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이 역류하는 첸탕강

2003. 9. 28.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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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 통행료를 내야 통과 할 수 있습니다.""아니 특별한 곳도 아닌데 여기에 웬 통행료가 필요합니까?""오늘 이 길을 통과하는 차는 모두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누가 무슨 권리로 돈을 거두죠?"" ..... "더운 날씨에 꼬치꼬치 캐묻는 말이 귀찮은 듯,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공안(경찰)은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눈살을 찌푸린다. 외국인이어서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주고 있으니, 싫으면 그만 가라는 눈치다. 이왕 들어선 길인데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 다른 길로 돌아가면 30분은 더 걸린다. 새벽에 눈뜨자마자 봉고차를 타고 두 시간 이상을 달려 온 우리는 이미 지쳐 있었다. 통행료 40위안(우리 돈 6,000원)을 내자 오히려 인심을 쓰는 듯 임시로 만든 검문소의 장애물을 치워준다. "쳰탕강의 역류를 보러 오신 관광객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통행료 징수를 위한 유일한 고지서였다.

상하이에서 남서쪽으로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저장성 하이닝시 옌구안진(鎭)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북적인다. 인근 사람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오거나 새벽에 출발해 걸어서 오기도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오고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근처 항조우까지 비행기로 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온다. 홍콩이나 대만은 물론 2천km 떨어진 랴오닝성의 따렌에서 온 사람도 있다.

좁은 도로에는 관광가이드들의 깃발이 넘쳐나고 행정기관에서 운영하는 주택가 공터의 임시 주차장은 통로도 없이 수백대의 차량으로 완전히 막혀버렸다. 이곳에서 제일 큰 식당인 "옌구안주덴(酒店)"은 서서 먹는 사람이 반인데, 그나마 밥이라도 입으로 넣는 것은 행운이다. 12시가 안 되어 식당음식은 동이 났다. 링다오(領導-지도층 인사)들이 나타날 때 울리는 차량의 사이렌 소리와 약장사, 야바위꾼의 호객소리가 비포장도로의 뽀얀 먼지 속에서 외지인들의 혼을 빼 놓는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일행을 잃고 사람들에 휩쓸려 버릴 기세다. 우리 나라 행정구역상으로 읍에 해당하는 조그만 시골 도시인 "옌구안진"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까?중국의 고도인 항조우(杭州)를 지나 동지나해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 410km 쳰탕강(錢塘江)에서는 매년 음력 8월 18일 무렵이면 바닷물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특이한 자연현상이 일어난다. 바닷물이 시속 25m 정도의 속도로 강어귀에서 상류로 역류하는데 2-3m 높이의 파도가 일직선을 이루며 올라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쳰탕강변의 "옌구안진"이다.

▲ 30만 인파가 "쳰탕강의 역류"를 보기 위해 뙤약볕 아래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린다. ⓒ2003 오기현 중국인들은 "그 모양은 일만 마리의 말이 일제히 질주하는 것 같고, 그 소리는 천둥이 치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특히 "쳰탄강의 역류"가 중국 중학생들의 교과서에 실린 뒤부터는 이곳을 마치 이슬람인들이 성지를 순례하듯이 모여드는 것이다. 그들에겐 영상 35도의 뜨거운 날씨나 일시적인 교통난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추석 3일 뒤인 9월 14일, 옌구안진에는 현지 인구보다 몇 배나 많은 30만명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오늘 옌구안진은 장날이다. 강가로 들어가는 모든 곳에 울타리를 치고 입장료를 받는다. 7세 이하의 어린이만 빼고 모두 50위안(우리 7500원)을 내야한다. 30만명이 7500원씩이라니... 역시 인구가 많으니 시장도 크다. 아들은 7세가 안 되어서 입장료를 내지 않았지만 같이 간 우리 가족과 일행은 모두 4만원이 넘는 입장료를 물어야 했다.

