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겁나게 맛난 "동치미메밀국수"를 먹다

2005. 4. 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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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 상추와 쑥갓을 솎고 있는 아내 ⓒ2005 김민수 하루가 다르게 푸르게 변하는 텃밭을 보면 텃밭에 있는 채소로 밥상에 올릴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텃밭에 있는 상추와 쑥갓을 솎아냅니다. 저녁에는 상추겉절이를 조금 해놓고, 삼겹살에 상추와 쑥갓으로 된장을 듬뿍 발라 쌈을 먹으면 그만일 것 같습니다.

아내가 텃밭에 나와 상추와 쑥갓을 솎을 때 나는 마늘밭 김을 매고 감자를 심습니다. 삽질을 하는 일도 재미있습니다. 물론 그 재미를 느끼기까지 감내해야 할 것들도 많이 있지만 육체노동 뒤에 오는 편안함과 그 어간의 사색의 시간들과 수확의 기쁨을 미리 상상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 지난 4월 5일 뿌렸던 열무 ⓒ2005 김민수 지난 식목일 뿌렸던 무와 배추도 제법 튼튼하게 올라왔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크면 솎아서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솎아서 날로도 먹고, 살짝 데쳐서 나물처럼 무쳐 먹으면 아살한 풀 맛이 바로 밥도둑이 됩니다.

씨앗이 흙을 만나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면 자연의 섭리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반자연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제동장치가 고장 난 자동차를 타고 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지금이라도 돌이켜야 하는데 그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누구 하나 미친 운전수가 운전하는 그 자동차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이 그저 그렇게 조마조마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건 아닌데"라고 공감하면서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함께 휩쓸려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면서도 그 안에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현실, 간혹은 이 현실이 너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 부추 ⓒ2005 김민수 부추의 뿌리를 가지런하게 심어놓았더니 텃밭의 한쪽은 한 겨울에도 푸릇푸릇한 부추가 끊이지 않고 돋아납니다. 맨 처음 부추를 심었을 때에는 아까워서 잘라먹질 못하고 꽃구경이나 하자고 했는데 부추전이 먹고 싶어 실한 이파리들을 잘라먹었더니 그냥 둔 것들보다 더 넓고 무성한 이파리를 냅니다.

하얀 별 모양을 닮은 부추꽃도 실컷 구경하게 하고, 부추꽃에 찾아든 나비도 보게 하고, 부추전을 할 때 재료가 되어주고, 부추김치뿐만 아니라 김치를 담글 때에도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부추가 고맙기만 합니다.

▲ 딸기 ⓒ2005 김민수 지난 겨울 양지바른 곳에 있는 딸기모종 두어 개 얻어다 텃밭에 심었습니다. 기대도 안 했는데 하얀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제법 맛난 딸기를 선물로 내어놓을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삽질을 하면서 감자 심을 밭고랑을 만들었더니 배가 살살 고파 옵니다. 옷에 흙이 잔뜩 묻었으니 집으로 들어가면 아내가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집이 더러워질 것이고, 그렇다고 식후에 또 밭에 나와야 할 텐데 옷을 갈아입는 것도 번거로워 쪽파를 뽑아 파김치를 담그겠다고 다듬는 아내에게 밭에서 새참을 먹자고 했습니다.

"여보, 우리 여기서 국수나 삶아서 새참 먹자.""국수나? 그게 쉬운 줄 알어? 나도 지금 파 다듬고 있는데 다 끝나고 아예 점심을 먹지?"가만히 시간 계산을 해보니 도저히 배가 고파서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내를 불러 딸기 꽃을 보여주면서 또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딸기 꽃들의 몽우리들을 보여줍니다.

"딸기가 무척 많이 열리겠지?""세상에 뭔 꽃이 이렇게 많이 피려고 하나? 우리 식구 먹기에는 딱 좋겠네.""근데, 이거 누가 갖다 심었지?""자기지 누구야?""그렇지. 새참 안 해주면 딸기 익었을 때 자기 안주고 나하고 아이들만 먹는다.""협박하는 거야?""그건 아니고, 그냥 동치미 국물에 국수 말아먹자. 나 배고프다.""알았어, 치사하게 먹는 거 가지고. 그 대신 딸기에 대한 권리는 나한테 넘기기다.""내가 새참 먹고 맛있다고 하면." ▲ 동치미메밀국수 ⓒ2005 김민수 감자씨를 고르고, 자르고 있는 동안 아내가 새참을 내왔습니다. 메밀국수를 삶아 동치미국물을 붓고 동치미 무를 송송 썰어 맛깔 좋게 담아왔습니다. 속으로 "맛있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동치미 메밀국수를 먹기 시작하는데 배가 고픈 데다가 야외에서 봄 햇살을 맞으며 먹는 새참의 맛이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만 "야, 맛이 죽여주는데" 했습니다. 내 속마음도 모르는 아내는 "맛있지?"하며 국수 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에 마냥 즐거워합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아내가 한마디합니다.

"아까, 딸기에 관한 것은 잊지 마.""치, 그냥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더니, 뭐, 설령 새참 안 먹었다고 딸기를 안 줄까.""맛있게 먹고 나니까 딴소리네. 아무튼 저 딸기는 이제부터 내 것인데 딸기 익었다고 내 허락 안 받고 따먹으면 국물도 없다."그렇게 동치미메밀국수와 딸기를 바꿨습니다.

▲ 엉터리 농사꾼의 작은 텃밭일부 ⓒ2005 김민수 감자를 다 심고 가지런하게 정돈 된 밭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비실비실하지만 "나도 마늘"이라고 열심히 자라고 있는 마늘, 조금 있으면 꽃을 피워 벌과 나비깨나 끓어 모을 파, 얼마 전에 뿌린 열무와 배추와 치커리와 깨의 싹, 하얀 꽃이 핀 딸기, 무성한 상추와 쑥갓, 만병통치약으로 쓰인다는 어성초, 삐죽삐죽 올라온 둥굴레 싹, 가을에 하얀 꽃이 필 참취, 저절로 씨가 떨어지고 새싹이 난 메밀, 삶아서만 먹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연한 것은 그냥 쌈으로 먹어도 쌉쌀한 머위, 잘라도 잘라도 쑥쑥 자라는 부추, 구이로 먹어도 맛난 더덕, 남들이 다 못생겼다 하는 호박, 아직 싹이 올라오지 않은 옥수수.작은 텃밭에 참 많은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많은 것들이 의미 있는 것은 그 하나하나마다 나의 손길이 들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 아내와 함께 밭에서 먹은 새참, 동치미메밀국수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노년의 때를 보낼 때에 "동치미메밀국수"를 떠올리면서 옛 추억을 더듬을 것 같습니다. 오늘, 겁나게 맛있는 "동치미메밀국수"를 먹었습니다./김민수 기자<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이며 자연산문집<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와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들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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