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데이에 떠오른 영양갱의 추억

오명철 2003. 3. 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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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 왜 영양갱이 생각난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무심하고 기념일을 챙겨주지 않는 제가 불안했는지 며칠전부터 화이트데이때 쵸코렛 사줄거냐고 확인을 하던 와이프에게 제가 했던 말입니다.

"영양갱 사줄게”발렌타인 데이니 화이트 데이니 남의 나라 기념일 갖고 와서 애들 코묻은 돈 다 뺏어간다고 외치던 무슨 무슨 시민단체의 모습을 TV에서 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인 떡이나, 엿 같은 것을 선물로 주자는 운동도 있었구요. 그런데 영양갱이라니.영양갱 사준다는 말에 아내는 어이없다는듯이 쳐다봅니다.

“영양갱만큼 맛있는게 어딨다구 그래” 라고 한마디 더 해주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내가 영양갱을 마지막으로 먹었던 게 언제였지?’영양갱에 대한 추억은 한마디로 "감질난 맛"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영양갱이 최고의 먹거리였었고, 그 "감질나는 맛"이 아까워 한번에 크게 베어먹지도 않고 이빨로 아주 조금씩 뜯어먹고는 했었습니다. 길다란 종이를 조금씩 뜯어가면서 먹을 만큼만 먹고 나머지는 그대로 종이에 싸서 숨겨뒀었던 기억도 나구요. 어쩌다가 영양갱이 몇 개 생기면 책상 서랍속에 넣어두고 두고 두고 먹기도 했었습니다. 그 시절 동네 점방에서의 내 쇼핑 목록 1위였었죠.그런데, 그런 영양갱이었는데 정말 몇 년을 까마득히 잊고 살고 있었던 겁니다. 생각해보니 동네 슈퍼에서 몇 번 봤던 것 같은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영양갱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채 서둘러 살 물건만 사고 나왔었겠죠. 그런 생각을 하니 영양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날 기쁘게 해주고 나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이제 먹고 살만 하니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를 무시했으니까요.생각난김에 인터넷에서 영양갱을 찾아봤습니다.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도 영양갱이 있더군요. 이른바 영양갱 선물 세트 였습니다. 그런데 약간 실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내 기억속의 영양갱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거든요. 빨간색, 파란색의 예쁜 포장지에 리본까지 하고 있는 영양갱의 모습. 겉만 보면은 일반 쵸콜릿 선물세트하고 똑 같은 그런 포장이었습니다.

노란색 포장에, 세로로 크게 영양갱이라고 쓰여있던 모습을 기대했었는데.. 모양도 가지각색입니다. 투박하고 긴 그런 모습이 아니라 별모양, 꽃모양, 하트 모양 등 이쁜 모양은 다 만들어 놨더군요.기억속의 영양갱을 찾아 이번엔 불량식품 판매 사이트에 가봤습니다. 쫀드기, 아폴로 같은 불량식품이 작년부터인가 유행을 해서 판매하는 사이트가 많더군요. 근데 거기에서도 어릴때의 그 영양갱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란색 포장에 검정색으로 크게 쓰여있던 그 영양갱 말이죠.그러고보니 새삼스럽게 옛날에 대한 향수니, 어린시절의 추억이니 할 것도 없이 내 곁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잊혀져가는 것도 많구요. 오늘 영양갱이 그런 사실을 저한테 일깨워 줬습니다.

오늘부터 차근 차근히 생각해보려 합니다. 영양갱같이 내 주위에서 천천히 사라져간것들이 무엇이 있을까하구요. 비록 어릴때의 그 모습 그대로는 찾을 수 없겠지만 마음속으로나마 그 당시 고마웠었다고 말이나 해줄렵니다.

오늘 저녁에 동네 슈퍼에 가서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노랗고 긴 그 영양갱이 있으면 사서 와이프한테 보여줄 생각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 먹었던 방법을요. 껍질을 한번에 1cm씩 벗기면서 감질난 맛을 음미했던 그 방법..아마 화이트데이날 쵸코렛이 아니라 영양갱을 받는 유일한 여자가 될지라도 아내가 이해해 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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