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이 질부 커피 좀 타주면 안될까"

2004. 9. 2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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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훈욱 기자]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것이 부담이 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귀성차량 예매를 위해 밤을 새워야 하고 자가운전을 한다고 해도 주차장 같은 도로에서 10시간 혹은 어떤 경우 20시간 이상씩을 소비해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우리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고향에 도착하고도 차례상을 준비해야 하는 여자분들은 또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여성단체들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여성들의 70% 이상이 추석에 부담을 느낀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중압감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면 이렇듯 누구에게나 부담이 될 듯한 추석이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라면 대부분 마음먹기에 따른 문제인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미묘한 입장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제 경험 몇 가지를 올려 보겠습니다.

"너는 처자식 버리고 고향은 왜 왔어?"결혼 초기에 저도 기차를 타고서도 5시간 이상이 걸리는 고향에 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린애들을 업고 걸리며 고향에 도착하면 이미 파김치가 되기 때문에 즐겁다든가 하는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했지만 차례를 지내고 나면 별로 할 일도 없고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해 이런 문제에 대해 아내가 심하게 불평했고 저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인지라 혼자 고향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추석 날 아침 연락도 없이 아내가 애 둘을 데리고 고향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그것도 애를 둘이나 데리고 도착한 며느리를 보고 부모님은 물론 집안어르신들도 내게 심한 꾸중을 하셨습니다. 다소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 꾸중을 듣고 나중에 아내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제가 출발한 후 아내는 며칠 편하게 지내겠다 싶어 좋아했으나 주위를 둘러보니 이웃사람들 또한 모두 고향으로 가 버렸고 주변 상가까지 문을 닫고 보니 너무 적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며칠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두려움이 생겨 밤에 출발하는 특별 관광버스를 수배하여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이후로는 고향 가는 것 자체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자의 입장은 여자가 이해해야저의 친척 중에는 소위 겹사돈이 된 경우가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친척 동생이 시집을 갔는데, 그 시집의 시누이가 가까운 다른 친척집으로 시집을 온 것입니다.

이런 경우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당사자 즉 시집 온 사람과 시집 간 사람은 시누이와 올케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친정에 가면 시누이와 올케가 되지만 시가에 오면 입장이 바뀌어 올케와 시누이가 되는 셈입니다.

올케의 오빠와 결혼을 했고 또 시누이가 친척 오빠와 결혼을 한 사이면 아주 친해야 함에도 반대로 갈등이 많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집안 행사가 있어 친정에 온 여동생은 올케가 열심히 일하고 있어도 함께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보다 못해 같이 좀 하라고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올케는 자기 친정에 오면 더 일을 않는다고 합니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고 마음가짐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도련님이 질부 커피 좀 타 주면 안 될까?"저희 집안에서는 추석이 되면 4촌까지는 집집마다 다니며 같이 차례를 지냅니다. 저의 경우 4촌 형님들과 나이 차가 많기 때문에 형님들은 벌써 손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본의 아니게 할아버지가 되었고 질부들이 무려 일곱 명이나 됩니다. 솔직히 질부들의 입장에서는 차례를 모시고 대가족의 수발을 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렇게 불편해 한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것은 시어머니이신 형수님의 부담 없는 행동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형수님은 차례가 끝나고 이웃 인사를 마치면 시동생인 저와 며느리들을 한자리에 모아 고스톱을 치곤 합니다. 이 때 제가 광을 팔거나 해서 앉아 있으면 질부들에게는 시숙이 되는 저의 옆구리를 찌르며 "도련님은 광 팔았으니 앉아 있는 시간에 커피나 좀 타 오세요" 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커피 준비하느라 덜거덕거리면 질부들이 대신 해주기 때문에 저는 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커피를 나눠 마시며 놀다 배가 고프면 큰 양재기에 찬밥과 나물로 비빔밥을 해 먹기도 합니다.

사실 고스톱 실력에서도 형수님에게는 상대가 안 됩니다. 3점만 나면 바가지 쓸까 두려워 얼른 끝내는 저나 질부들과는 달리 형수님은 패를 모으고 점수를 극대화하는 요령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딴 돈은 당신 손자, 손녀들의 용돈으로 돌아갑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노래방으로제 아내도 음식솜씨는 별로지만 사람을 편하게 하는 기술은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부터 시누이와 올케는 사이가 나쁘다고들 하지만 제 아내는 시누이가 되는 제 여동생과는 이름을 부르며 친구처럼 지냅니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질부들에게도 동생 대하듯 합니다. 손님들이 가고 난 후 다소 한가한 저녁이 되면 형수님과 질부들을 인솔하여 노래방에 가기도 하는데, 질부들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시어머니, 시숙모와 함께 하는 노래방 나들이지만 아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질부들 또한 아래 위가 있고, 시부모님을 모시는 사람과 서울, 부산, 대전 등으로 분가하여 사는 사람, 각자 생활형편 또한 다르다 보면 갈등이 없을 수 없을 테지만 이런 기회에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겠지요.평등보다는 이해로우리는 살아가면서 갈등 해소에 관한 기법을 배웁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동료 혹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양보 혹은 이해하라고 배우고 또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갈등해소를 위한 많은 기법을 배우지만 유독 남녀 관계에서는 해결보다는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대결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일요일 교회에 가게 되면 식사를 담당하는 사람은 새벽부터 장을 봐서 교회 나오시는 분들께 점심 대접을 합니다. 백여명이 넘는 사람의 식사를 몇 사람이 준비한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지만 이분들은 즐겁게 이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 분들도 명절날 음식을 준비하고 흩어져 살던 가족이 모이는 일이 불편하다고 하십니다. 명절날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일요일 식사 준비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것 같음에도 말입니다.

또 저의 이웃에는 부모님이 6・25때 월남하여 친척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땅에 친척이라고는 없이 자기 가족 밖에 없는 이 분은 추석날 아침 돌아가신 부모님 차례를 지내고 나면 할 일이 없어 외로움을 달래려고 낚시를 갑니다. 이 분의 부인은 명절에 음식을 준비하고 많은 친척들이 모여 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이 분의 입장에서는 한 달 전부터 차 막힐 걱정을 하고 고향으로 떠나는 순간까지도 투덜대지만 그래도 길나서는 저희 가족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외국 여러 곳에서 살았지만 그 곳에도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명절이 있고 그 사람들도 명절에는 고향에 갑니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길도 막힙니다. 그럼에도 명절 증후군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경우에나 갈등이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그것을 남녀의 갈등으로 해석해서는 해결이 무척 어려울 것 같아 저는 평등보다는 이해하려고 합니다. 세상에 완전한 평등이란 것이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김훈욱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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