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상자 깔고 신문지 이불..갈곳없는 노숙자

2005. 10. 17.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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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굶지 않고 올 겨울 무사히 버티면 더 바랄 게 뭐 있겠습니까."

지난 16일 오전 1시쯤 대전시 동구 중동 홍명 지하상가. 밤공기가 제법 매서워 옷깃을 여며야 하는 날씨 속에서 10여명의 노숙자들이 종이박스와 신문지를 덮고 상가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소주병과 컵라면 용기, 생수병, 과자봉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심한 악취도 풍겨 간간이 지나가는 취객들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허기에 지쳐 잠을 이루지 못하던 노숙자 이모씨(51)는 기자가 사간 김밥을 내놓자 허겁지겁 먹으면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원망했다.

이씨는 "날씨가 추워지면서 긴 겨울을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다"라며 "허드렛일이라도 구해 월세방이라도 마련하고 싶지만 노숙을 하다 몸이 상해서 노동을 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25년간 이발소를 운영했다는 이씨는 IMF를 겪으며 가게가 망하고 목욕탕의 이발사로 취직했으나 곧바로 쫓겨나 거리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밥 2-3개를 한 입에 넣어가며 순식간에 배를 채운 뒤 사회복지사에 이끌려 쉼터로 향했다.

이날 기자와 동행한 대전 홈리스지원센터 한병탁 사회복지사(37)는 "날이 추워지면 거리에서 생활하다 병에 걸리거나 빈집을 찾아 불을 피워 사고를 당하는 노숙자들이 허다하다"면서 "거리 상담을 통해 쉼터나 재활기관으로 들어오라고 유도하고 있지만 거리에 익숙한 노숙자들은 아예 상대조차 안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실제로 지난 12일 오후 9시쯤 대전시 동구 성남동 폐주택에서는 추위를 피해 이곳에서 모닥불을 피우며 생활하던 노숙자가 불에 타 숨졌다.

한 복지사는 "대전에서만 빈집 생활을 하는 노숙자가 40-5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별다른 지원이 없어 이같은 사고를 예방할 방법이 아직까지 없다"고 전했다.

이날 새벽 3시쯤 대전역 광장에서는 노숙자 3명이 둘러앉아 과일 몇 조각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기자가 다가서자 2명은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다리가 불편한 정모씨(67)만 무심한 표정으로 맞아줬다.

정씨는 화원을 운영하다 실패한 뒤 시집간 딸에게 얹혀 살다가 얼마 전부터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하고 있는 초보(?) 노숙자였다.

그는 "사회복지사들이 찾아와 시설에 들어와서 생활하라고 하지만 규제가 심해 얼어 죽는 한이 있어도 이곳을 벗어나지 않을 작정"이라며 "우리를 식구처럼 반겨줄 곳이 어디 있겠느냐"며 소주잔을 거푸 비웠다.

오전 6시쯤 대전역에 여행객이 몰리면서 정씨도 "급식을 받으러 가야 한다"며 목발을 딛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김의곤 대전홈리스지원센터 실장은 "날씨가 추워지면 노숙자 쉼터와 시설에는 수용인원이 넘는 인원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며 "노숙자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시설과 거리노숙인의 건강을 살피는 인력을 정부가 앞장서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대전일보 송영훈기자 syh0115@dinz.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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