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의 용선이 정착한 속세 속의 극락

2004. 5. 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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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필자에게 있어 제주도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출발점이라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곳이거나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게되는 수행여행을 다녀온 곳이라 특별하다는 게 아니다.

남자들이 평생동안 얘깃거리로 우려먹을 만큼 젊은 청춘을 속앓이하듯 보내야 하는 군 생활 30개월을 고스란히 보냈던 곳이니 특별하다는 말이다. 남들은 전방에서 철책근무를 설 때 필자는 철조망조차 없는 제주의 푸른 해변을 지키는 전경으로 복무했다.

▲ 바닷가 쪽에서 약천사로 들어가는 입구엔 일주문을 대신한 듯 커다란 돌탑이 양옆으로 있다. ⓒ2004 임윤수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하면 나름대로 떠올리는 것들이 다양할 거다. 이국적인 가로수를 떠올리는 사람, 깨끗한 해안도로를 떠올리는 사람, 이런저런 관광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제주도 특유의 방언을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미 24년 전 일이다. 논산훈련소서 기본교육을 마친 필자는 한마디로 군기 빳빳한 일당백의 전형적 졸병군인이었다. 옷깃을 스치는 것은 물론 눈빛만 마주쳐도 꼿꼿한 자세로 목청껏 관등성명이 자동으로 나왔으니 군 생활 중 가장 칼칼한 군기를 보였던 때인 듯하다.

제주도 근무를 명령받아 동료들과 밤 기차를 타고 새벽녘에야 목포엘 도착했다. 그때 탔던 기차가 노래에 나오는 "대전 발 0시 50분" 기차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연무대에서 늦은 밤 기차를 탔던 건 분명하다.

▲ 새벽녘에 들린 약천사는 너무 조용했다. 어둠을 걷어내는 불빛과 하얗게 부서지는 인공폭포 그리고 넓은 잎새를 가진 수목이 잘 어울린다. ⓒ2004 임윤수 아무리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지만 생면부지의 섬 지방을 향해 가는 마음은 배급품으로 가득 채워진 국방색 자루가방 만큼이나 무겁고 착잡하다. 심지어 덜컹 겁조차 난다. 몇 시간 동안 철커덕거리는 기차에서 마음졸이며 앉아있다 보니 어느새 목포다. 낯설고 물선 섬 지방으로 군 생활하러 가는 졸병들의 스산한 마음을 아는지 끼룩대는 갈매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제주도에 도착하자 부두에서부터 한 차례 얼차려 신고가 벌어진다. 빳빳한 군기지만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하였다는 안도감과 생소한 분위기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느닷없이 떨어진 얼 차려 명령이다. 앉은 자세서 쪼그려 뛰기를 시키고 묵직한 "따불백"을 머리에 올리고 오리걸음을 시킨다. 제주도의 첫걸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쯤이야 이미 각오한 사실이니 겁날 것도 힘들 것도 없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친 졸병들은 침상 끝에 차려 자세로 앉아 뭔가를 기다려야만 했다. 뭐를 기다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기다려야 했다. 꿀꺽거리며 목젖을 흔드는 옆 사람 침 넘기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긴장되고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이 확 열리며 고참 한 명이 들어온다.

▲ 이국적 풍경이다. 동남아에 있는 어느 절의 전경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2004 임윤수 통로를 중심으로 양옆 침상 끝에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양손을 무릎에 얹은 상태로 앉아있는 졸병들을 차례로 훑어보더니 느닷없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이 필자를 향한다.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자세를 더 한번 곧추세워 허리를 꼿꼿이 펴고 관등성명을 대니 대뜸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훈련소에서 그랬듯 목청껏 "충청돕니다"라고 대답을 하니 나오라는 손짓을 한다.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며 부처님과는 불알친구쯤"으로 교육받고 생각되던 고참의 부름이 떨어지니 떨리고 무섭기만 하다. 그런 고참 앞에 서니 느닷없이 주머니에서 50원짜리 동전을 꺼내주며 "부대 뒤쪽에 있는 구멍가게에 가서 "보댕이"를 사와라" 한다. 친절하게 정문으로 나가지 말고 뒷담이 높지 않으니 넘어가면 된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고참이 사오라고 한 "보댕이"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건이다. 아마 "제주도에서만 파는 값싼 뭔가가 있는가 보다"라는 정도의 생각이 들뿐이다. 졸병 주제에 다시 물었다간 군기 빠졌다고 흠씬 기압받기 일쑤니 그냥 몸으로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

정문도 아닌 부대 뒤쪽이란다. 그것도 담을 넘어서 쏜살같이 다녀오란다. 고참이 시키는 대로 뒷담을 넘어 가게로 들어서니 중년이 훨씬 넘은 듯한 아주머니가 가게를 지키고 계신다.

