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찜통 더위 산행, 너무 힘들었어요"

2005. 8. 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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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철관 기자]

▲ 수락산 정상인 주봉에 서 있는 등산객들
ⓒ2005 김철관

지난 6일 주말(토요일), 내 자신의 인내를 실험하는 극기 훈련을 경험했다. 아니 자연스러운 극기 체험이 됐다. 서울의 온도가 올해 들어 가장 높았던 지난 6일(주말), 35도의 불볕더위 속에서 직장 동료이면서 평소 절친한 박보형 후배와 수락산 등반길에 올랐다. 한마디로 너무 고통스러운 산행이었다.

6일 오전 9시30분 용답역에서 2호선 지선을 타고 1호선, 6호선, 7호선을 번갈아 타면서 간 곳은 다름 아닌 7호선 수락산역. 수락산역에 내려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니 수락산 등산로가 나왔다. 오전 10시 20분이었다.

역부터 수락산 입구까지는 짧은 거리였지만 수락산 입구에 도착하니 땀이 비 오듯 온몸을 적셨다. 하지만 모처럼 산행을 한다는 자체가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평소 중국사기를 즐겨 읽은 후배는 산행길에 한무제며 진시황이며 중국역사인물들을 거론하면서 얘기를 들려줬다.

하지만 날씨가 더운 탓에 그의 말에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제대로 기억나는 한마디가 있다면 '인간을 다스리는 사람은 사람 개개인의 중요성을 알아야 하며 인간은 누구든지 적재적소에 쓸모가 있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잡담 같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수락산 최고봉인 주봉(향로봉·해발 637m)을 향했다. 후배는 평소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 특히 독서도 좋아하고 건강관리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는 등산으로 건강관리를 할 만큼, 시간이 날 때면 도봉산, 수락산, 북한산, 불암산 등 서울 인근 산을 찾아다닌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산을 탄다. 한마디로 프로급 등산광이다. 나는 평소 운동량이 부족하고 1년에 한 두번 정도 등산을 할까 말까하는 사람이다.

폭염 속에서 프로에 버금가는 후배를 따라 등반을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모험이었다.

올해는 등반과 관련해 내 생애에 영원히 기록할 만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지난 6월15일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통일언론인 포럼' 창립과 '남북언론교류 활성화 토론회'가 금강산 금강산호텔에서 언론인과 언론 현업인 등을 상대로 개최된 적이 있다. 이 때(2박3일) 통일언론인 등반대회가 열려 금강산 세존봉(1132m)까지 등반했다.

또 다른 등반 경험으로 지난 8월 6일 경험했던 수락산 주봉(향로봉) 등반이 있다. 개인적으로 세존봉 등반이 통일언론을 위한 사건이라면 수락산 등반은 인내를 경험하는 사건이 됐다.

▲ 함께 동행한 박보형 씨가 주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2005 김철관

이날 수락산 등반길에 오르면서 일기예보를 듣지 못하고 떠났다. 등산이 끝난 후 텔레비전 저녁 9시뉴스에서 올해 들어 서울에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는 기사 멘트를 듣고 35도라는 것을 알았다. 수락산 정상까지는 해발 650미터다. 금강산 세존봉에 비하면 1/2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무심코 후배를 따라갔던 수락산 산행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수락산입구는 주말인데도 등산객이 한산해 보였다. 후배는 한산한 코스를 잡았다고 했다. 등산로는 험난한 금강산 세존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세존봉 산행 때보다 더 힘들었다. 더운 날씨 탓이었다. 주저 않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숨이 꽉꽉 막혀오고 맥이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물병에 가득한 얼음 냉수도 순식간에 없어졌다. 후배는 지칠 줄 모르고 발길을 재촉했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후배왈 "정말 덥다. 이렇게 힘든 등반은 없었다"고 자인했다. 그는 나를 향해 "형도 대단한 사람이야. 이렇게 따라오는 것을 보니"라고 말했다. 말할 찰나 약수터가 나왔다. 7월 '수질검사 양호'라는 노원구청 수질확인서가 눈에 띄었다. 후배와 나는 곧바로 약수터에 걸려있던 컵을 들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세수도 했다. 땀에 찌든 손수건을 빨아 손목에 맺다. 거기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가만히 보니 내가 옆에 앉아 있는 후배보다 땀이 더 많이 흐른 것 같았다. 옆에 앉아 있던 그의 윗옷을 걷어보니 넌닝구(속옷)가 없었다. 그는 웃으면서 등산길에 "무슨 속옷을 입고 왔냐"며 "빨리 속옷을 벗어 배낭에 넣어라"고 했다. 넌닝구 때문에 땀이 더 많이 났다는 것을 알았다. 후배 말이 계속 이어졌다. "속옷이 땀에 찌들면 잘 마르지 않아. 빨리 벗어"라고 재차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단호히 뿌리쳤다. 이유는 등산객들이 오가는 등산로에서 근육질도 아닌 돼지 삼겹살같이 지방살만 붙어있는 엉성한 몸을 자랑이나 하듯 자신 있게 벗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벗지 않고 그냥 산행을 계속했다.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해발 400미터 정도 올라와 밑을 보니 서울 노원구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더덕더덕 밀집된 아파트가 군데 군데 모여 있었다.

