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김장은 며느리도 함께 하는 거지?"

2005. 11. 23. 08:3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최육상 기자]

▲ 이번 김장은 모두 여든 다섯 포기를 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동생 시아버지가 직접 재배해 보내주신 맛난 배추 사십 포기도 있습니다.
ⓒ2005 최육상

"에구, 오늘 김장은 온 가족 잔치다, 잔치. 사돈댁, 은영이모, 금숙이모, 종수삼촌, 충수삼촌, 윤희, 육상이친구, 우리 집… 여든 다섯 포기 담아서 여덟 군데로 보내니 말이야."

어머니의 목소리에 잔뜩 힘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웃고 계셔도 이 통, 저 통 김치를 담으며 하시는 말씀에는 노동 강도가 상당한 '김장'의 버거움이 느껴집니다. 지난 19일 토요일,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 출가했던 여동생, 이모 둘, 저 이렇게 함께 모여 김장을 담갔던 풍경입니다.

"작은 배추는 우선 여기 통에 담아둬. 나머지 조금 큰 배추와 무, 갓 등은 마지막에 따로 양념을 발라야 돼."

김장 담그기의 총연출은 '당연히' 어머니의 몫입니다. 이번 김장에 사용하는 김치는 작은 배추와 큰 배추, 2종류입니다. 작은 배추는 여동생 시아버지가 직접 재배한 것으로 40포기 정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사돈어른의 세심한 배려와 정성을 봐서라도 이 배추들은 가족 몫입니다. 게다가 맛 또한 좋았으니까요. 그렇다고 큰 배추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뿐인가요? 무김치, 깍두기, 알타리무도 넉넉하게 담갔으니 올 겨울 김치 걱정은 끝입니다.

▲ 김장 총연출은 당연히 어머니 몫. 이모 두분이서 양념을 열심히 바르고 계신데, 얼굴 촬영은 절대로 안된답니다. 초상권 침해라나?
ⓒ2005 최육상

이모 두 분이 열심히 배추에 양념을 바르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당에 절여놓은 배추의 물을 빼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여동생은 이모들의 이러저러한 심부름과 잔가지 일을 거들었고요, 저는 양념된 배추를 항아리에 옮기는 운반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그렇게 역할 분담을 하니, 고된 김장일임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 동안 우리 집은 김장을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습니다. 때론 부모님께서 해결하시기도 했고, 이모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지켜보고 일을 도운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부끄럽게도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지, 김장 담그기가 이렇게 큰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뭐, 그렇지만 이제서라도 이렇게 김장 담그는 법을 곁눈질로나마 배우게 돼서 다행입니다. 다행인 건 또 있습니다. 명절 때만이 아니라 김장 담그기를 통해서도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법도 알았다는 것이죠.

김장담그기를 마치니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날 저녁은 참 화기애애했습니다. 모두들 건강한 노동을 마쳤으니 식욕도 돌았거니와, 여러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오래 전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이모들 어렸을 적 이야기는 물론이고 형과 여동생, 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 항아리 가득 무김치, 갓김치, 배추김치 가득~김치 걱정 끝~!
ⓒ2005 최육상

그 동안 저는 김치에서 기생충알이 나왔건 기생충이 나왔건 우리 집과는 상관없다고 치부했었습니다. 거기에는 먹을거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다시금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역시 믿을 수 있는 건 가족의 마음, 그 중에서도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이 세상의 먹을거리를 만들고 파는 사람들이, 부모의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자기 가족들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겠지요? 아무튼 생전 처음 김장 담그기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역시 우리네 삶의 즐거움은 함께 모여 정을 나누는데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년 김장은 며느리도 함께 하는 거지?"

김장을 다 마치자 어머니께서는 제게 한 마디를 던지셨습니다. 이모들도 곁에서 "맞아, 맞아" 하며 거듭니다. 전 매운 청량고추를 베어 문 양,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어머니도 참, 김장을 이렇게 이용하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마도 항아리에 가득 담긴 김치를 다 먹어 치울 동안 며느리 이야기는 계속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그나저나 김치 담그는 법도 '쬐끔' 알았겠다, 이제 가정을 꾸려도 괜찮을 나 모르겠네요.

▲ 막담은 우리집 생김치, 어때요? 뜨끈한 밥에 포기채 좍좍 찢어서 한 입...음냐..
ⓒ2005 최육상

/최육상 기자

-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