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소장파 7명, 잡초 뽑으며 "호남 다가서기" 시동

2004. 7. 2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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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승후/안현주 기자] ▲ 농촌체험활동에 나선 한나라당 의원들이 버섯을 다듬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현, 박승환, 정병국 의원.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한나라당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새정치 수요모임" 소속 7명의 의원들이 20일 1박2일 일정으로 전남 강진군 옴천면 영산리 계원마을에서 농촌체험 활동에 나섰다. 강진 농활에 참가한 이들은 정병국(경기도 양평), 권오을(경북 안동), 박형준(부산 수영구), 원희룡(서울 양천갑), 박승환(부산 금정구), 김기현(울산 남구), 이주호(비례) 의원.한나라당 의원들의 호남지역 농활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새정치 수요모임 대표인 정병국 의원은 "강진 농활은 호남화해 측면보다는 수요모임에서 추진하고 있는 현장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며 "전국에서 가장 작은 면인 강진군 옴천면에서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배우기 위해 왔다"며 참가 배경을 밝혔다.

박 의원은 정치적인 해석에 대해 경계하는 모습이지만, 이번 농활에 한나라당 소장그룹의 "호남 다가서기" 의도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농활 참가 의원들은 "이왕이면 호남지역에서 땀 흘리는 것이 의미가 크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의 잘못된 점 호되게 질책해달라" ▲ 김매기를 마친 의원들이 발을 씻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20일 오후 2시30분경 계원마을에 도착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주민대표들과 상견례를 가졌다. 정 의원은 "주민들께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우리들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호된 질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정 의원은 이어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받는 새정치를 실현하고 싶다"면서 "이곳에서 배우고 느낀 점들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인 박승환 의원은 "올해는 쌀 관세화 유예조치 마지막 해로써 중대한 시점"이라며 "농촌을 직접 탐방해 관세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상견례를 마친 의원들은 곧바로 "노동"에 들어갔다. 맨 처음 한 일은 새송이 버섯 수확. 익숙지 않은 손놀림으로 주변의 눈치를 봐가며 재주껏 버섯을 다듬었지만 표정만은 진지했다. 평소 선거철이 아니면 주변에서 보기 힘든 의원들이 여러 명 몰려왔지만 함께 일하는 주민들 역시 불편함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 듯 의원들의 서툰 손놀림에 자연스레 훈수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버섯 다듬기를 끝낸 의원들은 휴식도 없이 바지를 걷어올리고 논에 들어가 김매기를 했다. 의원들은 후텁지근한 날씨 때문에 생긴 후끈한 지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잡초를 뽑아나갔다. 논 주변에 모여든 마을주민들은 벼를 밟을까봐 뒤뚱거리며 움직이는 이들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2명씩 조를 이뤄 사전에 배분된 작업을 진행했다. 정병국・권오을 의원은 토하 양식장에서, 박형준・원희룡 의원은 막걸리와 한약재로 한우를 키우는 강진 특산물인 "맥우" 농장으로, 이주호 의원은 버섯 농장, 박승환・김기현 의원은 또다른 토하 양식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모든 작업을 마친 한나라당 의원들은 밤 8시부터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함께 농촌현실에 대한 즉석토론회를 가졌다.

마을주민들 "당을 떠나 농촌 배우러 오는 정치인들은 누구나 환영" ▲ 토하양식장에서 일을 마친 정병국 의원이 경운기를 타고 다른 농가로 이동하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안현주 한나라당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농촌체험활동을 하고자 찾아온 전남 강진군 계원마을 주민들은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모습도 본다"며 농촌체험단을 반겼다.

오병집(59)씨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행동은) 엄청나게 잘한 일"이라며 "이런 인연으로 영호남이 가까워지고 정치권이 농업문제를 피부로 인식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진심으로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오씨는 이어 "이분들이 서울로 올라가면 무책임하게 질책만 늘어놓지 말고 대안을 제시하는 의정활동의 모범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을주민 이영희(60)씨도 "전라도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곳까지 찾아와주니 기분이 좋다"면서 "이젠 당을 떠나서 농촌을 체험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환영한다"며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환영일색인 마을주민들의 분위기 속에는 농업을 진심으로 살리기 위한 정치인의 대오각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김모(67)씨는 "농활도 좋지만 농촌 활성화 대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뜻은 고맙지만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바로 인식했으면 좋겠다"면서 "농촌은 물과 공기가 깨끗해 거주하기는 좋은 곳이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큰 일이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원희룡 최고위원 "호남에 다가서기, 힘차게 시동 걸 것" 농촌체험활동에 참가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강진행이 "서진(西進) 정책"의 틀로만 비쳐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새정치 수요모임에서 이미 세워놓은 향후 4년치의 현장체험활동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면서 "삶의 현장에서 의원들 개개인이 자기정립을 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소원했던 한나라당과 호남과의 관계를 이번 기회를 통해 개선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19일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원 의원은 "앞으로 호남에 가깝게 다가서기 시동을 힘차게 걸어나가겠다"면서 "과거를 사과하고 호남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부분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로 대응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이어 "큰 틀에서 과거의 차별과 아픔을 승화시키는 한편, 당에 건의할 것은 건의하고 젊은 의원들이 할 일은 직접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박형준 의원 역시 "호남과의 화해"를 강조했다. 박 의원은 "(한나라당은) 그동안 (호남을) 제대로 못 챙기고 소외시킨 데 대해 반성하는 프로그램부터 시작해야 한다"면서 "단기적 이벤트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으며, 긴 호흡으로 진솔한 마음으로 다가가야 (호남인들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어 "오늘 점심식사 자리에서 전남도청 관계자로부터 현안보고를 받았다"면서 "전남도가 건네준 각종 자료는 해당 상임위에서 호남정책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해 호남지역 자치단체와 한나라당과의 적극적 협력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 /이승후/안현주 기자-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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