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왜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나"

2006. 2. 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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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희용/박수원 기자]

ⓒ2006 장희용

지난해 5월 20일 노무현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 이례적으로 참석하는 일이 벌어졌다. KBS시사프로그램인 < 추적 60분 >에 부도 임대 아파트의 문제점이 보도된 것을 보고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을 이 자리에 직접 불러 대책 마련을 지시하기 위해서 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공 임대 아파트 정책과 관련해 공무원들이 사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정책에 따라 발생하는 일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책임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정도로 부도 임대 아파트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방에서 민간건설사가 짓는 임대아파트는 주로 국민주택기금을 융자받아 건설된다. 일명 민영 임대아파트. 민영 임대아파트의 경우 임대 후 2년 6개월~5년 이후에 분양 전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민영 임대 아파트를 건설한 업체가 부도를 맞게 되면 은행보다 후 순위 담보권자로 설정되기 때문에 확정일자를 받아도 임대아파트 입주자들은 보증금 대부분을 돌려받지 못한다. 특히 은행이 부도 업체의 아파트를 경매로 넘길 경우 임차인들은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날 위험마저 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6월 건교부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부도 임대 아파트 대책. 하지만 이 대책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지만...

"부도 임대아파트 임대보증금 전액 보장하라!"

"부도 임대아파트 책임자 즉각 처벌하라!"

"부도 임대아파트 관리소홀, 수수방관 관계기관 각성하라!"

"임차인만 죽어나는 부도 임대아파트 대책 필요 없다. 특단 대책 마련하라!"

16일 오후 전북 군산시청 앞 도로에서 군산 부도 임대아파트 입주민 1200여명이 '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 전북연대회의 출범 및 부도 아파트 주거생존권 보장 특단 대책 촉구대회'를 열고 부도 임대아파트 임대보증금 전액 보장과 부도 임대아파트에 대한 정부의 특단 대책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추운 날씨에도 어린아이와 노인, 주부, 직장인 등 부도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이 대거 참가했다. 수송동 동영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밝힌 소은선씨는 "이 아파트에 6년째 살고 있는데, 현재 다른 곳에 집을 마련하고도 보증금 반환이 되질 않아 새 집으로 이사를 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집회 참가자들 중에는 수년 전 부도 임대아파트에 살다 보증금 상당액을 떼이고 다른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 또 다시 부도를 맞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임대아파트 거주자가 많은 군산의 상황이 작용한 것. 집회 맨 뒤에 있던 김모씨는 "부도가 난 후 그나마 군산에서 괜찮다는 임대아파트로 갔는데, 이번에 또 부도가 났다"면서 "진짜 괴롭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20~30대의 경우 최후에 가서는 어쩔 수 없이 높은 가격에라도 분양을 받아 그 돈을 차츰 갚아나갈 수 있지만 하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 분들은 대출을 받아서 갚을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정부가 우리 같은 서민들의 애환을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면서 정부대책을 주문했다.

현재 법원에 경매가 신청된 소룡동 신도시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 입주민은 "부도로 인해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갈 경우 2400만원의 임대보증금 중 법적으로 보장된 1200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면서 "한 순간에,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1200만원을 날리게 생겼다"며 울먹였다.

집회 현장 곳곳에서는 과격한 발언도 잇따랐다.

"그 ××들이 임대 아파트에 살아봤겠느냐? 자기들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 우리 같은 서민들 마음 쥐꼬리만큼이나 이해하겠느냐?"

"이 나라는 힘없는 사람들 목소리는 사람 소리도 듣지도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억울한 건 우리들뿐이다, 싸워야 한다."

부도 임대아파트 전국 곳곳 산재

ⓒ2006 장희용

한편 이 날 집회에서 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 최재석 의장은 "이 나라에 법과 원칙이 있다면 이 땅의 서민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의 이 억울한 상황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면서 부도 임대아파트의 책임자인 건설교통부와 군산시, 국민은행, 건설업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민사책임을 촉구했다.

