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린 빈민들의 겨울나기

석희열 2002. 12. 2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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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2@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1000번지 일대 1-4지구 재개발지역 8세대 30여명의 철거민들은 지난 6월 17일 강제 철거를 당한 이후 풍림 아이원아파트가 들어설 재개발지역 공사현장 앞에서 천막생활을 하며 겨울을 보내고 있다.

철거반에 의해 강제로 길거리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하왕 1-4지구 주택재개발조합(위원장 백운선)과 시공회사인 풍림산업(주)는 작년 2월 26일 성동구가 이곳을 재개발지역으로 고시한 후 지나치게 낮은 보상비 등의 이유로 주민들이 반발하자 철거반을 동원하여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철거 전문 용역업체 신한환경개발(주)의 철거반 300여 명이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하여 하왕 1-4지구 재개발지역에 전격적으로 들이닥친 시간은 이날 오전 6시경.이들 철거반은 발길질과 망치 등으로 대문을 부수고 들어가 아침 식사와 출근 준비를 하고 있던 주민 400여명을 강제로 끌어낸 후 주민들의 세간살이를 컨테이너와 이삿짐용 화물차에 실어 물류보관센터로 보냈다.

또 이들은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포크레인으로 건물을 파손한 뒤 집안에 오물을 뿌리기도 했다. 이에 반발한 주민들이 평상과 천막을 치고 "주민 생존권 박탈하는 용역깡패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자 이들은 중장비를 동원하여 평상과 천막을 모두 걷어냈다.

@IMG3@졸지에 철거민 신세가 되어 오갈 데가 없게 된 이곳 주민들은 또다시 평상과 돗자리,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면서 철거반의 폭력에 맞섰다. 이들은 근처 공원의 공동화장실과 수도를 사용하며, 전기가 없는 천막에서 촛불로 밤을 지새며 지금까지 공동생활을 해오고 있다.

이날 이후 줄곧 노숙생활을 해오고 있는 이경수씨는 "예고도 없이 집집마다 용역직원들이 15명씩 떼를 지어 몰려와 고함을 지르며 구둣발과 망치로 문을 내려치면서 들어왔다"며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얼마나 놀랬는지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지금도 불안해하고 있다"고 이날의 참상을 전했다.

남편과 함께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는 조화숙씨는 "그 동안 평상에서 생활하며 고3인 딸과 고1인 아들에게 밥도 제대로 못해 먹이고 학교에 보냈다"며 "새벽에 학교에 간다고 나간 아이가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산 속이나 어디 다른 곳에 숨어 있다 밤늦게 돌아오곤 했을 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77세인 친정 어머니와 함께 천막에서 철거민 생활을 하고 있는 권효순씨는 "남편을 여의고도 3층 집에서 아들 딸과 함께 오손도손 잘 살아보려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방 한 칸 없는 철거민 신세가 되다 보니 형제들 보기도 민망할 정도"라며 서러워했다.

얼마 전에 해장국 가게를 얻어 동생에게 맡겨놓고 있는 권씨는 이어 "25살인 아들과 23살인 딸이 장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 가게에서 커텐을 치고 함께 자고 있다"면서 "딸 아이가 마음 놓고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방 한 칸만 있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며 울먹였다.

하왕철거민대책위원회 강경현 위원장은 "강제 철거 이후 아들은 군대에 보내고 집사람은 교회에서 생활하고 저는 철대위에서 생활하면서 집안이 완전히 이산가족이 되었다"며 "다행히 누나가 얼마간 돈을 빌려주고 은행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출을 받아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 20만원 하는 사글세방을 지난달에 하나 얻었다"고 고단했던 그간의 역정을 털어놓았다.

현재 하왕철대위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철거민들은 세입자가 아닌 5~10년 전에 지어진 집이나 상가를 가지고 있던 가옥주들이 대부분이다. 턱없이 낮게 책정된 보상금으로는 세들어 살던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돌려주기에도 모자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세입자 보다 못한 가옥주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동구청의 한 관계자는 "철거민들의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토지 및 건물에 대한 수용과 보상은 도시재개발법 및 토지수용법에 따라 토지수용위원회의 결정에 따른 것이므로 구청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서울시지방토지수용위원회(서토위)가 토지수용법과 공공용지의취득및손실보상에관한특례법 등 관계 규정에 따라 대화감정평가법인과 신한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하여 평가한 결과를 토대로 작년 12월 주민들에게 제시한 보상액은 건물의 경우 평당 60~154만원, 대지의 경우 270~320만원 선이다.

@IMG4@서토위의 이같은 결정에 불복한 주민들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에 즉시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이의신청을 받아들인 중토위는 지난 7월 16일 손실보상금을 다소 상향 변경하여 주민들께 통보했다. 중토위가 재결한 적정 보상액은 서토위의 평가액에 건물은 평당 2~54만원, 대지는 평당 7만~60만원이 추가된 금액이다.