오늘은 역류 현상이 오후 1시 30분에 일어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우리가 들어간 시간은 12시 20분, 아직 1시간 10분이나 남았다. 강둑에는 벌써 인파로 넘치는데 입구 근처에서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장소는 두 그루의 나무밖에 없다. 멀리에 천막을 치고 좌석을 깔아 놓은 곳이 있어서 가보니 5인용 한 테이블 당 5백 위안(우리 돈 7만 5천원)을 달라고 한다. 우리나라 피서철의 바가지 요금 이상이지만 빈자리가 거의 없다. 부근에는 불교사원의 탑처럼 잘 지은 7층 전망대가 있는데 여기도 입장료가 우리 돈 1만 5천 원이다. 하여튼 이곳 사람들의 돈벌이 기술은 처절할 정도로 끈질기다. 강가에 나무를 심지 않은 이유를 알 만하다,아내와 두 아이는 홍당무가 되었다. 이렇게 뜨거운 햇살 아래서 익느니 차라리 차에 가 있겠다고 한다. 막내는 일사병 증세까지 나타난다. 간이매점에서 평소보다 다섯 배나 비싼 생수를 사서 입에 물리고 황급히 차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자리를 뜨는 중국인들은 없어 보인다. 우리처럼 고통스러운 인상을 쓰는 사람도 없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즐거운 표정으로 다가올 "장관"을 기다렸다. 눈앞에 펼쳐질 기적을 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라는 듯..."아!"전망대 꼭대기에서 쌍안경을 보던 사람이 탄성을 질렀다. 멀리 파도가 보인다는 신호다. 쳰탕강 양쪽으로 하얀 띠 모양의 물보라가 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보라가 상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몰려온다. 난공불락의 성채를 함락하기 위해 마치 천군만마가 일시에 공격을 개시하는 기세였다.

"와!"사람들은 탄성을 질렀지만 곧 파도 소리에 묻혀버렸다. 멀리 있을 때는 "분노의 포도"였지만 가까이 올수록 잘 훈련된 기병대 마치를 보는 느낌이다. 어떻게 2km의 강폭 사이를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렬로 역류해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놀랄 틈도 없이 파도는 관객 앞을 지나쳐버린다. 가까이서 역류현상을 볼 수 있는 시간은 30초 이내. 투자에 비해서 장관(壯觀)은 너무 짧다. 그래도 누구나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내년에 또 오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렇게 짧은 시간의 자연현상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 또 있을까? 전남 진도 "모세의 기적"을 보기 위해서도 연인원 30만 명 가량이 모인다고 한다. 그런데 진도 모세의 기적은 연 5〜6차례 일어나는데다가 조개나 미역 줍기 같은 부대 서비스가 있다. 또 진도 해안에서 인근 모도까지 2.8km를 왕복할 만큼의 시간여유도 있다. 여기에 비해 "쳰탄강의 역류"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이고 내년에는 더 올 것이라고 한다.

이방인들의 눈에는 "쳰탕강의 역류" 보다는 이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의 폭주"가 더 흥미롭다. 사실 거기에는 중국사회의 변화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은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경제발전으로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사람들이 "좋은 것"을 찾아 대규모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의식의 발로이자 현재 중국사회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쳰탄강의 역류"를 보러 온 사람들의 표정 속에는 스스로 "혜택 받은 사람"이라는 잠재의식이 숨어있다. 과거에 비해서 혜택을 받았고 13억 중국 전체인구에 비해서 혜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2중으로 받는 입장료가 불만스럽지 않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도 즐겁기만 하다. 쳰탄강의 역류를 보는 일 보다는 행사에 참가하는 일 자체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대접을 받고도 즐거워한단 말인가?" 이거 원, 데모라도 해야지!"출구가 막힌 공용주차장의 폭염 속에서 두 시간을 갇혀 있다가 무심코 내뱉은 소리다. 물론 불평하는 사람은 우리 일행뿐이다.

지난 상반기에 상하이의 경제는 "사스파동"에도 불구하고 11.4%나 성장했다. 중국전체의 경제성장률은 8.2%를 기록했다. 이곳 어디를 가나 성장의 속도감에 만취되어 있다. 지역적 직업적 소외계층의 불만은 성장의 환호 속에 묻혀버린다. 속도에 제동을 거는 일은 금기시 된다. 그리고 이런 성장은 당분간은 지속될 전망이다. 한해 580억 달러에 달하는 외국인직접투자(2003년 전망)가 이를 말해준다.

곧 제 2, 제 3의 옌구안진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또 그곳을 향해 달려갈 것이고... 상하이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가자니 정신이 혼미해진다./오기현 기자 (ohmypd@sbs.co.kr)<hr noshade color=#FF9900>덧붙이는 글"쳰탕강의 역류"에 대한 취재를 할 때 쯤 태풍"매미"가 한국 남해안을 강타했습니다. 파도에 대한 거부 정서를 고려해 기사화하는데 주저했습니다만, 국경절등 중국인들의 대규모 이동현상에 대한 이해의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늦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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