도 뭐라 말할 수 없는 통쾌하고 짜릿한 해방감을 준다. 신대륙에서 뿜어 대는 폭발적 힘과 엄청난 에너지, 내적 충동을 무한대로 확대하여 표출시켰다. 그 속에 담긴 자발성과 자유분방함, 새로운 비전에 대한 도전과 실험 정신은 끝이 없어 보인다.

▲ '무제(Untitled)' 1961 유화 101.6×171.5cm 30대 중반의 작품으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붓질을 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2006 김형순

추상표현주의라는 말은 1929년 미국 미술평론가 알프레드 바(A. Barr) 2세가 미국 웰슬리 대학 강의에서 칸딘스키 추상화를 설명하다가 '형식은 추상적이지만 내용은 표현적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추상표현주의는 유럽의 야수파, 표현주의, 다다이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계보와 입체파, 후기인상파, 기하학적 추상 등 복합적인 요소를 거친 후 미국에 건너가 일어난 아주 진화된 미술 운동이다. 칸딘스키의 지적대로 눈에 보이는 자연이나 풍경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주관이나 사유를 표현한 것이다.

미첼은 모든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난 다음 얻어지는 순수한 추상을 중시했다. 수면에 비친 빛의 반짝임이나 또는 호수에 비친 도시의 불빛을 보면서 떠오르는 추억을 직관과 주관으로 받아쓰기 하듯 그렸다. 작가는 자연이 그에게 남겨 준 세계만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추상화 과정은 아래 그림에서 보듯 굉장히 힘겹고 까다로워 보인다.

▲ '무제(Untitled)' 1977 유화 194.9×228cm '무제'란 글로서 표현할 수 없을 때 쓰이는데 추상화에서는 이 제목이 더 적격이다. 이 그림은 현대화된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시킨다. 다른 작품과 다르게 내면의 감정을 최대로 절제한 모습이다
ⓒ2006 김형순

액션 회화과 색면(色面) 회화

추상표현주의에도 '액션 회화(페인팅)'와 '색면(color field) 회화'라는 두 흐름이 있는데 조안 미첼은 후자에 속한다. 전자가 붓 대신 몸을 던져 물감을 뿌리거나 붓는 드리핑 기법으로 작가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후자는 색채를 회화 언어의 기본으로 삼아 각자 내면의 사유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첼은 본능적 감정이나 반응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으며 여기에 철학적 의미까지 부여했다. 전쟁의 허무를 극복하고 존재 영역을 넓히려 했다. 하지만 이 색면 회화의 대표격인 로스코(M. Rothko)는 결국 이 허무를 극복 못하고 1970년 자살하고 만다. 아이러니컬하게 그의 그림은 오늘날 반 고흐 이상으로 미술 시장에서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 '사이프러스(Cypress)' 1980 유화 220×360cm 반 고흐의 존경심에서 그런 것으로 남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그런 것이란다
ⓒ2006 김형순

1980년 작인 '사이프러스'와 '미네소타'의 노란색이 유난히 돋보인다. 자꾸 고흐의 해바라기를 연상시킨다. 어디에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노란색, 청색, 검은색, 보라색이 여기서는 추상적 색채 언어가 되어 친밀감과 소외감, 애정과 연민, 고통과 행복 등 상반된 것으로 부딪치며 사람들 내면의 욕구를 분출시키는 것 같다.

▲ '미네소타(Minnesota)' 1980 유화 259.1×619.8cm 미첼에겐 추억을 담은 장소 미네소타, 거기서 본 울창한 숲이 보이는 것 같고 가운데 넓은 노란색 공간은 그곳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 검은색 선은 초원을 둘러싸는 울타리 역할을 하는 것 같다
ⓒ2006 김형순

마음 사로잡는 마력

조안 미첼의 그림을 직접 보면 우선 그 크기에 놀라고 붓끝에서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힘과 위력에 압도당한다. 미첼이 젊어서 수영 선수였고 스포츠를 즐겼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렇지 않고 이런 대작을 그릴까 싶다. 광활한 미 대륙의 기상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조각보에서 보는 추상에 익숙한 우리에겐 이런 그림도 재미있다.

