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으면 나쁜 음사리가 나올 것이다

이종찬 2003. 3. 18.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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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나는 걸레.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사는 게다.

......별들은 노래를 부르고달들은 장구를 치오.고기들은 칼을 들어고기회를 만드오.나는 탁주 한잔꺽고서덩실,더덩실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중광 "나는 걸레" 몇 토막)"나는 걸레"라는 이 시는 걸레스님 중광이 1977년 영국왕립아시아학회의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읊은 자작시라고 한다. 걸레스님 중광은 이 시를 읊음으로써 그때부터 세인들에게 중광스님이란 법명 대신 아예 걸레스님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시다시피 걸레스님 중광은 지난 해 3월 9일에 걸레 같은 이 세상의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지금 걸레스님 중광의 에세이집 <괜히 왔다 간다>가 기린원에서 나왔다. 책 제목 <괜히 왔다 간다>는 스님이 살아 생전에 "중광 달마전"을 열 때 부제로 붙인 이름.걸레스님 중광의 타계 1주기에 맞추어 나온 이 책은 살아 생전에 걸레스님 중광이 쓴 여러 가지 원고들을 모은, 일종의 유고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절반이 걸레스님 중광의 평소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걸레스님 중광이 직접 그린 그림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스님, 백담사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반은 백운처럼 살고, 반은 바람처럼 산다""스님 입적하시면 진신 사리 나올까요?""내가 죽으면 나쁜 음사리 나올 것이다""스님, 극락과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주장자를 세우며) 잘 보았는가? 극락은 주장자 머리에 있고, 지옥은 주장자 밑에 있다""스님은 오늘 누구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요?""어제 검은 구름 한 조각 오려 내어 심부름을 보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심부름은 무슨 심부름인데요?""날씨가 너무 가물어서 눈을 많이 몰고 오라고 했다. 절에 왔으면 그대로 갈 수가 없지. 본전을 내놓고 가야지. 백담사 앞 시냇물이 참으로 아름답지. 시냇물 위에 "부처님" 석 자를 써서 나에게 주고 가거라. 백담사 산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으니, 언제든지 와도 좋고 가도 좋다" 걸레스님 중광은... 지난해 3월 9일 이승의 옷 벗어던져 ▲ 지난 해 3월 9일, 67세(출가 41년)의 나이로 걸레 같은 이 세상의 때묻은 옷을 훨훨 벗어던진 중광스님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26세 때 통도사 구하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화가, 시인, 행위예술가, 도예가이자 기인으로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중광스님은 전 조계종 종정 월하스님과는 사형사제간이었다.

중광스님은 출가 초기부터 엄격한 불가의 계율과 풍속을 몹시 싫어했으나 조계종 종회의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출가 수행승의 본분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간혹 기발한 행동을 함으로써 화제를 모았다. 그 중 어느 49재에서 망자가 제일 듣고 싶어하는 법문일 것이라며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세인들의 입방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광스님은 1970년대 중반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소 붓글씨를 잘 썼던 스님은 조계사 뒤에 있는 어느 불교미술인의 화실을 찾아가 한국화의 기초를 사사받았으며, 이 때부터 수년에 걸쳐 중국과 한국, 일본의 선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직접 그리기 시작했다. 혹자들은 중광스님의 그림이 기초가 없는 즉흥적인 그림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스님은 그 어떤 화가보다도 그림에 관한 한 끈질기고도 철저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는 조계사 뒤 어느 화실을 다닐 때, 한꺼번에 5천 장의 한지를 사들여 몇날 며칠씩이나 그림에 매달린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1977년에는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초대로 선화 특별전을 열었으며, 그때부터 스님이 그린 달마도와 연꽃 그림들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는 "걸레스님으로 더 알려진 한국의 화가이자 조각가, 시인, 행위예술가이며 동양적 사상과 철학을 어느 화파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 분방한 필치와 색채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아 제일제당과 안그라픽스에서 추린 "현대미술의 거장 12선" 에 선정되기도 했다. 1979년에는 중광스님의 작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권의 미술서적이 출간되기도 했으며, 1980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수많은 특강과 전시회를 가졌다. 또 그해에는 불교의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아니 스님 스스로 전혀 지키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계종의 승적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 이종찬 기자 백담사 산문일기에 나오는 글이다. 그런데 "시냇물 위에 "부처님" 석 자를 써서 나에게 주고 가"라니. 언뜻 보면 도인들이 무슨 선문답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히 곱씹어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흰 구름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대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그것이 진정한 삶이 아니던가.또한 진신사리와 나쁜 음사리의 구분은 누가 하는 것이며, 극락과 지옥의 경계는 대체 누가 그어 놓은 것인가. 이 모두 사람의 눈높이로 구분 짓고, 사람의 잣대로 그어 놓은 것이 아니었던가. 한동안 날씨가 가물었으니 구름 한 조각 오려 내어 눈을 많이 몰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내는 스님,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이 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걸레스님 중광이 수도승으로서 깨친 선(禪)에 대한 함축적이고도 짧은 글에서부터 수도와 수양에 관한 여러 가지 글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걸레스님 중광이 병상에서 쓴 일기뿐만 아니라 삶과 문화 예술 전반에 관한 삶과 철학이 담긴 글이 그것이다.

모두 7부로 나뉘어진 <괜히 왔다 간다>는 제1부 "선 이야기"를 시작으로 "병상일기", "수도와 수양", "문화예술의 혼", "삶의 길목에서", "나라와 국민", "중광어록" 이 실려있다. 이 책 곳곳에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간 걸레스님 중광의 혼백이 활자가 되어 곳곳에서 까만 사리를 떼구르르 굴리고 있다.

이 밖에도 "중광을 기리며"라는 시인 구상의 글과 영화 감독 김수용의 "다시 만날 우리", 김충렬 교수의 "아, 취화선 걸레 중광이여", 정우스님의 "중광스님이 다시 사바에 오실 날을 기다림" 이라는 추모의 글이 책머리에 실려 있다. 또 책 끝에는 "중광, 인간과 예술" 에 대해 구상, 김기창, 김형국, 이일, 장석원씨의 글이 덧붙어 있다.

"나 죽거든 절대 장례식 하지 마라. 가마니에 둘둘 말아 새와 들짐승이 먹게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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