▲ 법고각에 올라서면 푸른빛 제주도 남쪽 바다가 눈길에 와 닿는다. ⓒ2004 임윤수 고참이 시켰던 대로 50원짜리 동전을 건네며 "보댕이 하나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아주머니가 "뭐요"하고 묻기에 다시 한 번 "보댕이요"라고 또렷하게 답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오뎅(어묵)"을 하나 꺼내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순간 제주도에서는 "오뎅"을 "보댕이"라고 하는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담을 넘어 의기양양하게 어묵을 손에 들고 내무반으로 들어서니 심부름을 갈 때보다 훨씬 많은 고참들이 식사를 마치고 내무반에 들어와 있다.

심부름을 시켰던 고참에게 사온 "어묵"을 내 놓으니, 고참이 어묵을 손에 들고, "애가 50원 주고 부대 뒤 구멍가게서 사온 "보댕이""라고 소개하자 순간 내무반이 웃음바다가 된다.

정말이지 그들이 왜 그렇게 웃는지 도대체 짐작도 할 수 없고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니 오금이 저려온다. 그렇게 한바탕 웃음거리가 된 다음 며칠이 지난 나중에야 "보댕이"란 말이 제주도 방언으로 여자의 성기를 일컫는 말이란 걸 알았다.

▲ 법당 앞 왼쪽으론 무게가 4800관이나 된다는 범종이 달려있다. ⓒ2004 임윤수 군인들의 짓궂은 장난에 익숙해진 가게 집 아주머니가 딱히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해 집어 준 어묵이 한바탕 웃음에 톡톡히 일조를 한 셈이다.

누군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때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면 하는 사람도 답답하지만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환장할 노릇이다. 알아듣는 척은 하였으나 실제적으론 무슨 뜻인지 몰랐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경우를 포함해서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어떤 뜻이었구나 하는 것이라도 깨달으면 그나마 다행이나 대개의 경우는 그냥 넘어가기 일쑤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원인에는 듣는 이의 입장에서 난해한 표현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자신과 이해를 달리하는 내용일 때 스스로의 마음을 닫아버리기 때문에 말귀를 못 알아들을 때가 더 많았던 듯싶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이미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데 그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복잡하고 귀찮게 생각해 스스로의 귀를 막아버리니 잘 들리지 않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 단일 전각으론 동양최대의 규모라고 하는 이 대적광전엔 비로자나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다. ⓒ2004 임윤수 부처님은 무려 8만 4천이나 되는 가르침을 남겨놓으셨다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밀교"와 "현교"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밀교란 한마디로 은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드러내지 않고 알 듯 모를 듯한 설명으로 가르치며 깨우침을 주셨을 테니 들어도 듣지 못하고 일러줘도 알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겠다.

여행사를 통해 제주도를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이 들릴 법한 곳이 신서귀포와 중문관광단지 중간쯤에 있는 "약천사" 아닌가 모르겠다. "동양 최대의 대웅전"이라는 유명세도 있지만 그만한 볼거리에 입장료조차 받지 않으니 여행사들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라도 들릴 법한 곳이니 말이다.

서귀포(西歸浦)는 한국 최남단에 있는 도시, 아름다운 천혜의 해안관광지로 유명하지만 그 지명은 해석에 따라 불교와 아주 밀접하다. 아미타부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는 극락세계를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 한다. 서귀(西歸)란 바로 그 서방정토 극락세계(極樂世界)로 돌아가는 곳("西方淨土 阿彌陀佛께 歸依한다")이다. 서방정토로 가는 반야(지혜)의 용선(배)이 출발하는 포구로도 해석되니 불자들의 염원이 담겨진 지명이라 해도 될 듯싶다.

