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4천만 년 전, 그 늪에는 무엇이 살고 있었을까

2005. 9. 15.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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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 1억4천만 년 앞의 신비가 숨쉬는 곳 '우포늪'
ⓒ2005 이종찬

지금으로부터 1억4천만 년 앞 그 늪에는 무엇이 살고 있었을까. 그때 만들어진 우포늪 주변에서도 거대한 공룡이 지금의 사람들처럼 지구촌 주인 행세를 하며 제멋대로 삼라만상을 짓이겼을까. 그때에도 우포늪에는 개구리밥과 자라풀, 네가래, 애기마름, 생이가래, 물옥잠, 가시연, 어리연, 물달개비 등이 물 위를 잔디밭처럼 파랗게 뒤덮고 있었을까.

1억4천만 년 앞에도 검은 물잠자리 한 쌍, 우포늪 주변에서 쑤욱쑥 자라고 있는 부들 잎사귀에 붙어 깊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을까. 까마득하게 멀고 먼 그때에도 벌호랑하늘소, 무당벌레, 방아개비, 섬서구메뚜기, 땅강아지, 남색초원하늘소, 호랑나비, 꼬리명주나비, 사향제비나비, 애매미, 반딧불이 등이 먹이사슬을 이루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을까.

그래. 공룡이 득실대던 그때에도 우포늪에는 애소금쟁이와 물땡땡이, 장구애비, 물자라가 자신의 핏줄을 잇기 위해 사랑을 속삭이고, 알을 낳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에도 우포늪에서는 줄공치와 잉어, 버들붕어, 가물치, 메기, 백조어, 각시붕어, 버들치, 긴꼬리투구새우 등이 물 속을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었을 것이다.

1억4천만 년 앞에도 우포늪에는 아름다운 원앙과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쇠딱따구리, 오목눈이, 물닭 등이 잔디밭처럼 파란 물 위를 떠다니며 논우렁을 쪼아 먹었을 것이다. 꾀꼬리, 중대백로, 독수리,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깍도요 등이 너구리와 고라니 등과 먹이를 놓고 싸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포늪은 1억4천만 년 앞, 태고의 신비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는 곳이므로.

▲ 우포늪 소목 앞에 자라는 내버들 군락지
ⓒ2005 이종찬
▲ 물 위에 빼곡하게 들어찬 물풀 때문에 버려진 땅처럼 보이는 우포늪
ⓒ2005 이종찬

1998년 람사협약에 의해 보존 습지로 지정... 수많은 생물들의 삶터

우리 나라 최대의 자연습지 우포늪. 1998년 3월 2일 람사협약에 의해 보존습지로 지정된 우포늪은 경남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에서부터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 있는 습지로 그 면적만 해도 무려 70만 평을 자랑한다. 이 곳 주민들이 '소벌'이라 부르는 우포늪은 모두 4개의 크고 작은 습지로 이루어져 있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이 그것.

하지만 이 곳에서 논밭을 가꾸고 논우렁을 잡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습지들을 소벌, 나무벌, 모래벌, 쪽지벌로 부른다. 우포를 소벌로 부르는 이유는 예로부터 이 곳 주민들이 습지 주변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고 소에게 물을 마시게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목포나 사지포, 쪽지벌 또한 마찬가지다. 목포는 해마다 여름철이 되면 나무뗄감이 많이 떠내려와 나무벌이라 불렀고, 사지포는 모래가 많아 모래늪벌, 쪽지벌은 네 개의 습지 중 크기가 가장 작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14일(수) 오후 5시, 창녕에서 교편생활을 퍽이나 오래 했던 나의 창녕 길라잡이 서익수(52) 선생과 함께 찾은 우포늪. 그날 우리는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세진리의 우포늪으로 가지 않고, 그 반대쪽인 주매리에 있는 소목으로 갔다. 소목으로 가야 이 곳 사람들이 논우렁을 잡기 위해 나무로 만든 쪽배(거룻배)도 볼 수 있고, 내버들 군락지와 여러 물풀들을 좀더 까까이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지지(地誌) 자료에 따르면 '창녕에는 천지(天地)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큰 우포가 있다'는 기록이 있어예. 근데,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포늪 동쪽에 큰 둑을 쌓아 개간을 하면서 우포늪이 3분 1쯤 줄어들었다고 합니더. 제가 창녕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까지만 해도 군에서 우포늪을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하려고 했어예. 지금도 그때 묻은 쓰레기가 언뜻언뜻 보이곤 하지예."

▲ 그대는 가을을 맞이하는 우포늪에 가 본 적이 있는가
ⓒ2005 이종찬
▲ 이곳 사람들이 논우렁을 잡기 위해 띄워놓은 쪽배와 대나무 장대
ⓒ2005 이종찬

차가 주매리를 지나 소목 둑 가까이 다가서자 저만치 내버들 군락지가 보인다. 소목 둑 아래 마치 커다란 버섯송이처럼 오목조목 서 있는 내버들은 늪지에 고인 물을 깨끗하게 걸러주는 정화조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내버들은 늪과 땅이 맞닿은 곳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늪이 땅으로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까지 한다.

초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우포늪. 어둠살이 하나둘 밀려드는 우포늪에는 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늪지에 고인 물이 다 말라붙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초가을을 맞은 우포늪에는 파아란 좁쌀을 풀어놓은 것 같은 개구리밥과 하얀 꽃을 피워올린 자라풀 등,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든 수많은 물풀들이 물 위를 파랗게 덮고 있기 때문이다.

