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다아체시 르포 4신] 물도,음식도,전기도 없다..눈물조차 메마른 사람들

2005. 1. 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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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르포] 국민일보 한장희 특파원 현장 르포 4신○…“이 환자한테 신경안정제 주사 놓고 알약 진정제 하루치 싸드리세요. 내일 꼭 다시 오라 그러고.” “다음 환자 들어오세요. 이런! 정강이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찢어졌네! 간호사,빨리 소독부터 하세요.” 2일 오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시 중심가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루이가자 지역 TVRI 방송국 건물 마당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팀 진료캠프가 설치되기 무섭게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비교적 고지대인 이 곳에는 이재민 2000여명이 천막생활을 하고 있다. 자녀를 잃고 반쯤 넋이 나가 남편 손에 이끌려 온 아내,다리 상처가 벌어져 앙상한 뼈를 드러낸 어린이,더운 날씨에 상처 부위가 곪을 대로 곪아 고름이 흐르는 노인…. 외과 담당 김현태(35) 의료팀장은 “2003년 이라크 전쟁터 의료봉사도 참여했는데 이라크엔 그나마 야전병원이라도 있었지만 이 곳은 정말 아무 것도 없다”며 “외과 환자들은 상처가 덧날대로 덧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진료캠프를 찾은 마르와니(44)씨는 충격적 사건을 겪은 뒤 정상 생활이 불가능한 전형적 ‘외상후증후근’ 환자였다. 자녀와 부모가 숨지고 시신조차 찾지 못하자 나흘째 잠을 못자고 심한 구토에 시달려 왔다. 의료팀이 신경안정제를 주사하고 약을 건네자 수십차례 “땡큐”를 연발하고서야 돌아섰다. 1일 저녁부터 2일 오후까지 의료팀이 식사도 거르고 진료한 환자는 약 300명. 환자 외에도 구호품을 받으러 수백명이 장사진을 이뤘다.

지진해일이 할퀸 죽음의 도시 반다아체. 그곳엔 마실 물도,음식도,전기도 아무 것도 없어 각국 구호팀 선발대와 외신 취재진도 비스킷과 생수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그러나 생필품 부족은 시체로 덮인 강과 폐허에서 가족을 찾는 주민들을 지켜보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토바이에 인력거가 연결된 차량을 빌려 시내로 들어서자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진해일 이후 처음 소나기가 내린 직후여서 거리 곳곳에는 빗물이 시신에서 흘러나온 핏물과 썩은 물에 뒤섞여 흘렀다. 군데군데 패인 웅덩이마다 수인성 전염병 사태를 예고하듯 이런 물이 고여 있었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메단강 동쪽 ‘메단 호텔’에는 거대한 선박이 해안에서 500m나 밀려와 장식물처럼 걸려 있었다. 이 호텔 앞에서 장사를 했다는 자카리아(52)씨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가족과 친척 10명이 죽었다.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제발 가족을 찾아달라”며 기자에게 매달렸다.

인근 아체강에는 검붉은 색깔로 퉁퉁 부은 시신 수백구가 떠 있었다. 한 외신기자가 사진을 찍으려고 다리 위로 올라서자 주민들은 “여기는 어제까지 시신 수백구가 쌓였던 곳”이라며 “미끄러지면 핏물에 범벅이 되니 비켜서라”고 했다. 멀쩡한 상태로 강가 정박해 있는 배들은 가족과 친척 생사를 확인하려는 현지인들이 육로나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대신 타고 온 것들이다. 이들은 오토바이도 싣고 와 낮에는 시내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밤이 되면 배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인력거를 내려 걸어 들어간 주택가 람무로빌리지는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만 가득했다. 모든 것이 부서진 거리에서 마실 물이 없어서인지 흙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쭈그려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선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빈 건물마다 주민들이 몇명씩 달라붙어 땔감으로 쓰기 위해 목재를 뜯어내는 광경이 보였다.

반다아체는 해안에서 약 12㎞ 지점까지 지진해일로 초토화됐다. 현지인 구조대가 해안부터 시작해 복구작업 지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아직 피해지역 중 4분의 1 정도만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2일 현재 신원확인 절차도 생략한 채 간신히 수습해 이슬람 관습에 따라 화장하지 않고 땅에 묻은 시신은 1만2381구. 8만〜9만명으로 추정되는 사망자 중 상당수 시신은 바닷물에 휩쓸려 갔다.

피해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이르자 ‘메스 구부너’란 주정부 건물에 재난대책본부격 ‘센트럴 포스코’라 차려져 있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직속 관료라는 부디아 아디푸트로 재난구호본부장은 간단한 현황을 브리핑하며 “우리는 당신들에게 어떤 도움도 줄 형편이 못된다. 다만 구호작업이 시급한 곳을 알려주는 조정자일 뿐이다. 최선을 다해달라”고 호소했다.

하루종일 시달린 악취에 어느 정도 둔감해질 법도 한데 센트럴 포스코를 나서자 다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자가 만난 반다아체 사람들은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일주일간 눈물마저 말라버린 것인지,아니면 오랜 내전을 겪어 죽음에 익숙해진 탓인지 알 길이 없었다. 오히려 구호품으로 받은 음식을 서로 나누며 슬픔을 함께 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반다아체=국민일보 한장희 특파원[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The Kukmin Daily Internet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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