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투혼, '독고탁'과 '설까치'가 보고 싶다

2006. 3. 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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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형준 기자] 추억의 그 시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까? 지금도 그렇지만, 몇 십 년 전 그 때 어린이들은 명절을 무척 좋아했다.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어른들이 주시던 약간의 용돈이었다. 물론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부담스럽기만 하다. "엄마한테 맡겨야 한다"는 이유로 엄마 지갑 속으로 들어간 그 돈을 그 이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어린이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용돈 못지않게 중요한 것들이 또 있었다. 오전 무렵 방영하던 특집 만화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아기공룡 '둘리'의 '지구 적응'도 명절에나 볼 수 있었고, 모처럼 만나보는 반가운 얼굴인 '머털이'도 명절 오전에는 마음껏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인기 야구 선수 캐릭터 '독고탁'과 '설까치'도 명절에나 볼 수 있는 주인공들이었다.

1970~1980년대에 주로 유행했던 스포츠 애니메이션의 대표적인 주인공 '독고탁'('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등 독고탁 시리즈)과 '설까치'('까치의 날개')의 인기는 '국딩 세대'(국민학교 세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본 스포츠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초딩'들을 바라보며, 순수 국산 애니메이션에 열광했던 '국딩'들의 추억을 되새김하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월드 오브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에서 미국 야구대표팀을 물리치는 파란을 일으킨 한국 야구대표팀의 활약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애니메이션 속 '설까치'와 '독고탁'을 돌아보자.

"그런데 그들은 왜 엄마가 없지?"

▲ '독고탁'의 첫 시리즈 <독고탁, 태양을 향해 던져라>
ⓒ2006 (주) 대원동화

이건 그 당시의 웬만한 국산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에게는 모두 해당되는 공통점이다. 우리는 '둘리'와 '하니'가 "엄마"를 외치는 것을 지켜봤다. '설까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소년이며, 아버지를 잃은 '독고탁'은 어머니와 어릴 때 헤어졌다.

만화는 알게 모르게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 당시의 인기 캐릭터의 고난은 '어머니의 부재'로부터 비롯되며, 궁극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위해 노력하던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그 속에 숨어 있다. 인간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마음 한구석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을 그리워하게 된다. 만화 캐릭터들에게 '어머니'는 때때로 원망의 대상이지만 결국 그리움과 희망의 원동력이 된다.

상당수 인기 캐릭터들이 '어머니의 부재'에 시달리다 보니, 식상하다면 식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를 견뎌내며 노력해온 한국인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 정겨움이 느껴진다. 그 시절 만화들이 추억이 되는 이유는 그 속에 그런 공통의 기억과 향수가 있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은 비슷한 가정환경 속에서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늘 밝게 지내려 노력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설까치'는 아버지가 '오씨 아주머니'에게 동정 반, 사랑 반의 감정으로 결혼을 결심하면서 방황하지만, 늘 밝은 '까치'에게 그 시절 어린이들은 많은 애정을 주었다.

'독고탁'과 '설까치'

이상무 원작의 '독고탁' 시리즈는 총 3부작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기억상실증에 걸린 '독고탁'은 2부인 <독고탁, 다시 찾은 마운드>에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독고탁'이 그를 구해준 음식점 주인의 아들인 '김준'을 찾아갔다가, 날아오는 야구공을 맨손으로 잡는 장면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설까치' 시리즈는 이현세 원작으로 총 2부작이다. '설까치'는 '독고탁'과는 달리 아버지와 어렵지만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 시절 '국딩'이었던 지금의 20대라면, 아침에 '국민학교'에 등교할 때마다 학교 스피커에서 울렸던 음악 중에 이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마동탁'이나 '엄지' 등, 이현세 만화에는 반드시 나오는 이름들은 지금 보면 정겹기까지 하다.

두 캐릭터는 포지션이 모두 '투수'였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마구'로 통하던 '더스트볼'을 던지는 '독고탁'이나, 마니아들 추측으로 시속 170km 이상 강속구를 던지는 '설까치'는 타자들이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구위와 구속으로 시대를 풍미했다.

'잠수함' 스타일의 '독고탁'과 전형적인 강속구 투수인 '설까치'는 그렇듯 저마다 다른 매력으로 그 당시의 야구 마니아들과 어린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김성모의 야구 만화 <스터프>에서 주인공 '강건마'가 시속 166km의 공을 던진다는 데 굳이 놀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독고탁'과 '설까치' 그들이 왜 생각나는 걸까?

야구 마니아라면 누구나 빠른 공에 열광한다. 박찬호도 빠른 구속이 눈에 띄어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수 있었으며, 메이저리그는 지금도 100마일(약 시속 161km)대 투수를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빠른 속도의 공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탈삼진의 짜릿함을 야구 마니아라면 누구라도 환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캐릭터들은 야구 마니아들이 지금도 자주 이야기하는 캐릭터들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한국 투수들의 스타일에 따라 어떤 선수는 '독고탁'과 비교되며, 어떤 선수는 '까치'와 비교된다. 마니아들이 그들을 단순히 스포츠팬으로서가 아니라, 그 시절의 '추억'을 느끼게 해주기에 동질감을 느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WBC 8강 리그 미국 전 승리 소식을 듣고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야구대표팀 선수들은 야구 변방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은근한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전해지기에 그 승리가 더 짜릿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쁜 것은 그들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다. '독고탁'과 '설까치'도 자신의 재능에 치열한 연습을 보탠 캐릭터들이었다.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만화들은 사람들이 야구와 축구 등의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고 환호하는 이유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만화들이었다.

/박형준 기자

덧붙이는 글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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