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정상만찬 준비 한영실 숙명여대 교수

2005. 11. 1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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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공군이 총동원됐어요. 조리법이나 식재료가 중복되는 게 전혀 없을 겁니다."

부산에서 18∼19일 열리는 APEC 정상회의때 세계 21개국 정상의 입을 매료시킬 저녁식사를 기획,준비중인 숙명여대 한영실(48·식품영양학) 교수는 한국 전통음식 예찬론자다.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하는 그를 지난 9일 오후 45분 가량 만났다. 만찬에 들어갈 메뉴에 대해 구체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을 붙여서다. 메뉴가 상세하게 알려질 경우 각종 테러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인 듯했다.

한 교수 담당은 18일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21개국 정상이 함께 하는 만찬. 그가 이번 만찬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맛과 함께 한국 전통음식의 품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웬만한 고급 음식은 모두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맛보다는 조리법이나 담음새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고 한다.

"정상들이 가족과 편안히 먹는 저녁식사가 아니잖아요. 격식을 따져야 하는 상황에서 자기 나라 음식이 아닌 것을 수저와 젓가락,나이프와 포크로 먹어야 하는데 엉망이 돼서는 안되겠죠. 우아하게 먹어야 되지 않겠어요."

이 때문에 우리 음식의 특징에 속하는,손으로 집어 뜯어먹는 메뉴는 배제됐다. 갈비찜도 배제됐다고 한다. 대신 쇠고기를 얇게 저며 양념해 구운 너비아니가 제공된다.

만찬은 밥과 함께 전통 한국음식 10가지를 7번에 걸쳐 제공하는 것으로 확정됐다. 구이와 조림,국물요리,후식 등이 다양하게 배치된다. 고추장과 같이 강한 맛을 내는 양념은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늘 역시 강한 양념이긴 하지만 한국음식에 빼놓을 없기 때문에 일부 사용된다고 한다. 한국 전통요리는 원래 한상 차림이다. 그런데 7번에 나눠 제공하는 이유는 뭘까.

"외국인에게 좀 낯설 것 같아서요. 또 주방이 가까워야 하는데 만찬 장소가 그렇지 않거든요. 그래서 코스로 나눴습니다. 간단한 나물무침도 바로 요리해서 올려야 맛있는데 그럴 형편이 아니잖아요."

요리는 코스마다 색깔과 재료,맛이 모두 다르다. 음양오행에 기초한 것이라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 음식은 언제나 음양오행이 적용됐어요. 청 적 황 백 흑 등 5가지 색이 모두 음식에 나타나며,이것이 부족할 경우 고명을 통해서라도 보충했거든요. 노란색이 부족하면 계란지단으로 보충하고 빨간색이 부족하면 가는 실고추라도 얹어서 색의 조화를 꾀했어요."

그릇과 냅킨 등 소품에도 세심한 배려를 했다. 식기류는 도금 처리된 십장생 등 우리나라 전통문양이 새겨진 자기류가 사용된다.

"음식에 공을 들인다는 것은 고급문화를 향유할 줄 안다는 것이거든요. 이번 정상만찬에는 우리 음식의 아름다움이 가득 배어 있어요."

지난 7월 만찬 자문과 감독 역할을 제안받은 한 교수는 메뉴 고르기가 아주 쉬웠다고 한다. 다만 우리 음식중 맛있는 것이 많은데 이를 적절히 추리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청와대에서 그동안 국빈 만찬을 했던 메뉴도 참고하고,각국의 식사형태도 확인했다. 식재료 중에서는 돼지고기가 제일 먼저 제외됐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국가 정상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메뉴 선정에는 그가 원장으로 있는 숙명여대 부설 한국음식연구원 연구원들의 숨은 노력이 도움이 됐다. 9월 말에는 여러 개의 세트메뉴 중 최종 두 가지 메뉴를 놓고 연구원들이 시연회를 갖기도 했다. 이들은 실제로 외국 정상이 돼 음식의 양을 조절하고,만찬 시간은 물론 어떤 자세로 먹을까에 대해서도 고려해서 식단을 짰다. 가로늦게 기생충 김치파동이 일어나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한 교수가 강력히 김치를 넣을 것을 주장해 식탁에 오르게 됐다.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1인당 식사비는 얼마나 될까. 역시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값을 매길 수가 없죠. 값을 매기고 싶지도 않고요. 최상의 재료로 최상의 안전성과 최상의 위생을 원칙으로 했으니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는 이날 만찬에 참석,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음식을 각국 정상들이 먹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어떤 정상이 맛에 반해 조리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알려드려야죠. 영문으로 레슨도 해드릴 수 있어요. 제가 한국 전통음식에 대해 외국인을 상대로 영어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거든요."

약속 위반인 줄 알면서도 일어서면서 구체적인 메뉴에 대해 슬쩍 물어봤다.

"남편이 어느 날 친구가 물어본다며 메뉴를 자기한테만 알려주면 안되냐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죠. 그랬더니 남편이 정말 독하다고 하면서 다시는 안 묻던데요."

한 교수는 다만 "이번에 사용되는 식재료는 모두 순수 국산이에요. 만찬을 계기로 젓가락,식기,식재료 등 우리 전통의 것이 세계에 파고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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