자신들의 재산 손실에 대한 보상을 공정하게 해줄 것을 요구하며 반년 넘게 생존권 투쟁에 매달리고 있는 하왕철대위 주민들이 주장하는 적정 보상액은 건물의 경우 평당 64~160만원, 대지의 경우 510~670만원 선이다. 이들은 이같은 내용을 성동구청을 통해 재개발조합에도 통보했다.

이와 함께 하왕철대위 주민들은 중토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소송대리인 이덕우 변호사)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취재중 기자가 하왕 1-4지구 재개발지역 주변 부동산 시세를 확인해 본 결과 단독주택이 평당 700~1000만원, 아파트가 평당 800~120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성동구 금호동 그린공인중개사무소가 내놓은 부동산 매매 의견서와도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하왕철대위 강경현 위원장은 "이제 새 대통령도 뽑았으니 철거민문제도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히고 "인근 금호동 1가 168번지 일대 도로 확장을 위한 손실보상금 산정에서는 토지의 경우 공시지가의 1.45~2.53배까지 보상해주었다"며 "이 일대에서 최근 거래되는 부동산 매매계약서 내역에 비추어보더라도 조합의 손실평가액은 시가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된다"고 비난했다.

@IMG5@한편 하왕 1-4지구 재개발조합 백운선 위원장은 "전체적으로 감정평가를 한 후 평당 300~600만원의 보상을 끝마친 상태"라며 "더이상 그들과 협상할 생각이 없다"고 완강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철거민들도 나름대로 부자이며 현재 집들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왕철대위 김경애 조직부장은 "우리가 그간 보상받은 것은 서토위가 제시한 평당 298만원의 평균 보상비 뿐"이라며 "더욱이 중토위가 내놓은 추가 보상금에 대해서는 조합측에서 가압류를 해놓은 상태에서 행정소송을 제기중이어서 추가 보상금을 한 푼도 더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느냐"며 서토위가 재결한 보상금내역서를 공개했다.

김 조직부장은 "아이들을 천막에서 재울 수가 없어 지난달부터 전세방이나 사글세방을 얻어 아이들만은 집에서 재우고 있는 것이 현재 철대위 주민들의 형편"이라며 "이를 두고 철거민들이 다 부자라고 한 것이냐"고 반문하고 "다들 집도 있고 부자라면 무엇 하러 이 추운 겨울에 길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IMG6@ 철거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천막에 최소한 전기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하지 않느냐고 묻자 백운선 재개발조합 위원장은 "우리 재개발조합에서는 철거민들이 얼어죽든 굶어죽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인근 상가 주민이 철거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해주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철거민들 중에 자기 친척이 있어 전기를 공급해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자기 돈 내가며 남에게 전기를 주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1월 8일부터 12월 16일 상가 관리소장의 압력으로 중단하기까지 철거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해온 이 상가 주민은 "철거민들 중에 우리 가족이나 친척은 결단코 없다"며 "지난번에 철거민 중 할머니 한 분이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가는 것을 보고 인간적인 배려에서 한 일을 두고 그렇게 말했다니 그 사람의 인격이 의심스럽다"고 어이없어 했다.

@IMG7@한편 하왕철대위 소속 이종헌씨가 재개발지역의 토지 수용 및 보상 과정에서 자신의 땅 7평이 누락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또 임종례씨의 재개발지역 내 무허가 건물 17평에 대하여 중토위가 1500여만원을 보상할 것을 결정하였으나 재개발조합측에선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헌씨는 "이미 철거가 돼버린 하왕십리동 1000-613번지 2호 부지 7평이 보상 과정에서 누락이 됐다"고 밝히고 "말썽이 되자 성동구청에서 부랴부랴 지난 10월 10일 종합토지세 납세고지서를 보냈다"며 "보상이 이루어진 철거부지라면 종합토지세가 왜 나오겠느냐"며 납세고지서와 영수증을 공개했다.

이와 관련 성동구청 주택과 재개발2팀 고병연씨는 "서토위로 올라가는 서류는 우리 구청을 경유하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챙기지 않고서는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며 "토지 누락에 대한 신청인의 이의 제기가 없었다. 확인해보고 잘못이 있으면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6개월 넘게 철거민들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고병연씨는 "세입자가 아닌 가옥주가 저러는 것은 처음 봤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일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조합측과 시공사인 풍림산업(주)를 잘 설득해보겠다"고 말했다.

@IMG8@하왕철대위에는 지난 9월 27일 재개발조합과 공사장 인부를 상대로 한 물리적 충돌 이후 매일 50~300여명의 빈철연 소속 철거민과 대학생 등이 결합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풍림 아이원아파트 신축 공사장 앞에서 작업차량과 장비의 현장 진입을 막으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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