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장 버섯경전을 독송하다

2005. 10. 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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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안병기 기자]

▲ 대전 역전 새벽 시장 풍경
ⓒ2005 안병기

대전역 앞에는 새벽마다 도깨비시장이 열린다. 역광장에서 시작해서 역 앞 간선도로변 인도에 조성된 이 시장은 근처 은행이나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는 오전 9시가 되면 슬슬 자리를 치우기 시작한다.

이 새벽시장에 자리를 잡고 앉은 분들은 거의가 시골 노인 양반들이다. 가지고 나온 물건이라고 해야 무 몇 개, 부추 몇 숨 아니면 산에서 딴 이런저런 버섯 종류가 대부분이다. 몽땅 팔아봐야 몇 푼 될 것 같지도 않은 물건들이지만, 여름철같은 경우는 길가에 전을 펴고나서 아예 철퍼덕하니 주저앉아서 밤을 새는 분들도 눈에 띈다.

시장, 삶의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곳

나는 유난히 시장을 좋아한다. 시장이야말로 현실의 결정판이다. "오리(五厘)를 보고 십리를 간다"는 장사아치들의 삶의 철학. 그 지독한 리얼리즘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을 새롭게 느끼게 되고, 새삼스럽게 자신의 삶의 매무새를 가다듬게도 되는 것이다.

어제, 새벽이라기엔 늦은 아침에 역전 새벽시장에 나갔다. 특별히 살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구경삼아 나들이 간 것이다. 한창 철은 아니지만 요새는 어떤 버섯이 시장에 나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 능이버섯. 예전 어느 하드 CM송처럼 못 생겨도 맛은 좋다.
ⓒ2005 안병기

이 새벽 도깨비시장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버섯은 능이버섯이다. 굴뚝버섯과에 속하는 능이버섯은 활엽수림, 그 중에서도 참나무숲에서 자란다.

나팔꽃과 같이 퍼진 깔때기 모양으로 피며, 갓은 지름 10∼20cm 정도된다. 갓의 중심은 자루 끝까지 우묵하게 구멍이 뚫려 있으며 표면에는 크고 거친 비늘조각이 거꾸로 촘촘이 나 있다. 어렸을 때는 담홍색이나 자라면서 점점 홍갈색으로 변하며 끝에 가선 흑갈색이 된다.

옛날에는 '1능이 2송이'라 해서 능이를 더 쳐줄 만큼 귀한 버섯이다. 오래 전부터 식용한 버섯이며 육류를 먹고 체했을 때 한방탕제로도 이용하며 회를 쳐먹기도 한다. 대둔산 근처 산자락에서 능이가 많이 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역전 시장에 능이버섯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 "난 너희들과 노는 물이 달라" 가격이 비싸기로 이름난 송이 버섯
ⓒ2005 안병기

올해는 버섯 채취 시기에 비가 많이 와서 '베렸다'고 하지만, 송이버섯도 많이 나온다. 9월 한창 때, 이 시장에서는 2~3등급으로 추정되는 송이 1kg에 15만원 이쪽 저쪽을 오르내렸다.

멀리 안동에서 송이를 채취해왔다는 아저씨에게 어떻게 해야 송이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얼음물에 하루쯤 담갔다가 그대로 냉동시키면 오래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난 송이버섯을 볼 적마다 비싼 값에 비해 그만큼의 맛과 효용이 있느냐는 의문을 품곤 한다. 우리말에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는데 '비싼 게 비지떡'일 수도 있지 않은가.

▲ 양송이(좌)와 새송이버섯(우).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을 떠올리게한다.
ⓒ2005 안병기

양송이버섯은 서양송이의 준말이다. 갓은 5∼12cm 정도 되고 처음에는 거의 구형이나 자라면서 점점 펴져서 편평해진다. 표면도 처음에는 백색이나 나중에 담황갈색을 띠게 된다. 살은 두껍고 백색이며 상처를 내면 담홍색으로 변한다.

1960년대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품종이 바로 양송이버섯이다. 송이버섯이 워낙 비싸다 보니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을 겨냥해서 '꿩 대신 닭' 격으로 재배된 품종인 것이다. 그러나 꿩의 맛을 아는 사람에겐 얼마나 어설픈 일일 것인가.

새송이버섯은 비교적 최근에 재배되기 시작한 버섯이다. 송이버섯의 맛을 내보려고 개발한 버섯인 듯하지만, 송이버섯 근처에 가려면 당당 멀었다. 어디 카피(copy)가 오리지널을 능가한다는 게 쉬운 일이던가.

나로서는 양송이보다는 쫄깃쫄깃한 새송이버섯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 팽이버섯(좌)과 싸리버섯(우)
ⓒ2005 안병기

싸리버섯은 가을에 침엽수나 활엽수림의 땅에서 올라온다. 3∼5cm의 굵은 백색 자루 위에 싸리비꼴의 가지를 친다. 끝 부분은 수많은 작은 가지가 모여 담홍색에서 담자색으로 꽃양배추 모양이 되며, 백색으로 꽉차 있는 육질은 잘 부스러진다.

