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터투로, 어둡고 불안한 눈빛을 가진 배우

2004. 11. 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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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심은주 기자] 영화 속엔 멋진 주연 외에 양념 같은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주연들을 뒷받침하며 제 구실을 눈에 띄지 않게 소화해나간다.

사실 "눈에 띄지 않는다"라고 말하면 섭섭할 사람들도 있다. 스티브 부세미(Steve Buscemi)의 경우 블럭버스터와 독립영화 사이를 오가며 독특한 인물을 연기해서 많은 이의 주목을 받는 조연전문배우라 할 만하다.

스티브 부세미 만큼이나 그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기가 쉽지 않은 배우 존 터투로(John Turturro) 역시 마찬가지다. 주로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등장하여 감칠맛 나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는 사실 아는 사람들은 알 만한 배우지만, 일반 관객들에겐 낯선 배우다.

예일에서 연극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존 터투로는 이탈리안 미국인으로 미국 영화계에서 꽤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배우며, 동시에 감독이기도 하다.

<분노의 주먹> 엑스트라로 데뷔 ▲ 미국영화계에서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존 터투로. 그는 대부분 영화에서 어둡고 예민한 혹은 폭력적인 인물을 연기한다. ⓒ2004 imdb.com 존 터투로는 마틴 스콜세지의 <분노의 주먹 (Raiging Bull)>으로 데뷔했다. 도대체 언제 나왔는지 의아해하실 분들도 계실 거다. 주인공 제이크 라 모타가 클럽에서 미모의 여인 비키를 넋놓고 바라보는 초반부. 터투로는 제이크가 자리한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다. 화면 전경에 그의 옆모습이 꽤 정확히 나오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겐 대사가 없다. 거의 "엑스트라"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스콜세지는 그에게서 무얼 보았는지 모르겠으나 이후 86년 자신의 영화 <컬러 오브 머니 (Color of Money)>에 또 그를 출연시킨다. 스콜세지는 그가 주연을 맡아주길 바랐으나 터투로는 과감히 줄리언이라는 건방진 "꾼"을 연기한다. 줄리언이란 인물은 이후 출연작에서 터투로가 보여줄 모습의 일부를 반영하고 있다. 빈정대는 말투와 사람을 속이려드는 사기꾼. 비열함을 자연스레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

80년대 중반 즈음, 존 터투로는 윌렘 데포가 주연을 맡고 우리나라엔 <늑대의 거리>란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된 영화 <투 리브 앤 다이 인 L.A (To live and die in L.A)>나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시실리안 (The Sicilian)>같은 영화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총을 들고 폭력을 행사하는 무서운 인물을 연기한다. 훤칠한 키와 건장한 체격을 갖춘 그에겐 주먹 쓰는 역도 꽤 잘 어울리는 듯싶다. 게다가 영화 <5번가의 비명 (Five Corners)>에서 존 터투로는 출소 후 다시금 한 여자에 집착해 모두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강간범 하인즈로 등장한다. 그가 가진 큰 눈은 이 작품들에선 차갑게 빛나고 있다.

90년대 초, 전성기에 서다터투로는 80년대 후반에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스파이크 리 감독의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부터 빛을 보기 시작한다. 흑인동네에서 피자를 만들어 파는 이탈리아계 남자 피노 역을 맡은 그는 분노와 불신에 가득찬 인물을 정확하게 소화하고 있다.

이 모습은 이후 영화 <정글피버(Jungle Fever)>에서와는 사뭇 다르다. <정글 피버>에서 그는 착실히 생계를 꾸리며, 흑인 여성을 사랑하게 되는 폴리 역을 맡았다. 분노로 가득한 눈빛은 좀더 누그러지고, 인종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우호적이다.

▲ 존 터투로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바톤핑크>의 포스터. ⓒ2004 imdb.com 91년엔 <정글 피버>와 동시에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로도 주목받는다. 이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 바톤 핑크 역을 맡았는데, 이 인물은 그가 전작들에서 보여준 모습과는 또 다르다. 모기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예민하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집하는 극작가 바톤 핑크를 존 터투로는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바톤 핑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이 작품에서 그의 눈빛은 작가주의에 대한 강박관념의 늪에서 불안하게 흔들린다. 존 터투로는 자신이 출연한 <정글 피버>와 <바톤 핑크> 모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바톤 핑크>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이듬해엔 <맥(Mac)>이라는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 다시 입성한다. 그것은 물론 배우로서 입성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 감독으로서 입성한 것이기도 했다. 목수인 자신의 아버지와 가족의 모습을 반영한 이 작품으로 그는 칸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 카메라상을 수상했다.

<5번가의 비명>에서 터투로와 함께 연기한 팀 로빈스는 이 때 첫 연출작 <밥 로버츠(Bob Roberts)>로 황금 카메라상을 두고 경쟁하기도 했다. 존 터투로의 연출 경력은 이후 98년 칸 영화제에 다시 한번 초청되었던 영화 <일루미나타(Illuminata)>로 이어진다.

90년대 후반, 빛나는 조연으로 존 터투로는 9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꾸준히 코엔형제나 스파이크 리 영화에 모습을 드러낸다. <빅 르보스키(Big Lebowski)>나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에선 엉뚱하고 멍청한 인물을 소화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그리고 스파이크 리의 <클라커즈(Clockers)>에선 사건을 파헤치는 데에 적극적이지 않은 형사를 담담히 연기하며, <샘의 여름(Summer of Sam)>에서는 목소리로만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배우 겸 감독을 맡고 있는 팀 로빈스의 <요람은 흔들릴 것이다(Cradle will rock)>와 같은 시대극에 참여하기도 했다.

▲ 엉뚱한 탈옥수로 코믹한 연기를 보여준 영화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의 한 장면. ⓒ2004 터치스톤픽쳐스 하지만 스티브 부세미처럼 존 터투로는 주류영화에 조연으로 자주 등장하게 된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영웅으로 등장하는 영화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 이 영화에서 그는 감옥에 갇힌 캐나다인을 연기하는데, 사실 조금은 실망스럽다. 생각없이 본 액션영화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하는 건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그의 연기력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는 역은 아니었다. 그리고 미국우월주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이 같은 영화에 존 터투로가 등장한다는 것은 여간 낯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후 아담 샌들러의 영화 <미스터 디즈(Mr.Deeds)>나 <성질죽이기(Anger Management)>와 같은 작품들에선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특히 <성질죽이기>의 경우 버럭 버럭 화를 내는 신경질적인 남자 척을 연기하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좌중을 웃기는 그의 연기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존 터투로는 그다지 친근한 외모를 지닌 사람은 아니다. 깊게 패인 눈엔 그늘이 져 어두워 보이고, 커다란 눈동자는 다소 반항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맡는 인물들도 대부분 어둡고 소외된, 혹은 불안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최근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시크릿 윈도>는 그에게서 앞서 말한 어두운 이미지를 최대한 끌어내고 있다. 결코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 않을 배우지만, 다양한 작품들에서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그에게 눈을 고정시키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심은주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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