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보면 인간성까지 알수있죠" 구두수선공 고일재씨

2005. 11. 18. 06: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쿠키 사회] ○…전주 효자동 전북지방경찰청 옆 도로가에 설치된 고일재씨(54·임실군 관촌면)의 구둣방.

기자가 들어서자 그는 광내던 헝겊을 내려놓고 환한 웃음으로 "어서오세요"라며 손님 대하듯 편하게 의자를 권했다.

구두 수선공 경력 12년차라는 고씨. 그도 한때는 잘 나가던 미장공이었다. 그러나 경기 한파로 건설업이 주춤하자 삶의 의욕도 잃어버렸다.

비록 부자는 아니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구두닦이'라고 부르는 일을 시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두 아들의 아버지라는 중책 때문에 언제까지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구둣방을 하는 지인의 소개로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구두닦이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나이도 마흔을 넘었으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그는 지난 6월까지만 해도 구도심 전북도청 앞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일할때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하나둘 사무실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기에 고씨는 알아봤다. 흠, 경기가 나빠지겠구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절만 해도 고쳐 신는 게 유행이라 뒷굽 밑창 수선주문이나마 쏠쏠해 크게 타격이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경기침체가 그대로 매상과 직결된다.

"'전두환 시절'인 8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가 매상이 최고였죠.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이었다나? 그때만 해도 다들 광내고 다녔는데, 10년 새 구두 닦는 값이 5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랐지만 버는 건 비슷해요."

오전 8시에 출근해 자신의 '성'에서 가까운 경찰청 사무실을 돌며 경찰관들의 구두를 닦는 게 첫 번째다. 반짝이는 구두는 경찰관의 얼굴이자 자신감이므로.

그 다음부터는 구두를 닦아 1시간 안에 주인을 찾아주는 일이 반복된다. 이 곳 경찰청이 고씨의 관할. 관할은 법보다 강한 묵계로 동업자들간 상호 존중된다.

"구두를 보면 키·몸무게·성격·인간성까지 나오죠."

매일 30개 이상, 월요일은 50개가 넘는 구두를 닦으면서 돌려줄 땐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고씨는 이렇게 답했다.

대충 발 크기와 키 몸무게는 비례하며,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 냄새가 구두에 배어 있다. 영업직과 사무직은 '거친' 외부의 먼지와 '고운' 내부의 먼지에서 차이가 난다. 곱게 신는 사람, 뒤축을 자주 수선해 신는 사람은 성격도 세심하고 준비성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사나흘만 지나면 얼굴과 구두가 완전히 매치될 만큼 외운다.

고씨는 구두를 수선하는 것도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특히나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닦는 것보다 수선을 맡기러 오는 분들이 많아, 손님의 스타일에 맞게 센스를 발휘해야만 마음까지 만족하는 수선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기성화가 워낙 싼 가격에 판매돼 수선 맡기로 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게 아쉽다.

겨울이면 한 평 남짓한 내부가 꽁꽁 얼어붙는단다. 기계들이 대부분 쇠인데다가, 가죽들도 딱딱하게 굳기 때문이다. 거기서 30분 정도 녹기를 기다리며 앉아있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달에 휴일, 비 오는 날 빼고 20일을 업무일로 친다. 봄·가을에 손님이 제일 많다. 여름에는 또 운동화나 캐주얼화를 많이 신는 탓에 수요가 반으로 줄어든다.

오후에는 부인 이순이씨(50)가 일하는 전주 효자동 서도프라자로 향한다. 부인 이씨 역시 그와 함께 10년전부터 구두를 닦고 있는 베테랑 구두수선공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다.

그는 한 평 남짓한 구둣방에 앉아 있을 때 문 밖에 비가 오고 바람이 불거나 눈보라가 몰아치면 더욱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비록 허름하고 좁은 장소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소박한 꿈을 이루기 위한 너무나도 소중한 '삶터'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시끄럽고, 마음이 불안할 때도 구둣방에 앉아 밖을 내다보면 위안을 받는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자신의 '삶터'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이제 '구두닦이'가 아닌 베테랑 수선공으로서 "구두를 수선하는 것처럼, 손님들의 마음까지 깨끗하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고씨의 얼굴이 말끔하게 닦은 구두처럼 빛났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새전북신문 김동철기자 sollenso@sjbnews.com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 국민일보 쿠키뉴스(www.kuk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