불볕더위에 아파트 시멘트가 달구어져 시멘트가 파편으로 둔갑해 금방 튀겨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저 달궈진 시멘트집 안에서 대기오염(이상기온)의 주범인 에어컨 열기를 밖으로 내뿜는 장면이 떠올랐다.

어쨌든 약수터에서 출발해 계단을 올랐다. 비지땀을 흘리며 30분을 더 걸었을까? 갑자기 후배가 소리쳤다. 이상하게 생긴 바위를 가리키며 "저 바위를 곰곰이 살펴봐. 무엇을 닮았는지"하며 나더러 맞추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는 수락산 등반을 밥먹듯이 해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영락없이 남자 성기를 닮은 바위였다. 참 묘하게도 고추는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고 그 밑에 고환(불알)이 고추를 바치고 있었다. 신기하고 묘한 경험이었다. 수락산 정상을 200미터를 앞두고 아이스크림, 음료수, 막걸리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무더운 날, 어떻게 그 많은 물건을 정상 가까운 곳까지 가지고 왔을까 궁금했다. 잠시 상념에 잠겨 있는데 "이곳에서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갑시다"라는 후배 말이 들려왔다. 문득 겁이 났다. 술을 잘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이 불볕더위에 알콜까지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먹지 말자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열치열이라며 점심 때도 지났는데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가자는 것이었다. 바로 옆은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등산객 아주머니 두 사람이 펄펄 끓인 컵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땀을 많이 흘려 배가 출출한데다가 그 모습을 보니 배가 고파왔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허락했다. 우리는 막걸리를 한 사발씩 순식간에 들이켰다.

배가 든든해졌다. 곧바로 정상을 향했다. 하지만 산이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허공을 밟은 기분이었다. 정상 향로봉에 올라 휴식을 취했다. 술을 조금 깨고 가고 싶은 생각에 좀더 쉬고 가지고 후배에게 말했다. 그도 그렇게 하자고 했다. 중국사기 얘기를 또 건넸다. 하지만 나는 술에 취한 탓에 비몽사몽간에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얘기를 들어줬다.

그는 "중국역사를 제대로 파악해야 그와 연계된 한국역사를 새롭게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락산에 관한 얘기도 했다. '물이 항상 떨어지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등산로를 따라 옆으로 펼쳐진 수락산 계곡은 후배 말 그대로 맑은 물이 바윗돌에 부딪쳐 출렁출렁 소리를 내며 정상에서 밑으로 하염없이 흘렀다.

휴식을 끝내고 향로봉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마셨던 술이 어느 정도 해독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모르니 바로 주봉(향로봉)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 숙취를 해소하면서 남양주 청학리쪽인'내원암'으로 향했다.

중간에 등산객들의 휴식공간인 '수락산장'이 나왔다. 오르는 산보다 내려오는 산이 더 위험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내려오는 길은 유난히 무릎이 시큰거렸다. 모처럼 산행을 해서인지 발가락도 껍질이 벗겨진데다가 상처부위가 땀에 닿아 쓰라렸다.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아무리 발길을 재촉하려해도 걸음이 떨이지지 않았다. 기진맥진했다. 더위를 확실히 먹은 것 같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산을 내려 왔다. 후배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없어졌다. 무릎이 너무 시큰거려 뒷걸음질도 했다.

▲ 수락산 정상인 '주봉' 표시
ⓒ2005 김철관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밑에 내려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절인'내원암'주변에 말로만 들었던 유명한 두개 폭포가 있었다. 내원암은 영조 계비 정순왕후가 왕손을 얻고자 내원암 주지 용파대사에게 300일 기도를 드리게 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 번째 폭포는 금류(金流)폭포였다.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왕위 찬탈에 분노해 이곳 금류폭포에서 10년간 머물렀다. 내원암에서 약간 내려오니 은류(銀流)폭포가 있었다. 해가 동쪽에서 뜰 때 물빛이 은빛으로 변한다고 해서 은류 폭포라고 전해오고 있다. 은류폭포는 겨울철 빙벽타기로 소문난 곳이다.

내원암과 금류폭포, 은류폭포를 지나 청학리를 향하는 수락산 계곡은 이날 피서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등산로는 사람과 승용차로 가득했다. 군데군데 버려진 쓰레기와 오물에는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환경의 중요성이 새삼 생각났다.

어느새 후배가 앉아 있는 주막집 와상에 도착했다. 후배를 발견하니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절로 미소가 나왔다. 후배도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후배와 함께 좀더 내려오니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청학리 마을이 나왔다. 서울 노원구 수락산 입구에서 출발해 3시간 30분만에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수락산 입구에 도착한 것이었다.

청학리 근처에서 냉면으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의정부가 집인 후배는 시외버스를 탔다. 나도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힘겨운 등산길이었다. 험한 세존봉보다 몇 배 힘든 산행이었다. 이날 저녁 9시 뉴스는 올해 들어 서울에 가장 높은 기온(35도)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산행이 아닌 극기 훈련이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됐다.

/김철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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