우포늪을 가로막고 있는 둑을 지나 물가로 다가서자 쪽배 세 척과 긴 대나무 서너 개가 가지런하게 떠 있다. 나무로 만든 이 쪽배와 긴 대나무들은 이 곳 사람들이 우포늪에 살고 있는 논우렁을 잡기 위해 띄워놓은 것이다. 하지만 언뜻 바라보면 그 쪽배들과 대나무들이 파아란 잔디밭에 반쯤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이 우포늪에 백조(고니)가 참 많이 날아들었어예. 그래서 1962년 12월에는 우포늪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했지예. 그러다가 1973년에 백조가 많이 날아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되었어예. 그때 개발바람을 타고 낙동강과 토평천에 제방이 만들어지면서 우포늪 주변에 있는 사몰포, 용호 같은 크고 작은 늪지들이 모두 농경지로 변했지예."

▲ 우포늪 주변 물가에는 곳곳에 부들꽃이 마치 핫도그처럼 피어나 있다
ⓒ2005 이종찬
▲ 물 위에는 온통 개구리밥과 자라풀 등 희귀한 물풀들이 빼곡하게 뒤덮여 있다
ⓒ2005 이종찬

1973년 천연기념물 지정 해제 후 개발바람... 사몰포, 용호 등은 농경지로 변해

서 선생의 설명을 들으며 특이하게 생긴 쪽배와 장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심코 조약돌 하나를 툭 던진다. 이윽고 '퐁'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제법 큰 백로 한 마리가 푸더덕 날아오른다. 옛 말에 무심코 던지는 돌에도 수많은 생명이 죽을 수도 있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내가 조약돌을 퐁, 하고 던진 그 늪지 주변 부들밭에 백로가 모이를 쪼고 있는 줄 어찌 알았으랴.

백로가 날아간 부들밭을 한동안 넋놓고 바라보다가 온갖 물풀들이 빼곡하게 덮인 우포늪을 따라 천천히 걷는다. 이쯤 어디선가에서 잎사귀 지름이 최고 2m나 된다는 가시연꽃이라도 볼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가시연꽃은커녕 우포늪에서 흔하다는 노랑어리 연꽃도 보이지 않는다. 너무 늦게 우포늪을 찾았는가, 한숨을 포옥 내쉬고 있을 때 저만치 커다란 잎사귀 몇 장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옳커니. 저게 바로 애타게 찾던 그 가시연 잎이 아닌가. 그래. 수많은 가시에 뒤덮여 피어나는 보랏빛 가시연꽃은 보지 못했지만 가시연 잎을 보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서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가시연은 꽃봉오리를 내밀 때 자신의 커다란 잎 사이를 뚫고 올라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가시연은 초여름부터 9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빛의 세기에 따라 꽃을 피웠다 오므렸다 한단다.

온몸에 가시가 촘촘촘 박힌, 아니 온몸에서 가시를 촘촘촘 내민, 독특한 모습을 띤 가시연 잎을 오래 바라본다. 왜 저 식물은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저렇게 많은 가시를 달고 있어야 했을까. 가시를 달고 스스로를 지키고 있지 않으면 이 험악한 세상을 도저히 살아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수억 년이 흐르는 동안 가슴에 켜켜이 맺힌 한들을 가시로 드러냈을까.

▲ 자라풀이 피워낸 하얀 꽃
ⓒ2005 이종찬
▲ 다 자라면 2m에 이른다는 가시연 잎
ⓒ2005 이종찬

근데, 어떻게 저렇게 큰 잎이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을까. 우포생태학습원에서 펴낸 <살아 숨쉬는 자연의 신비 우포늪>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그 비밀은 바로 가시연 잎의 뒷부분에 숨어 있다"고 한다. 가시연 잎을 뒤집어보면 마치 핏줄 같은 잎맥이 사방으로 뻗어 있고, 이 속에 구멍이 뚫려 있어 공기를 잎 속에 지닐 수 있다는 것.

가시를 촘촘촘 내민 가시연의 널찍한 잎사귀를 바라보며, 고된 이 세상살이를 하나 둘 떠올리고 있을 때 어둠살이 서서히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쉬이 우포늪을 떠나지 못한다. 너무나 순식간에 1억4천만 년 앞으로 거슬러 올라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포늪에서 1억4천만 년째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들이 나를 꼬옥 부여잡고 '제발 저희들을 보호한다는 이름 아래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이대로 내버려두세요'라며 애원하는 소리가 환청처럼 자꾸만 들려오기 때문일까.

▲ 온몸에 가시를 촘촘히 매단 독특한 모습을 띤 가시연 잎
ⓒ2005 이종찬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 한국관광공사 창녕 우포늪 정보 바로보기

☞가는 길/1. 서울-경부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창녕 나들목-교차로 우회전(우포늪 팻말)-우포생태학습원-우포늪2. 창녕시외버스터미널-우포자연학습원 팻말-석등-소야-주매-우포늪(소목)-푸른우포사람들(우포자연학습원)※창녕시외버스터미널 옆(왼쪽 50m)에 있는 영신버스터미널에서 유어 혹은 적교 쪽으로 가는 버스(40분)를 타고 회룡에서 내려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서(2km) 가도 되고, 하루에 2~3차례 있는 우포행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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