한 도슨트(작품 해설자)의 말을 빌리면 처음 여기 와서 그림을 본 사람도 다시 그의 그림을 보러 오고 싶다고 말하는 관객이 많단다. 미첼이 한국에서는 그리 많이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이번을 계기로 미첼 고정 마니아가 생길 소지가 많아 보인다. 왜냐하면 작가가 내뿜는 엄청난 에너지가 관객들 몸으로 그대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 '에드리타 프리드(Edrita Fried)' 1981 유화 299.7×800.1cm 작가 친구인 정신과 의사를 기리는 제목이 붙어 있으며, 인간적 교류를 통해서 얻어진 내적 성찰과 깨달음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2006 김형순

이번 전시회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작가가 50대 중반에 그린 '에드리타 프리드'라는 작품이다. 한 정신과 의사를 의인화하고 그 내면을 색채화한 것 같은데 여기 노란빛은 붉은 태양빛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거기다 보색으로 잘 어울리는 맑고 투명한 청색은 더없이 황홀하여 시각적 엑스타시를 맛보게 한다. 색채를 통한 이런 정화는 또한 생의 의욕과 충만감을 북돋운다.

뜨거운 추상 계보

조안 미첼은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보다는 칸딘스키의 뜨거운 추상 혹은 서정적 추상의 계보를 잇고 있다. 조안 미첼에게 초기에 초현실적 자동기술법도, 주관적 개성을 강조하는 원색 야수파의 색채도 가미했겠지만 위 작품들에서 보듯 칸딘스키 대표작 '즉흥(1914)' 등에 못지않게 독특하고 고유한 자기만의 색감을 채득했다.

▲ '강(Rivière)' 1990 유화 280×400.1cm 센 강을 보고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강물이 사람들 마음 위에 넘치는 것 같다. 색채 배합이 생동감이 넘치고 다채롭다
ⓒ2006 김형순

또한 우리가 미첼 그림에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대담한 생략, 여백의 존중, 힘찬 속도감으로 이어지는 우리 문인화 전통이 서양의 추상성과 통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미국의 추상파 화가들은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디언 미술, 멕시코 벽화, 동양화에 관심이 컸단다. 클라인(F. Kline)의 '뉴욕(1953)'를 보면 우리 서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재단 통해 작가 후원

미첼은 캔버스를 새로운 이미지가 탄생하는 커다란 장(field)으로 보았고 이를 십분 활용했다. 게다가 작가의 무한대 자유와 상상이 더했으며 작가적 역량을 유감없이 펼쳤다. 작가는 말년에 이 모든 것에 감사했고 그의 유작처럼 '고마워요(1992)'라는 작품을 남겼다. 이렇게 고백할 정도로 그는 분명 행복한 화가였다.

작가는 자신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전한 망아지경에 빠졌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런 상태는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 순간이 너무 감미로워 늘 염원한단다. 이것이 바로 이 화가의 절대적 창조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 '고마워요(Merci)' 1992 유화 280×400.1cm 작가의 축복받은 생애를 회고하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2006 김형순

하여튼 그는 미국에서 같은 여자 작가로 '오키프(G. O'Keeffe)' 이후에 미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고, 팝 아트, 미니멀 아트를 거쳐 신표현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작가의 유언에 따라 미첼 재단도 생겼다. 이번 전시회도 그 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작가 중에도 서도호씨와 이형구씨가 창작 활동에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 국제 갤러리 '미첼전' 작가 소개 영상물과 색다른 기획은 돋보였으나 다만 전시 공간이 그림에 비해 좁고 주말 오후 관람 시간이 짧아 좀 아쉬웠다.

/김형순 기자

덧붙이는 글국제갤러리 홈 http://www.kukje.org 입장료 5000원전화 02)735-8449 팩스 02)733-4879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59-1화-금 10:00~18:00, 토-일 10:00~17:00, 월요일 휴관조안 미첼 재단 홈 http://fdncenter.org/grantmaker/joanmitchellfdn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