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한국작가 낭송회 첫 행사 현지 스케치..궂은 날씨에도 청중 모여 열띤 관심

2005. 5. 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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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비를 타고 내리는 것일까.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라지만 독일 북부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는 세찬 바람에 비가 오락가락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5일(현지 시간) 함부르크의 클라우스 그로트 스트라세에 위치한 소극장 뷰넨베르크(무대공방)는 궂은 날씨에도 재독 교포 40여명을 포함해 70여석의 좌석에 청중들로 가득찼다.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위원장 김우창)가 마련한 ‘함부르크 한국작가 낭송회’의 오프닝 행사가 열리는 중이었다.

첫 낭송자인 소설가 이승우(46)씨는 장편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의 한 대목을 낭송하기 앞서 작품 주제에 대해 설명했다.

“평소에 잠을 자지 못하던 사람이 목수학교에 가서 기술을 익힌 뒤 자기 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편안하게 잠을 잔다는 이야깁니다.

관이 연상시키는 죽음과 그 안에서의 편안함을 어머니의 자궁에 비유한 사색적인 소설이지요. 소설은 ‘나는 일년 밖에 살지 않을 것이다’라고 시작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나는 아주 오래살 것입니다’로 맺습니다.

”소설의 한 대목을 연극배우인 세바스찬 둔켈베르크씨가 독일어로 낭송하자 장내는 기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정적속에 빠졌다.

대신 청중들의 두 귀가 쫑긋거리며 문장 한 줄 한 줄을 따라가고 있었다.

문학은 문자가 아니라 오감의 예술이었다.

소극장의 정적이 비때문에 더욱 습기를 머금을 때 두번째 낭송자인 황석영(63)씨가 나섰다.

영국에서 건너온 그는 “우리 문학을 독일어로 읽으니 독일어가 더욱 아릅답다”고 운을 뗀 뒤 소설 ‘오래된 정원’(독일어판 제목 ‘머나먼 정원)의 개요를 설명했다.

“이 소설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지어낸 이야기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랑을 잃어버린다는 것인데,역사 또한 마찬가지요. 저는 자전적 소설을 많이 쓰는 편은 아니지만 소설엔 제가 겪은 80〜90년대와 제 친구들의 삶이 모자이크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와서 1년만에 쓴 소설인데,대개 감옥에서 오래 살고 나오면 파괴되기 쉽죠. 하지만 제 경우엔 3개월 만에 회복됐어요. 감옥에서 제 안에 잠들어 있던 문학 정신을 쏟아부은 것이죠.”세번째 낭송자 서정인(68)씨 차례였다.

그는 “소설 ‘귀향’은 30년전에 쓴 소설이라 줄거리까지 잊어버릴 지경이지만 대충 세 사람이 고향에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한 뒤 “나는 지금도 고향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곳에 살지만 가끔 고향 꿈을 꾼다”고 말문을 열었다.

“인간은 늘 고향길을 따라갑니다.

꿈속에서도 말이죠. 고향은 물리적인 고향뿐만 아니라 영원한 양식으로서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오후 8시에 시작된 낭송회의 밤은 깊어가고 한국어가 독일어에 촉촉히 스며들고 있었다.

이날의 마지막 낭송자 성석제(46)씨는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의 창작 노트를 공개했다.

“제 데뷔작입니다.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가 반역죄로 사형대에 서 있을 때 전 인생이 1분만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더라는 말을 했지요. 그 얘기를 읽고 소설을 쓰게 됐죠.”이날 늦도록 자리를 지킨 독일 아베라출판사 대표 마르쿠스 보스(32)씨는 “시는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지만 소설은 사전 지식이 없어도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며 “독일에서 한국문학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것”이라고 말했다.

낭송회는 소극장 뷰넨베르크에 이어 함부르크 연안 부두에 설치된 제레 젤트(낭송텐트)를 중심으로 인근 아가텐부르크,브레멘,뤼네부르크 등지를 순회하며 열렸으며 소설가 조정래 이제하 정찬 전경린 김연수,시인 황동규씨 등이 참석했다.

함부르크=정철훈 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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