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풍파를 헤쳐 온 백탑의 당당함이여

2004. 12. 2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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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추연만 기자]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지금은 문화재청장이 되신 유홍준 교수가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펴내면서 쓴 첫머리 글귀다. "좁은 땅덩이에 쌓이고 보니 우리는 국토의 어디를 가더라도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영광의 왕도에서 심심산골 아래 끝 동네까지 아직도 생명을 잃지 않고 거기에 의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91년에 처음 본 저자의 글귀를 다시 펼쳐보다가 문득,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탑을 보러 가고픈 충동에 휘감겼다. 경주 나원리 5층 석탑은 다보탑, 석가탑처럼 많이 알려진 탑은 아니라도 "답사꾼"들은 빼놓지 않고 찾아가는 곳으로 손꼽힌다.

▲ 동지날을 맞아 한 아주머니가 탑에 경배하고 있다 ⓒ2004 추연만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호젓한 들녘, 먼발치에서 올려다 본 탑의 자태는 천년기개를 뿜어내어 이방인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놀랄 만한 힘을 지녔다. 숲 사이로 흰색 몸을 내민 당당한 탑의 자태에 끌려 야산언덕을 한 달음에 올랐다.

돌덩이가 내게 말하네요. 아! 원리, 나원리 탑이여10년 전, 감은사 탑 앞에서 느끼던 감흥이 영상처럼 또 다시 반복된다. 10미터 남짓 돼 보이는 크기의 웅장함에 머리는 저절로 숙여지고 1300년 풍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한 탑의 모양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천년의 세월이 멈춘 것인가? 이끼가 끼지 않은 백탑의 기이함은 놀라움을 넘어 짜릿한 전율이 몸을 휘감는다. 나무를 깍듯이 돌을 조각한 탑의 섬세함은 크기의 웅장함과 잘 어우러진 빼어난 작품이다. "장성한 귀공자"를 본 느낌이랄까? 국보로도 지정되어 있다. 제 39호.백색 화강암으로 만든 "나원백탑"은 청순한 이미지가 배어나오는 듯하며 2중 기단부와 5층 탑신부 구조의 정연함과 비례의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마음에 웅크린 미적 감각을 치솟게 한다.

▲ 탑신부의 아름다움 ⓒ2004 추연만 기단 각면 기둥에는 조각들이 보였고 탑신부 몸돌은 1층만 4개의 판석으로 짜고 그 위로는 1개의 돌이다. 낙수면과 층받침도 1층과 2층은 각 다른 돌로 쌓았지만 3층 이상은 1개의 돌이다. 낙수면의 각도는 예리하면서도 하늘높이 올라간 경쾌한 맛이 일품이다. 풍경을 달았던 작은 구멍도 보였고 파손된 상륜부는 아픈 역사를 보는 듯했다. 96년, 탑을 해체수리할 때 흔하지 않은 금불 동상(국립박물관 소장)과 사리 장식품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높은 위치에 세워 주위를 압도하는 당당함은 삼국을 통합한 신라의 번창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이 탑을 세우기 위해, 멀리서 화강석을 "목도질"한 신라 민중들은 어떠한 마음들이었을까? 석공들은 또 어떠했을까?백제의 목탑양식과 신라의 벽돌탑 양식이 융합되고 발전한 탑 가운데하나가 나원리 석탑이란 것이다. 감은사(경주시 양북면), 고선사(경주시 보덕동) 탑과 더불어 신라초기의 굳센 기상을 나타내 보인 나원리 5층 석탑은 불국사 석가탑으로 통일신라탑이 완성되게 하는 징검다리 예술작이었던 것은 아닐까?나원리 5층 석탑은 초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탑으로 감은사 탑의 웅장한 남성미와 고선사 탑의 섬세한 여성미를 본받은 듯한 모양이다. 그 크기는 9.76미터로 경주지역에서는 위의 두 탑 다음으로 크다. 이 석탑을 품었던 절의 이름은 아직은 알 길이 없으나 탑이 금당(본존을 모신 불당)자리 뒤쪽에 자리 잡은 특이한 가람배치로 그 의도를 더욱 궁금하게 한다.

나지막한 산들로 빙 둘러싸이고 눈앞에 펼쳐진 넓은 대지와 유유히 흘러가는 서천강물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절터는 가히 그 옛 절의 규모가 상상이 된다. 동짓날을 맞아, 탑에 경배 드린다는 한 촌로는 "이 절이 불국사보다 더 크고 황룡사보다 더 유명했다"고 전한다.

▲ 아래 ⓒ2004 추연만 토함산처럼 큰 산자락의 불국사나 귀족들만 드나들던 황룡사에 비해 나원리 사찰은 나지막한 야산과 민가에 가까운 곳에 있어, 귀족들보다는 평민들이 불공을 드리고 삶의 애환을 달래는 곳으로 더 유명했다면, 그 촌로의 말도 일리가 있으리라.탑의 당당함에 짓눌린 것일까? 아니면 세파에 찌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일까? 나원리 5층 탑 앞에 선 자신이 자꾸만 왜소하게 비춰지는 것은 지나친 감정의 사치일까? 천년의 풍파를 헤쳐 온 석탑의 당당함과 기개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고 다음세대의 사람에게도 "돌덩이가 내게 말하네!"란 감흥은 계속 전하게 되리라.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우리 세대의 임무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 감은사지 석탑 ⓒ2004 추연만 ▲ 고선사지 5층석탑 ⓒ2004 추연만 "문화유산 보존에는 해체 복원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가치가 있는 문화보존의 전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석가탑을 비롯한 통일신라시대 석탑 4기도 "현재의 모습을 살리면서 부분적인 보수는 꽤"하는 방향으로 재검토가 이루어진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모든 유물은 가능한 한, 본래의 모습대로 제자리에 있을 때에만 온전히 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추연만 기자<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나원리 5층석탑 가는 길**(1)열차:경주에서 포항가는 동해남부선 철도의 첫번째가 나원역.(2)버스: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210, 232,216번 버스타면 25분이면 나원리.(3)자가운전:황성공원에서 영천쪽 길로 다리건너 금장미을에서 우회전,그리고 500미터정도에서 연탄공장을 지나자마자 좌회전, 탑을 알리는 (작은)표지판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해서 1Km.-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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