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개구리 너, 혼쭐 좀 나볼래

2005. 7. 20.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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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희경 기자] 밤마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다가도 개구리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면 잠이 스르르 몰려온다. 여름개구리들은 논배미, 연못, 숲 속, 풀숲 등 어디에서나 시도 때도 없이 잘도 울어댄다. 개구리 소리들은 듣는 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들리지만, 요즘 소리들은 어른들의 책 읽는 소리처럼 "가갸거겨 고교구규"로 들린다.

▲ 식용개구리, 잡아 먹으면 벌금 물어요 ⓒ2005 윤희경 오늘 아침 텃밭에 풀을 뽑다 보니 흙색을 닮은 길다만 지렁이 한 마리가 딸려 나왔다. 지렁이는 친환경 유기농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귀한 손님이다. 이들은 땅강아지, 굼벵이들과 함께 척박한 땅을 옥토로 만들어 놓는 일꾼 동무들이기 때문이다.

처음 시골로 들어왔을 땐 퍽이나 혐오스럽고 징그러워 보자마자 얼굴을 돌려댔지만, 지금은 친구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양손가락으로 몸뚱일 만지작거리노라니 온몸이 촉촉하고 끈적끈적 근질거린다. "흙을 갈아 유기물을 옮겨오고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나의 갈색 친구여, 어서 땅 속으로 들어가 밭갈이나 하시게나"하고 밭고랑으로 들이밀었다.

▲ 나의 영원한 갈색 친구 지렁이, 땅을 비옥하게 갈아주는 일꾼 동무 ⓒ2005 윤희경 그때다. 이 웬 날벼락인가. 어서 나타났는지 무당개구리 한 마리가 지렁이를 통째로 꿀꺽꿀꺽 집어삼키고 있는 게 아닌가. 기가 막혀 어 어어… 하고 있자니, 벌써 반은 뱃속으로 넘어가고 있다. 지렁이야 공격수단이 있어야 방어를 하지. 그냥 꿈틀거리며 안간힘만 쓸 뿐 별 재간이 없다. 살아남으려 용트림을 치고 있는 처절한 모습이 그저 안쓰러울 따름이다. 온몸을 비틀어대는 바람에 몸통이 굵었다 가늘어졌다 흐느적거릴 뿐이다. "무당님, 다 잡수시면 안돼요, 조금만 남겨 줘도 저는 살아납니다. 조금만, 네, 조금만요"하고 애원을 해도 눈알만 뒤룩거릴 뿐 잘도 집어 삼킨다.

▲ 무당개구리가 나타나 지렁이를 한 입에 꿀꺽, 죽겠다 몸부림을 쳐보지만.. ⓒ2005 윤희경 *아지못게라 검붉은 흙덩이 속에나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대처럼기인 허울을 쓰고 태어났는가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과니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이니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닥쳐올 앞날은 더욱 모르노라다만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아지못게라; "알 수 없노라"를 뜻하는 감탄사*청맹과니; 보기에는 멀쩡한 눈이나 볼 수 없는 눈- 윤곤강의 시 <지렁이의 노래> 1-2연 ▲ 조금만 남겨달라 애원해도 어느새 다 집어삼키고... ⓒ2005 윤희경 아침부터 푹푹 찐다. 냉수나 한 사발 마시려고 뜰 밖 샘터로 갔다. 샘터 도랑에선 또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암수 둘이서 찰싹 달라붙어 정신이 없다. 아니, 아직도 알을 낳으려는가. 참고서적을 뒤져보니 5월~7월까지도 알을 낳는다고 되어있다.

청록색 바탕에 불규칙한 무늬, 보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뱀도 싫어한다는 무당개구리이지만 종족 번식에는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무당개구리 세상이다. 방문을 열어놓으면 방에까지 뛰어들 정도다. 두꺼비를 닮아서 그런지 우는 소리도 비슷하게 숨을 들이쉬며 "꾹, 꾹, 꾹꾹" 울어댄다.

▲ 아직도 짝짓기가 한창, 툭 건드리자 독을 내 뿜고 있다. ⓒ2005 윤희경 그러나 꾀는 말짱하다. 적을 만나면 두꺼비처럼 등을 펴고 붉은 색의 배를 내보인다. 어쩌나 보려고 손으로 톡톡 건드리노라니 아니나 다를까. 짝짓기 중인데도 발딱 자빠져 드러누워 독이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죽은 척 한다. 조금 심하게 건드리자 이번엔 업힌 채 달아나며 흰 액 젖을 발산한다. 실제로 피부에는 독이 있어 만지면 자극이 온다. 무당개구리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독이 옮을 수도 있다니, 물놀이철인 요즘 어린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시켜둘 일이다.

▲ 툭툭 못살게 구니까 발딱 자빠져 독이 있음을 경고한다. 짝짓기 중인데도. ⓒ2005 윤희경 암놈은 수놈을 업고 다니자니 앞가슴이 불룩거리고 눈까지 찢어진 입을 벌리며 숨이 차 고역이 대단하련만, 수놈은 미끈덕거리는 등짝 위에 뒷발을 바짝 조이고 눈알을 뒤룩뒤룩 욕정을 불태우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당개구리지만, 오늘 저녁에도 열대야로 잠이 안 오면 낮에 구경한 그들만의 짝짓기 쇼나 떠올리며 잠을 청해 봐야할 듯싶다. 아, 오늘도 대지가 펄펄 끓는다. 소나기라도 한 줄금 시원히 내렸으면 참 좋겠다.

▲ 이 여름을 시원하게 ⓒ2005 윤희경 /윤희경 기자<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윤희경 수필방에도 함께합니다.

기자소개 : 윤희경 기자는 북한강 상류에서 솔바우농원을 경영하며 글을 쓰는 농부입니다. 올 4월에 에세이집 "북한강 이야기"를 펴낸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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