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체꽃과 자주쓴풀을 만나다

2003. 11. 2.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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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체꽃 ⓒ2003 김민수 11월입니다.이제 점점 우리의 시야에서 꽃들이 하나 둘 시들어 가는 계절이지만 자신의 마지막 때를 더욱 아름답게 피우는 꽃들도 있고,지난 겨울 모진 추위에도 불구하고 피어났던 동백과 수선화는 이제 막 꽃 몽우리를 내고, 이파리를 내고 있으니 일년 열두 달 꽃이 없는 계절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과하지 않을 정도의 희소성.너무 과해도 너무 없어도 관심영역의 바깥에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많으면 누구나 보는 것이니까, 너무 없으면 나에게까지 그런 행운이 올까해서 기대를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솔체꽃은 과하지 않을 정도의 희소성으로 다가왔습니다.

ⓒ2003 김민수 가을꽃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작은 꽃들이 모여서 피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이 꽃 역시 꽃 모양이 서로 다른 꽃들이 모이고 모여 한 송이 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산토끼꽃과에 속하는 솔체꽃은 토기풀꽃들이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를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꽃의 모양새도 이파리도 다르지만 산토끼꽃과에 속하는 것은 이런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2003 김민수 솔체꽃은 한 줄기가 세 개로 나누어지고 가운데 꽃대가 가장 먼저 길게 올라오고 양 옆에 두 꽃대는 그보다 낮게, 그리고 늦게 피우나 봅니다. 이미 가운데 꽃은 피었다 지고 씨앗을 맺을 참인데 그 아래 두 송이는 아직도 한창입니다.

연보라빛 꽃송이들과 청명한 가을 하늘, 참으로 잘 어울리는 풍경입니다. 솔체꽃의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또는 "모든 것을 잃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이유미 님의 <한국의 야생화>에서 찾아보았습니다.

ⓒ2003 김민수 "서양의 솔체꽃에는 전설이 하나 전해 온다. 옛날 어느 마을에 양치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 해인가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온 마을 사람들이 죽어 갔고, 소년은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산에 올라갔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예쁜 요정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정이 소년에게 약초를 먹여 목숨을 구해준 것이었다. 소년을 사모하게 된 요정은 약초를 모아 소년이 온 마을 사람들을 다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소년은 약초 덕분에 목숨을 구한 마을의 예쁜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요정은 너무나 깊은 상처를 받고 슬퍼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이를 불쌍히 여긴 신은 요정을 예쁜 꽃으로 피어나게 했는데 그 꽃이 바로 솔체꽃이라고 한다."<이유미의 한국의 야생화 pp.355-356>좀 슬픈 이야기이긴 하지만 깊은 산 속에서 이 꽃을 만났을 때 동행했던 사랑하는 연인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야기의 끝은 "그러나 우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납시다!"하고 강조를 해야겠죠? ▲ 자주쓴풀 ⓒ2003 김민수 오늘의 두 번째 꽃이자 마지막 꽃이고, 혹시 독자분들께서 눈치채셨는지 모르겠는데 요즘 소개해 드리는 꽃이 계속 보라색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으로 보라색 꽃의 여행은 마치고 다음 여행부터는 노랑색 여행을 시작할 거랍니다.

자주쓴풀.이름이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2003 김민수 자주쓴풀은 용담과에 속하는 꽃으로 그 뿌리가 매우 써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뿌리만 쓴게 아니라 식물전체가 쓴 모양입니다. 이파리 하나 따서 이빨로 살짝 깨물어 보았는데 입안에 퍼지는 쓴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주쓴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꽃이 참 예쁜데 그 예쁜 꽃 안에는 저렇게 쓴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꽃이라는 생각도 들고, 저렇게 예쁘게 피어나는데 그 어려웠던 순간순간들이 그렇게 온 몸을 쓰디쓰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죠.게다가 자주쓴풀을 만난 곳은 4.3의 원혼들이 구천을 떠돌던 잃어버린 다랑쉬마을 근처에 있는 다랑쉬오름이었기에 더욱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너, 이 역사를 위해서 쓰러져간 이들의 그 붉은 피를 먹고 이렇게 쓴 것은 아니니? 그 고난의 세월을 온 몸으로 간직하고 있어서 온통 보랏빛이 아니니?" ⓒ2003 김민수 양지에 피는 꽃이지만 그늘이라도 풍성하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문득 아주 오래 전 학창 시절에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어디에 펴도 그 꽃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꽃, 나도 어느 곳에서도 나로 불리우면 좋겠습니다.

ⓒ2003 김민수 가을 꽃들에게는 넉넉한 시간이 없습니다. 낮도 짧고, 곤충들도 적고, 조석으로 쌀쌀해서 서리만 오면 그냥 시들어버릴지도 모릅니다.아니면 갑자기 눈이라도 내려서 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꽁꽁 얼어붙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눈을 돌려 들판을 바라보실 수 있으시면 따스한 눈으로 들꽃을 바라봐 주세요.그 따스한 눈빛도 그들에게는 필요하니까요./김민수 기자 (gangdoll@freechal.com)<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김민수 기자는 제주의 동쪽 끝마을에 사는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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