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스리그, "흔들리는 우승후보"

2004. 12. 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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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심재철 기자] 수많은 축구팬들이 K-리그 팀끼리 맞붙는 결승전을 기대했지만 전북이 먼저 무릎을 꿇었다.

26일 저녁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2004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두 번째 경기에서 전북은 두 골을 여유 있게 앞서가다가 후반전 뒷심 부족을 드러내며 동점을 허용해 알 이티하드(사우디 아라비아)에게 결승 진출권을 내줬다. 1차전 제다 원정 경기 1:2 패배에 이어 뼈아픈 무승부로 그만 주저앉고 만 것이다.

선 바오지에(중국)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최선을 다한 전북 선수들과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서포터즈는 몸이 굳어버린 듯 한동안 미동도 하지 못했다. 경기 끝무렵 터진 동점골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89분, 알 이티하드의 오사마 알 하르비는 그야말로 기적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옆그물이 뚫린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왼쪽 끝줄에서 왼발로 찬 공이 매끄러운 잔디결을 따라 그대로 골문 반대편으로 굴러 들어간 것.바로 앞에서 이를 지켜본 주장 최진철도, 골문을 비우고 나갔다가 어설픈 몸날림으로 머쓱해진 문지기 이용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이 골이 준결승 두 경기의 마침표를 찍고 알 이티하드의 결승행을 확인시켜준 장면이었다.

전북의 문지기 이용발은 지난 20일 새벽 제다에서 열린 준결승 첫 번째 경기에서도 똑같은 시각인 89분에 측면에서 날아오는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잘못 판단하고 골문을 비워 알 몬타샤리에게 뼈아픈 헤딩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는데 이 날 경기에도 실수를 되풀이했다.

오사마 알 하르비가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들어와 끝줄 쪽으로 공을 몰아가는 순간, 이용발은 페널티킥을 두려워한 나머지 위협만 하고 미끄러져 지나갔을 뿐이었다. 설마 하는 순간, 알 하르비의 유연한 발목이 천금같은 동점골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용발의 행동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68분, 선 바오지에 주심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페널티킥을 허용당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도 오사마 알 하르비의 움직임은 매우 유연했다.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뻗은 이용발의 두 손과 알 하르비의 발끝은 동시에 공을 향했으나, 공이 튕겨져나가며 알 하르비의 다리가 이용발의 몸에 걸려 넘어진 것.주심의 판단에 따라 명암이 엇갈릴 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선 바오지에 주심은 휘슬을 크게 불었고, 손 끝은 페널티 마크를 가리켰다. 전북 선수들이 항의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골잡이 치코의 침착한 오른발 슈팅이 그물을 갈랐다.

후반전에 내준 두 골 모두 페널티지역 안쪽 공간을 내주는 상황이었지만 문지기가 뛰쳐나와 공을 덮쳐야 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섣부른 판단이 가져온 아쉬운 결과였다. 선수로서는 잘해 보려는 의욕이 넘쳤던 순간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이보다 앞서 전북의 전반전 경기 운영은 매우 훌륭했다. 경기 초반 껄끄러웠던 미드필드의 연결이 20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윤정환을 축으로 한 보띠-고메즈의 빼어난 몸놀림은 경기 주도권을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남궁도와 독일 출신의 왼발잡이 공격수 파울로 링크가 보여준 공격 움직임도 좋았다.

위력적인 왼발 중거리슈팅으로 알 이티하드 문지기 알 사딕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파울로 링크가 32분 멋진 선취골을 뽑아냈다. 박규선의 낮고 빠른 크로스가 절묘하게 연결된 순간이었다. 1차전 보띠의 프리킥 골 덕분에 이대로만 끝나도 전북의 결승행은 문제가 없었다.

이후에는 더욱 완벽한 미드필드 패스 플레이를 바탕으로 만든 남궁도의 슈팅이 위력을 발휘하며 원정팀 수비수들을 주눅들게 만들다가 전반 끝무렵 추가골까지 성공시켰다. 윤정환이 보띠의 매끄러운 연결을 받아 페널티지역 안쪽에서 회심의 왼발 슈팅을 날린 것을 문지기 알 사딕이 쳐냈다. 이 순간 윤정환에게 공을 넘겨주었던 보띠가 공이 굴러나올 것을 미리 알았다는 듯 골문 바로 앞에서 왼발로 침착하게 밀어넣은 것. 가슴 속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는지 전북 선수들은 후반 초반 느슨한 플레이를 전개하다가 화를 불렀다. 한 골만이라도 얻을 경우 연장전을 기대할 수 있었던 알 이티하드 선수들은 전반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거칠게 나왔다. 눈에 거슬리는 반칙 장면이 여러번 나왔지만 선 바오지에 주심은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알 이티하드의 만회골과 동점골을 만들어낸 주역 오사마 알 하르비의 거친 행동은 단연 돋보였지만 주심의 카드는 주머니 속에서 잠자고만 있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경기장을 찾은 전북 팬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억울함을 호소할 뿐이었다.

원정 경기 다득점 팀에게 유리한 규정을 적용하고 있기에 경기 끝무렵 2:2가 되어버린 순간, 전북 선수들은 그 허탈함에 다리가 풀릴 정도였다. 추가 시간에 수비수 김현수와 바꿔들어간 장신 공격수 손정탁이 머리로 떨어뜨린 공을 남궁도가 달려들어가 상대 문지기 바로 앞에서 오른발 발등으로 골을 노렸지만 크로스바를 강하게 때리고 나왔다. 전북이 결승에 오르기 위해서는 두 골이 더 필요했지만 이미 외면한 승리의 여신을 한 번 더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20일 성남 홈 경기에서 득점 없이 비긴 성남과 파크타코르(우즈베키스탄)는 27일 저녁 타쉬켄트 파크타코르 스타디움에서 준결승 두 번째 경기를 벌인다./심재철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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