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아이보다 내가 더 신났잖아?

2004. 12. 17.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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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성수 기자] ▲ 어른과 어린이를 위한 동요 뮤지컬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한장면. ⓒ2004 연희단거리패 내 기억 속의 동요1950년대에 태어나 60, 70년대에 학교를 다닌 내 나이쯤의 사람들에게 동요란 무엇일까? 한국 동요 80주년 기념 동요 뮤지컬 <푸른 하늘 은하수>를 보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남산 국립극장을 찾으며 내내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런 질문 속으로 문득 떠오르는 한장면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던가, 아니면 중학교 때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아슴아슴하기만 하다.

누나가 살고 있는 강원도 삼척의 어촌 마을로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음악을 좋아하던 매형이 어렵사리 구한 전축 한대가 누나네 집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들은 노래 한소절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는 <혼식 분식의 노래>였다. 전체 노랫말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쑥쑥 키가 큰다/ 힘이 솟는다/혼식 분식에 약한 몸 없다"하는 한구절만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점심 시간이면 아이들 도시락을 열게 하고, 담임이 일제히 혼식 여부를 검사하던 시절.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도시락의 윗부분에만 보리쌀을 섞어 오기도 했다.

그 획일적이고 강제화된 규율에 길들여지며 살아온 시절을 지금도 나는 <혼식 분식의 노래>라는 노래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면 노래는 기억이다. 노래를 통해 어느 한 시절이 선명하게 되살아오고, 그 시절의 삽화들이 살아난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서울로 와 누나와 자취를 하던 내게 동요 <고향땅>은 그리운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였다.

"고개 너머 또 고개 아득한 고향/ 저녁마다 놀 지는 저기가 거긴가/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불면서/ 아이들도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이 노래를 들으면 나는 지금도 그 시절로 돌아간다. 성북동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올라가야 했던 우리 집, 대낮에도 불을 켜야 사물을 분간할 수 있었던 셋방과 어미 잃은 짐승처럼 슬픈 눈으로 기대며 살았던 누나와 나, 그 외로움으로 성북동 산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던 먼 하늘, 눈물 그렁한 눈에 그려지던 고향의 모습, 산에서 소를 몰고 내려오는 저녁 무렵의 고향 친구들 얼굴과 그 서늘하고 풋풋한 바람이 노래 속에서 고스란히 살아난다.

▲ 신나게 노래 부르는 밀양 월산초등학교 아이들.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한장면. ⓒ2004 연희단거리패 노래로 듣는 동요의 역사어린 시절에 불렀던 동요는 우리에게 잊혀진 어린 날을 찾아가게 하는 징검다리다. 그 징검다리를 건너 그리운 시절을 만나러 가는 공연이 바로 <푸른 하늘 은하수>다.

여덟살 난 늦둥이 아들의 손을 잡고 들어선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은 객석이 겨우 100여석 남짓한 소극장이다. 그리고 무대 장치 역시 작고 앙증맞다.

객석 앞쪽으로 낡은 교실이 자리 잡고 있다. 무대 좌우에 키 작은 책걸상 몇 개가 아이들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교탁이 있고 그 뒤에는 낮은 칠판이 걸려 있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고, 조그만 커튼이 달린 창문 밖에는 풍금이 놓여 있다. 그 풍경만으로도 금세 관객은 기억 속의 교실로 시간 이동한다.

"여기가 어디야?" "응, 옛날 교실이란다."낯선 풍경을 보고 묻는 아이에게 한 엄마가 추억에 잠겨 대답을 한다.

징 소리가 울리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온다. 밀양 월산초등학교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며 즐겁게 노래 부르고, 어느새 관객들도 박수를 치며 아이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의 힘은 아무런 사건 전개조차 없는 상황에서도 배우와 관객을 서서히 하나로 만들어 간다.

밀양 월산초등학교는 곧 폐교될 위기에 처해 있다. 아이들은 전국 동요 대회의 지역 예선에 나가기로 되어 있지만, 학교가 폐교되고 학교 터에 골프장이 들어서게 된다는 소문에 노래 연습에 집중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때 할아버지 선생님 한분이 전근을 온다. 전 선생님(전성환 분)은 흩어진 아이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기 위해 우리 나라 동요가 걸어온 이야기를 들려 준다. 방정환과 윤극영의 만남을 통해 <반달>이라는 동요가 처음 만들어지고, 방정환과 윤석중의 만남으로 우리 동요가 보다 풍부하고 다양해지게 된 과정들이 할아버지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노래극으로 펼쳐진다.

아이들은 우리 동요가 걸어온 길을 보면서 열심히 노래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 결과 도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고, 방송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학교가 없어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한다. 아이들의 인터뷰를 본 교육청에서는 어차피 없어질 학교이니 조용히 사라지라고 할아버지 선생님에게 압력을 넣는다.

<푸른 하늘 은하수>는 두 겹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폐교될 위기에 놓인 밀양 월산초등학교 아이들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나라 동요가 어떤 길을 걸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다.

