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방아 방아깨비 찧어라

2004. 8. 19. 11: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민수 기자] ▲ 방아깨비 암컷. 수컷보다 몸이 크다. ⓒ2004 김민수 방아방아 방아깨비 아침거리 찧어라우리 아기 흰 떡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방아방아 방아깨비 저녁거리 찧어라방아방아 방아깨비 네가 대신 찧어라옆집 아기 보리방아 네가 대신 찧어라- 구전동요 <방아깨비>어릴 적 뒷다리를 잡고 손가락으로 잡고 있으면 방아를 찧듯 열심히 몸을 위 아래로 움직이던 방아깨비가 우리 집 잔디밭에 지천입니다.

뒷동산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 땀이 나서 지칠 때면 친구들과 방아깨비를 잡아 그늘로 가서 누구 방아깨비가 방아를 잘 찧는지 시합을 했습니다. 조금 잔인한 것 같지만 시합이 끝나면 방아깨비를 구워먹기도 했습니다. 수놈은 작아서 별로 먹을거리가 없었지만 암놈은 제법 커서 구우면 먹을 만했습니다.

구전동요 <방아깨비>를 소개해드렸지만 어렸을 적에 저렇게 자세하게 부른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게 "방아깨비 찧어라"를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주문을 외우듯 노래를 부르며 누구의 방아깨비가 오래 방아를 찧는지 시합을 할 때에는 약간의 요령이 있습니다. 뒷다리의 굽은 부분을 가깝게 살짝 잡고 보일 듯 말 듯 손을 방아깨비가 아래위로 움직일 때 같이 움직여 줍니다. 이렇게 하면 가만히 방아깨비를 붙잡고 있는 친구들보다 오래 갑니다.

인스턴트 식품에 아이들의 입이 길들여지듯 인스턴트 장난감에 아이들의 손이 길들여졌습니다. 각종 장난감에서 피부염을 유발시키는 물질들이 검출된다고도 하고, 온 몸을 움직이는 놀이가 아닌 손가락만 움직이는 컴퓨터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방아깨비를 잡은 막내가 방아깨비 다리를 잡고는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아마 도시에서 자랐다면 막내도 방아깨비도 만지지 못하고 기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잠자리며 방아깨비뿐만 아니라 쥐며느리(일명 콩벌레), 사슴벌레, 귀뚜라미, 매미, 심지어는 굼벵이까지도 별 거부감 없이 만지는 막내를 보면 자연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유년기를 주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 방아깨비 수컷. 메뚜기류는 위장술의 대가들이다. ⓒ2004 김민수 방아깨비에 대한, 아니 어쩌면 메뚜기에 대한 유년의 아픈 기억(?)이 있답니다.

이름도 가물거리며 생각나지 않는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다가 여느 아이들처럼 엄마아빠놀이를 했죠. 가장이 된 나와 아내가 된 그 예쁘장한 아이, 그리고 내 아들딸들이 된 친구들이 온갖 대사를 해대는데 "아빠, 배고파~"하며 자식들이 조르는데 무슨 맘인지 그냥 풀이나 찧어서 가짜로 먹이지 말고 정말 먹을 수 있는 것을 준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애들아 잠깐만 기다려라. 아빠가 먹을 것 가져올게."속마음은 자식새끼들에게 먹일 것이 아니라 예쁘장한 얼굴을 한 아내에게 뭔가 맛난 것을 먹이고 싶어서였습니다. 집에 가서 부뚜막에 놓여 있는 성냥을 가지고 오고, 과수원에 들어가 복숭아 잘 익은 것 서너 개 따오고, 밭에서 참외도 따왔습니다. 그리고 강아지풀을 뽑아서 들판을 뛰어다니며 벼메뚜기를 잡았는데 방아깨비도 함께 잡았습니다.

복숭아며 참외까지는 맛나게 먹었는데 마른 풀을 모아 불을 놓고 메뚜기와 방아깨비를 구워 아이들에게 주니 다들 맛나게 먹는데 그 예쁘장한 아내만 별 걸 다 먹는다는 얼굴로 쳐다보는 겁니다. 얼마나 무안하던지….그래서 유년시절의 첫사랑은 깨졌죠. "치, 메뚜기도 못 먹는 것이 내 각시가 되면 나 피곤하다"하며 말이죠.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정도까지는 한 동네에서 살았던 것 같은데 이름은 생각도 안 나고 어렴풋이 소꿉놀이하던 광경만 떠오릅니다.

방아깨비.그저 들판을 뛰어다니다 보면 함께 뛰던 것들인데 이젠 농약의 과다사용으로 농촌지역에서도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우리의 곁에서 함께 살던 것이었을 텐데 우리 사람들은 다 쫓아내고 혼자 살려나 봅니다./김민수 기자<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있는 종달교회를 섬기는 목사입니다.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오마이뉴스에 실리지 않는 그의 글은 <강바람의 글모음>www.freechal.com/gangdoll을 방문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