최 의장은 "98년부터 군산의 임대아파트들이 계속해서 부도상황을 맞았음에도 군산시와 건교부, 국민은행 등 감시, 관리해야 할 관련기관들은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고 성토하면서 "이 같은 무책임과 수수방관으로 인해 8200여 세대, 군산시민 26만 명 중 3만여 명이 길거리로 몰릴 처지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 의장은 "임차인의 억울함이 군산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다"면서 "부도 임대아파트 해결과 향후 임대아파트 관리에 대한 만족할 만한 법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전국 임대아파트연합회 조직을 총 동원해 오는 3월 서울 상경투쟁도 불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군산지역의 경우 지난 94년 ㈜선황을 시작으로 우신, 동영주택, 금강하우징, ㈜대명, 비사벌, 일신 등 6000여 세대의 임대아파트 부도 사태가 발생했으며, 최근에는 나운동 우신동영, 수송동 동영, 소룡동 금강 골드빌, 소룡동 신도시, 산북동 부향 5차 등 5개 단지 총 2200여 세대가 부도 사태로 고통을 겪고 있다.

부도 임대아파트 중 현재 산북동 부향하나로 5차와 성산면 근로청소년아파트 등 2곳이 법원경매가 진행 중에 있으며, 최근에는 수송동 동영 임대아파트와 소룡동 신도시아파트도 대출금과 이자 등이 상환되지 않아 채권단으로부터 경매신청이 접수된 상태다.

경매가 진행 중이거나 경매가 신청된 이 아파트 외에도 현재 부도가 난 임대아파트까지 법원 경매가 진행될 경우 피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 대책, 알맹이 빠졌다"

ⓒ2006 장희용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2005년 12월 말 현재 6만2842세대 392사업장이 부도 임대아파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교통부는 부도 임대아파트로 인해 임차인들의 피해가 증가하자 이에 대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건교부는 7065세대를 대상으로 분양전환자금과 전세자금 지원 사업을 벌인 바 있으며,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다.

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 장봉화 정책국장은 "건교부는 부도 임대아파트가 현재 6만 세대가 조금 넘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96년부터 시작해 부도 임대 아파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례는 40만 세대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장봉화 국장은 "정부의 대책에는 가장 중요한 서민들의 임대보증금을 1순위로 보호해주겠다는 내용은 빠져 있고,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내용만 있다"면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 지방의 경우 임대아파트를 지을 경우 구조적으로 부도가 날 수밖에 없는 데도 지자체가 지방건설사와 유착돼 무조건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 주거복지본부 공공주택팀 관계자는 "지난해 6월 부도임대 아파트 대책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임대 아파트 건설업체의 보증 가입을 의무화 하도록 하고, 부도가 나지 않은 업체들도 1년 내에 보증 가입을 하도록 제도를 정비했다"면서 "기존 피해자들의 경우 임대료를 보상해주기 위해서는 재정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올 3월부터 국민주택기금 대출 조건을 강화해 부도가 생기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건교부의 부도임대 아파트 대책이 예방 차원의 성격이 크기 때문에, 기존 부도 임대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군산 시청 나몰라라...정부가 대책 세워야"

[인터뷰]전국임대아파트연합회 최재석 의장

- 오늘 집회의 핵심 요구사항이 무엇인가?

"다른 많은 것들이 있지만 당장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진행 중인 경매를 중단하고, 입주자의 임대보증금을 전액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 같은 사태가 올 때까지 수수방관한 군산시(각 지자체)와 건교부, 건설업자, 국민은행에 대한 형사ㆍ민사처벌이다."

- 그동안 군산시청하고는 협의를 해 봤는가?

"당연히 했다. 시청 입장? 한 마디로 '우리(시청)로서는 해 줄게 없다'는 태도다. 군산시민 3만 명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행정권한에 한계가 있다고 해도, 아무리 해줄 게 없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식으로 나올 수 있나?"

- 집회 현장에서 임대아파트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논하는 것이 부족하긴 하지만, 대책이 있다면?

"근본적으로는 법적 제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이 같은 사태는 반복될 것이다. 작년 6월 임대아파트 부도 대책이 발표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을 막을 수 없다. 보증기금 제도 등 특단의 대책을 정부가 세워야 한다."

- 향후 계획은?

"군산 뿐 아니라 전국의 40만 부도 임대아파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임대아파트연합회 등 전국적 조직을 총 동원해 3월 서울 상경투쟁을 벌일 것이다. 정부의 대책이 나올 때까지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 장희용

/장희용/박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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