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 공정거래위원장 출총제 민간규제 전환 바람직

2005. 7. 18.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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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장’이란 용어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해 가을 김장수교수의 장례식 때 부터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문중이나 개인적으로 초보 형태의 수목장 장례를 치른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은 대부분 일반 매장과 화장뒤 납골장이 모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절감하고 올바른 장례문화의 대안을 찾아 남들보다 앞선 발걸음을 내디뎠다.

수목장의 의미조차 정립되지 않았을 때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다.

◆진주 강씨의 가족 묘원=경북 상주시 내서면 북장리. 소백산 자락인 산 능선은 완만한 내리막에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휘어 있다.

이 곳은 진주 강씨 집의공파의 가족묘원.200여평의 부지엔 모두 49명의 골분이 묻혀 있다.

원래는 세 명의 봉분만 있었으나 6대 조부인 세규 어른의 묘만 남겨두고 모두 개장을 한 뒤 새 장지를 꾸몄다.

강씨 문중은 먼저 인근 야산은 물론 거제도 등에 흩어져 있던 묘를 찾아 유골을 수습한 뒤 모두 화장을 했다.

이후 그 골분을 땅 속에 묻고 그 위에 70㎝×80㎝ 정도의 좌대와 검은 표석을 하고 고인의 이름을 새겼다.

골분을 감싼 것은 단지 창호지 두 장뿐이다.

묘 터는 항렬에 따라 28칸의 자리를 잡고 부부는 합장을 했다.

묘지를 돌아다니며 따로 제를 올리거나 절을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위해 맨 아래 작은 제단을 마련,합동 제례만을 올리게 했다.

이 묘원은 건축업을 하는 강신해(63)씨가 앞장서 조성했다.

“5년 전쯤이었어요.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나라 산줄기를 내려다 봤는데 군데 군데 파먹혀 있는게 꼭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에 걸린 듯 했어요. 어릴적 ‘기계충’ 이라고 부른거 있죠,딱 그거였어요.”강씨는 이게 온 산을 뒤덮은 묘지 때문이란 것을 깨닫고 해결 방법을 찾던 중 코흘리개적 친구인 김인씨와 함께 색다른 방법을 생각해 낸다.

이후 형제와 집안 어른,조카들을 설득하고 10차례 이상 현장으로 불러 계획을 설명했다.

처음엔 다소 꺼려하던 일가들도 “멀리 있는 것보다 부모와 형제 곁에 묻히는 게 오히려 ‘명당’ 아니겠느냐”는 의견에 어렵지 않게 승낙했다.

이로써 겨우 두 개의 묘자리가 있던 곳에 7대 120여명이 함께 묻힐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묘지를 이른바 ‘리모델링’ 한 셈이다.

그 뒤 묘지 사이엔 80㎝ 정도의 주목 40여그루를 심었다.

또 나머지엔 맥문동을 심어 폭우 등으로 인한 토사 유실을 막고 수풀이 우거지게 했다.

“성묘의 불편함이 사라진 것 뿐 아니라 그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던 친척이 쉽게 한 자리에 모이는 기쁨이 보너스로 생겼습니다.

”강씨는 “앞으로 야생화와 함께 감나무 등 유실수를 심어 하늘에서 보더라도 이 곳이 묘지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공동묘지나 무연고 묘지 재개발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최씨의 인덕원=경북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에 있는 ‘인덕원’은 2002년 경주 최씨 진사공파가 세운 산골 방식의 가족묘원이다.

500여 평의 부지에 마련된 인덕원에선 친척 중 사망자가 생기면 흙과 유골을 1대1 비율로 섞어 잔디 밑에 파묻고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고인의 표식은 입구에 50여명의 이름을 새겨 놓은 돌(名單石) 위에 단지 ‘몇년 졸(卒)’이라는 글자만 추가로 새겨 넣기만 하면 끝이다.

이같은 노력 덕분인지 3년새 돌아가신 사람은 다행히 한 명도 없다.

이후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청 등 기관 관계자들의 현장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문중회장 최봉진(80)씨는 “우리 매장 문화는 죽은 뒤에 효도한다는 허례 허식때문에 생긴다고 생각한다”며 “대대로 골분을 공원 내에 모실 수 있고 장례 치르는 일도 아주 간편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명 인사들의 자연장례=사회 유명인사들 가운데도 이와 같은 장례를 치르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이규정 전 국회의원은 지난 4일 돌아가신 부친의 장례를 수목장으로 치렀다.

이 전 의원은 선친의 유골을 울주군 범서읍 선산의 한 꽃나무 아래 묻고 “화초를 좋아했던 분이라 편히 여기실 것인데다 자연에 가장 가까운 장례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씨는 2003년 2월 62세의 생을 마감하며 소설의 무대이자 고향인 충남 보령의 관촌 뒷산에 유골이 뿌려졌다.

이 곳은 어린 시절 그가 뛰어 놀던 곳으로 그는 생전 “내 이름을 단 어떤 문학비도 세우지 말고 내 이름을 운운하는 문학상도 만들지 말라”는 참으로 그다운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고미술사학자인 김원룡씨의 장례 또한 화장으로 치러져 골분이 그가 발굴한 경기도 연천의 전곡리 구석기 유적에 뿌려졌다.

72세에 눈을 감은 그는 이미 40대에 유서를 적어 연구실 캐비닛에 보관해 왔다.

그 유서엔 “내가 죽으면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즉각 관에 넣어 곡성 울리지 말고 화장하라”고 적혀 있었다.

이밖에도 손길승 전 전경련회장은 99년 모친이 별세하자 화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경남지역에 있는 선산에 뿌렸다.

작가인 한말숙씨는 2년전 가상 유언장을 통해 자신이 숨지면 ‘화장해서 재를 엄마가 아끼는 정원의 주목 밑에 뿌려라’ 라고 당부했다.

상주=김용권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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