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역도산 '설경구'

2004. 7. 12.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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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윤고은 기자] "노! 노! 오바데아! 고찌 노!, 아찌!" 일본인 스태프가 촬영장에 모인 취재진들의 동선을 지시한다. 앞에 놓인 세트의 건물 유리에 취재진의 모습이 반사되니 제발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달라고 "만국어"를 써가며 손짓발짓한다. 취재진이 그 지시에 따르자 이내 "감사하무니다!"가 쑥스럽게 튀어나온다.

지난 6~7일 <역도산>(싸이더스, 송해성 감독)의 일본 로케이션 촬영현장. 일본 혼슈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히로시마 현 안에서도 다케하라와 미로쿠노사토라는 작은 어촌을 오가며 <역도산>은 둥지를 틀었다.

다케하라는 300년 전 히로시마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전통거리 보존마을. 히로시마 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원폭 피해를 입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제작진은 이 마을의 한 집에 스모 도장을 만들어 놓았다. 또 미로쿠노사토에는 산등성을 깎아 만든 오픈세트가 자리잡고 있다. 기타노 다케시의 <자토이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 이렇듯 너무도 "일본적"인 이곳에서 <역도산>은 조용하지만 무서운 기세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 사회의 모든 터부를 응집한 한국인 사나이가 일본에서, 일본인의 손으로 촬영되는 그 뜨거운 현장을 다녀왔다.

#태양을 안은 히로시마 바다를 바라보는 히로시마는 이글거리는 7월의 태양 아래로 뜨거운 짠내를 뿜어냈다. 이른 아침 미지의 세계까지 보일 듯 넓고 청명한 시계를 싣고 온 바다는 오전 9시도 되기 전에 이미 숨 막히는 습한 열기로 기를 죽였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듯 온몸에서 땀이 주루룩 흘러내리는 이러한 날씨에 94kg의 거구 설경구는 웃통을 벗어젖히고 태양과 정면으로 맞섰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도시라 우울한 잿빛이 예상됐지만, 푸른 바다와 울창한 초록 숲으로 둘러싸인 촬영장은 수줍은 시골일 따름이었다. 상투 튼 스모 선수의 모습을 한 설경구는 "정말 죽여주게 날씨가 덥다. 아주 미치겠다"며 너스레를 떨다가도 "공기가 너무 좋고 경치가 끝내준다. 처음에는 먼지가 안 나는 것에 너무 놀랐다"며 로케이션 현장을 은근히 자랑했다.

#비운의 스모 그리고 인생의 여인 취재진에게 공개된 촬영분은 역도산이 프로레슬러가 되기 전 스모 선수로 활동하던 때다. 16세에 일본으로 건너온 함경도 소년 김신락(역도산의 본명)은 성공의 야망을 품고 스모선수가 된다. 그러나 그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빼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최고가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인 선수들로부터 갖은 구박과 멸시에 시달린다.

6일 공개분은 신락이 치졸한 괴롭힘에 참다 못해 선배를 때려눕히는 장면이었고, 7일에는 신락이 도둑의 누명을 쓰고 스모선수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장면과 그가 연인 아야(나카타니 미키 분)와 인연을 맺게 되는 장면이 공개됐다.

살거죽 자체가 더워 보이는 설경구는 그보다 더 뜨거운 분노의 눈빛을 뿜어내 촬영장을 숫제 삶았다.

송해성 감독은 "스태프 전체가 설경구에게 반해 버렸다. 그가 역도산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는 정말 대단한 배우다"고 밝혔다.

#자로 잰 듯한 촬영 현장 설경구는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일본인 엑스트라들이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 얼굴 한번 제대로 나오지 않는 엑스트라들이건만, 맡은 연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는 것. 실제로 거리에 공습경보 사인이 떨어지자 엑스트라들은 진짜 전쟁이 난 듯 혼비백산하며 열심히, 진지하게 도망다녔다.

설경구의 이러한 평가는 일본 촬영현장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근면성실과 세심함을 추구하는 일본인의 특성은 영화 촬영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감독과 프로듀서 등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 현지 스태프로 구성된 <역도산>의 촬영 현장은 매사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진행됐다. 또한 1956년 산 할리데이비슨을 비롯, 시대극에 필요한 소품들이 잘 보존돼 있는 것도 촬영의 원활한 진행에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60%의 촬영을 일본에서 진행한 <역도산>은 처음의 우려와 달리 돈과 시간의 넘침 없이 무사히 지난 9일 모든 일본 촬영을 끝마칠 수 있었다.

/다케하라(일본 히로시마현)= 윤고은 기자- Copyrights ⓒ 일간스포츠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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