▲ 지권인, 왼쪽 검지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뜻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뜻한다고 한다. "비로자나부처님"은 "광명불"이라 부르기도 한다. ⓒ2004 임윤수 제주도 남쪽 해안에 모슬포 산방굴사를 시작으로 성산 일출봉 입구의 동명사까지 많은 절들이 들어선 것은 바로 서귀(西歸)의 염원이 담긴 까닭이 아닐까 생각된다.

중문관광단지를 벗어나 서귀포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 바닷가로 난 조그만 길 입구에 "약천사"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골목으로 들어서 제주도 특유의 돌담길을 따라 500m쯤 내려가면 약천사의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일반건물 10층 정도의 높이인 30m쯤 되는 약천사(藥天寺)는 그 규모가 단일 전각으로는 동양 최대라고 한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걷고 계곡을 건너 들어서게 되는 심산유곡의 산사에서 나름대로 절 찾아가는 맛을 느낀다면 탁 트인 바다를 전망으로 하고 있는 바닷가 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남다른 기쁨과 신심도 있다.

어찌 보면 획일적인 듯 그렇고 그런 절들에 비하면 약천사에선 조금 파격적인 느낌을 받게 된다. 우선 그 규모가 파격적이고, 주변의 이국적 수목들과 어우러진 가람의 조화가 파격적이다. 어떤 이들은 조선초기의 건축방식이라고 하지만 층층이 올라간 대규모임에도 날렵한 곡선미와 균형감에서 분명 지금껏 보았던 여느 절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 층층 복도엔 금불과 옥불 등 1만 8천 소불이 부처님 터널을 만들고 있다. ⓒ2004 임윤수 대웅전 격인 대적광전 내부에는 높이가 5m나 된다는 비로자나불이 높이 4m의 좌대에 주불로 봉안되어 있다. 복도 형태로 이루어진 층별 양쪽 벽에는 금불과 옥불 등 1만8천 소불이 모셔져 부처님 터널을 이루고 있다.

법당 앞마당 양옆에 솟아있는 2층의 누각엔 각각 범종과 법고가 걸려 있다. 망망대해 남쪽바다와 배산으로 두고 있는 한라산을 향해 울려 퍼질 범종과 법고의 깊고도 울림 있는 여음을 한 몸에 느끼고 싶다.

법당 뒤로 돌아가면 굴법당이 있고 오른쪽 언덕엔 석탑이 있다. 노란 밀감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경내 마당을 한 계단 내려오면 커다란 잎새의 종려나무들이 이국적 풍경을 연출한다. 눈길 끝에 바다가 걸린다. 소리라도 크게 지르면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가 답을 할만도 하다.

▲ 법당 뒤 인공석굴엔 굴법당이 있다. ⓒ2004 임윤수 약천사를 일부에서는 "약수가 흐르는 절"이라는 의미를 가진 약천사(藥泉寺)로 부르기도 한단다. 약천사에는 오래 전부터 "돽새미"라 불리는 수질이 좋은 약수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듯하다.

이른 시간,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잠들어 있을 시간의 약천사는 정말 조용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바다를 전망으로 이국적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동양최대의 단일 가람은 서귀로 드는 일주문이며 관문인 듯하다. 아미타부처님이 관장하는 서방정토로 드는 길목이라 해도 될 서귀포에 자리한 약천사는 극락으로 가는 반야(지혜)의 용선이 정착한 속세의 또 다른 극락인 듯하다.

많은 절을 찾아다니는 동안 자연을 통해, 스님의 말씀을 통해 아니면 미처 생각지 못하는 뭔가를 통해 부처님께서는 남다른 가르침이나 깨우침을 주셨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속세의 말귀조차 다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무지함에 배운 것도 없고 깨우친 게 하나도 없는 듯하다.

▲ 물이 좋아 "藥泉寺"라 할 정도로 좋은 약수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2004 임윤수 속세의 업을 쌓느라 알고도 모르는 양 시치미 뚝 떼고 가르침도 깨우침도 거스르며 일상의 일탈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임윤수 기자 (zzz-daum@hanmail.net)<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서귀포나 중문관광단지에서 20~30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약천사에서 맞이하는 아침시간은 제주도에 대한 또다른 아름다움을 가슴에 만들어 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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