소설로 치면 액자형의 구성을 지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액자형의 구성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세계가 어떻게 서로 연관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형식이다. 노래극 <푸른 하늘 은하수>는 이와 같은 형식으로 우리에게, 동요는 그저 어린 시절 한때 불렀던 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노래라는 점을 말해 준다.

▲ 동요에는 우리 어린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푸른 하늘 은하수>의 한장면. ⓒ2004 연희단거리패 노래의 힘, 사랑"어른이 되어서도 동요를 잊지 않는 사람들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극 중에서 할아버지 교사인 전 선생의 말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 공연을 보러 온 모든 엄마 아빠는 전 선생님의 말대로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아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지으며 잊혀진 옛 노래의 기억 속을 찾아가는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이에게 노래의 아름다움, 노래의 소중함을 들려주는 따스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극이 진행될수록 객석의 반응은 점점 달아오른다. 노래 이야기가 점점 현대로 옮겨가면서, 아이들이 요즘 부르는 동요들이 자주 소개되기 때문이다. 객석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이들이 소리 높여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엄마와 입을 맞추며 고갯짓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전국 대회 장면의 노래에서는 모두들 들썩들썩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한다. 슬픈 곡조의 <반달>을 랩 형식과 신나는 현대 음악으로 편곡했으니 어깨춤이 저절로 나올 만하다.

딸 김재형(10)양을 데리고 극장을 찾은 장은진(45)씨는 공연 후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너무너무 즐거운 공연이었어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면서 어른들도 신이 나는 공연이니까요. 잊었던 동요들을 다시 듣게 돼 너무 좋았어요. 눈물이 핑 도는 장면도 있었구요."공연장을 나오는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그와 같아 보였다. 재잘재잘 떠들며 국립극장의 밤길을 걸어 나오는 아이들에 우리의 미래가 있는 것은 아까 공연장에서 본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환한 얼굴이 기억에 남아서일 것이다.

늦둥이 아들 녀석은 국립극장 마당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신이 나서 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아빠, 아까 내가 아는 노래도 나왔다.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 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어른들도 힘들 땐 동요를 불러요" [인터뷰]연출자 남미정 "가요 더 좋아하는 어린이들, 어른들에게 책임" &nbsp; ▲<푸른 하늘 은하수>를 연출한 남미정씨 ⓒ최성수 기자 <푸른 하늘 은하수>를 관람한 때는 지난 14일, 바로 공연 첫날이었다. 연출자 남미정(37)씨는 인터뷰 요청에 씩씩한 소리로, 그러나 공연에 혼신의 힘을 쏟은 탓인지 다소 지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인터뷰 내내 동요극에 대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 <푸른 하늘 은하수>는 한국 동요 80주년 기념 공연입니다.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나요?"저도 힘들 때 동요를 많이 부르거든요. 동요를 통해 위로 받는 셈이지요. 요즘 우리 현실이 어려운데, 동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위로 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동요보다는 가요를 더 좋아합니다.

"어린이들이 가요와 같은 성인 문화를 더 좋아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야 당연히 더 많이 노출되고 더 자극적인 문화를 따라가기 마련이지요. 보다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성인 문화보다는 동요와 같은 어린이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어야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어린이 문화를 선택할 수 있게 제도를 갖추고 풍토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겠지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동요 80년사를 담는 공연이다 보니 자칫하면 나열식이 될 가능성이 컸어요. 작품을 꿰뚫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도 힘들었고, 어떤 노래를 선정할 것인가도 어려웠습니다. 가능하면 시대별로 대표적인 곡을 선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동요들을 골랐지요."- 한국동요음악연구회와 함께 작업했다고 하던데, 어떤 도움을 주고 받았나요?"연극적인 틀거리는 저희가 주로 담당했구요. 음악사적인 고증이나 어린이들의 동요 부르기에 대한 지도, 세세한 음악적 부분들은 모두 연구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도움이 없었다면 이런 동요극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겁니다."- 후반부에 <반달>을 편곡해 흥겹게 만든 부분이 있던데요."예, <반달>은 원래 나라를 잃은 슬픔이 담겨 있는 노래잖아요. 그래서 슬플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 정서는 밝고 맑은 쪽을 더 좋아하거든요. 동요도 아이들의 정서에 따라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이들의 요즘 문화를 반영해 랩도 넣고 곡도 흥겹게 편곡을 했지요. 객석의 반응이 좋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음악 교육극을 만들고 싶어요. 한 두세 편 더요. 직접 노래를 만드는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해 음악에 접근하는 즐거움을 관객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극 말입니다." / 최성수 기자 /최성수 기자<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푸른 하늘 은하수>12월 14일~26일 오후 5시, 7시 30분(월요일은 쉼)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일반 1만2000원 어린이 8000원 엄마랑 가족권(2인) 1만5000원 4인 가족권 3만원*만 6세 이상 입장 가능(더 어린 아기들은 고객 사랑방의 놀이방에 맡길 수 있음). 기자소개 : 최성수 기자는 고등학교 교사이며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실천문학사),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내일을 여는 책>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동녘), <꽃비>(해들누리) 등의 소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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