싸리버섯에서는 내 유년의 가난 냄새가 난다. 가을철이면 할머니가 무등산에서 채취해오시는 바람에 어렸을 적에 가장 많이 먹었던 버섯 가운데 하나이다.

팽이버섯은 근래에 들어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는 버섯이다. 생김새도 싸리버섯과 비슷하지만 맛도 얼추 비슷한 것 같다.

▲ 표고버섯(상)과 느타리 버섯(하)
ⓒ2005 안병기

느타리과의 버섯에 속하는 표고버섯은 봄에서 가을에 걸쳐 참나무류나 밤나무 등의 활엽수에 발생한다. 갓 표면은 다갈색이며 흑갈색의 가는 솜털 모양의 비늘조각이 덮여 있다. 갓둘레는 어렸을 때는 안쪽으로 말려 백색 또는 담갈색의 피막으로 덮여 있다가 갓이 터지면 갓둘레와 자루에 떨어져 붙는다.

느타리 버섯 역시 활엽수의 고목에 군생하며, 특히 늦가을에 많이 발생한다. 갓은 반원형 또는 약간 부채꼴이며 가로로 짧은 줄기가 달린다.

표면은 어릴 때는 푸른빛을 띤 검은색이지만 차차 퇴색하여 잿빛에서 흰빛으로 되며 매끄럽고 습기가 있다. 살은 두텁고 탄력이 있으며 흰색이다.

▲ 보통 영지버섯이라고 하지만 불로초라고도 한다.
ⓒ2005 안병기

영지버섯은 일명 불로초라고도 한다. 여름에 활엽수 뿌리에서 발생하여 땅 위에도 돋는다. 갓은 반원형 또는 부채 모양이며 표면에 옻칠을 한 것과 같은 광택이 난다. 따는 즉시 햇볕에 말리지 않으면 벌레들이 속을 다 갉아 먹고만다.

대청댐 근처에 많이 자라고 있어 내가 가장 많이 채취해본 버섯 가운데 하나이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영지버섯 근처에만 가면 이상하게 뱀을 많이 보게 된다.

▲ 미루나무버섯(상)과 밤나무버섯(하)
ⓒ2005 안병기

버섯 이름을 알지 못해 장사하는 할머니에게 물으니 미루나무 버섯이라고 한다. 아마도 미루나무 둥치 같은 데서 자라는 버섯인 모양이다.

송이과에 속하는 밤버섯은 향이 송이버섯과 비슷하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값도 그리 비싼 편이 아니고 맛도 괜찮다.

▲ 가지버섯이라고 부르는 민자주방망이버섯
ⓒ2005 안병기

가지버섯이라고 불리는 민자주방망이버섯. 가을부터 초겨울에 걸쳐 정원 잡목림 속 땅 위에 단생 또는 군생한다. 갓은 평반구형이며 처음에는 자주색이나 차차 퇴색하여 갈자색이 되며, 갓 끝은 굽었다.

성장 초기 또는 그늘에서 발생한 가지버섯은 분명한 자색을 띠며, 성장하면 점차 갈색으로 퇴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공 재배도 가능한 식용버섯이나 생식하면 중독된다.

▲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뭔가를 정리하고 있는 아주머니. 늙은 호박과 단호박이 수북이 쌓여 있는 풍경이 정답게 느껴진다.
ⓒ2005 안병기

눈부셔라, 삶이 펼쳐놓은 이 지옥

노인 양반들이라서 그런지 버섯 사진을 찍는 일조차 여간 까다롭지 않다. 조심스럽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곤란하다. 큰 길가는 벌써 전을 다 걷어버렸지만 하루 종일 장사를 해도 되는 역전 쪽은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에게 장사는 무시할 수 없는 수입원이다. 소일거리인 동시에 소외를 극복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삶의 무기력을 떨쳐버리고 활기있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이며 사교의 장이기도 하다.

중앙성당 앞 길가에졸고 있다다 팔아도 2만원 어치가 안 될 푸성귀를늘어놓은 할머니 한 분양버즘나무가 제 그림자를 끌어당겨 덮어주려 하지만8월 오후 세시의 햇볕이속살까지 구워내는 등신불상 하나―한 찰나라도 먼저 56억년 저쪽에 이르기 위해자동차들이 질주해 가는 동안이미 용화세상에 들었을까가끔 꿈결에 깨어경전을 넘기듯 무심히 몇 가닥씩 다듬어 놓는상추경經 우엉경經 열무경經 부추경經 쪽파경經...이 지옥이 저로 하여 눈부시다- 복효근 시 '등신불' 전문

추측컨대 중앙성당이란 아마도 전주 중앙성당을 일컫는 것일 게다. 푸성귀전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시다. 시인의 말마따나 재래시장엔 저렇게 온갖 경전을 펼쳐놓고 있는 할머니들이 많다.

역점 마당이 점점 아침 햇살에 갇히는 것을 보며 집으로 향한다. 오늘따라 삶이, 이 지옥이 눈부시다.

/안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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