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없앨 후보가 대통령 적임자다"

조호진 2002. 12. 16. 07: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MG1@전남은 지나칠 정도로 평온하다. 대선 분위기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장이 서면 잠깐 선거운동을 하거나 출퇴근 차량을 향해 잠시 유세할 뿐, 지난 대선 같은 열띤 선거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지역 출신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탓일까? 아니면 대통령의 한을 이미 풀어서 일까?전남의 차분한 선거분위기는 지역감정에 따른 피해의식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전남지역에서 유세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강지처를 홀대하면 안 된다"고 서운해 하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은 "전남의 지지열기가 뜨거워지면 영남의 지역감정이 날을 세울 위험성이 있다"며 차분한 분위기를 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따라서 전남의 대선은 개점휴업 같은 분위기다.

대선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전남을 방문한 후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광주까지만 방문했다. 특히 97년 대선에서 한 자리(3.1%) 득표에 그친 이 후보 캠프는 반(反) 이회창 정서에 가슴이 타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반면 노무현 후보는 국민경선에서 나타난 지지와 민주당 텃밭에 대한 믿음으로 느긋한 상태다.

하지만 선거일을 앞두고 분위기가 조용히 일렁이고 있다. 겉으로는 평온한 분위기이지만 속내는 달아오르고 있는 셈이다. 선거가 차분하게 비쳐지는 것은 대중동원 유세보다 미디어와 인터넷 등으로 선거문화가 바뀐 데 따른 현상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해 대선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민주당 지지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젊은 후보 찍겠다" VS "전쟁하려는 후보는 겁난다"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한 전남 유권자의 지지는 노년층에서 젊은 층까지 광범위하게 퍼진 상태다. 국민경선을 통해 이미 친숙해진 탓인지 부산출신 노 후보를 "젊은 후보"라고 지칭하며 지역통합의 적임자로 평가하고 있다.

노 후보에 대한 지지는 반(反) 이회창에 대한 감정이 실려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다만 이 후보가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연고와 외가가 전남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영남의 지역감정 역풍을 고려해 일정한 지지를 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2일 순천 철도운동장 구석에 마련된 "조곡동 게이트볼 구장"에는 10여명의 노인들이 차디찬 겨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게이트볼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들 노인들은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IMG2@게이트볼 선수인 양금열(69・순천시 생목동) 씨는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는 방탄국회나 열고, 5년 내내 발목잡고 트집만 잡았다. 앞으로는 누가 해도(대통령을) 착실히 한다고 봐야 하지만 그래도 젊은 후보를 밀어줘야 한다"면서 "전라도 후보는 없어도 노무현 후보가 지역감정도 없앨 것 같아 대통령을 맡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특히 5남매 자식이 전부 투표에 참여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게이트볼 선수인 정성훈(77・순천시 덕암동)씨는 "개중에 이회창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호남에서는 거의가 노무현 후보가 낫다고 생각한다"면서 "오늘날까지 DJ를 위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제 젊은 대통령을 뽑아야 안 되것냐. 아, 시방 노무현 후보가 계속 상승하는 것으로 봐서 대통령에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순천의 가장 큰 재래식 시장인 중앙시장.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여서서 인지 아니면 불황 때문인지 시장은 한산했다. 이곳 상인들은 DJ에 대한 사랑을 그대로 드러냈다.

중앙시장에서 53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최순남(76・순천시 옥천동)할머니와 주변 동료들은 16일 마지막 토론회를 보고 후보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최할머니는 기자가 노무현 후보가 고졸 출신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화를 내듯이 "학벌로 사람 따지지 말라. 중학교만 나와도 충분히 사람노릇 할 수 있다"며 고함을 쳤다.

최 할머니는 전형적인 전라도 유권자였다. 또 주변 상인들은 DJ에 대한 존경심을 거두지 않았다. 선거 때면 어김없이 첫 번째로 가서 투표한다는 최 할머니는 DJ를 위해 많이 울기도 했고 가슴도 태웠단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원망보다는 부패에 연루돼 구속된 자식들에 대한 원성이 컸다.

최할머니는 "우리 김 대통령이 잘했는디 아들 때문에 똥바가지를 뒤집어 쓴 것이여. 그리고 김 대통령이 노벨상을 탓드만 이회창이가 돈을 주고 샀다고 우겨쌌는디 어찌케 세계적인 상을 돈을 주고 산다냐. 말도 안 돼는 소리 해봐야 나쁜 인심만 얻는 벱이여..."라고 한나당과 이회창 후보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또 "노무현 후보 고향이 경상도요 만은, 옳은 소리하는 사람이고 똑똑항께 꼭 찍을꺼요. 그라고 이번에 우리 민주당이 안되면 엎어징께 도와줘야 한다"고 민주당 재집권을 강조했다.

최 할머니 옆에서 식료품 노점을 하는 이아무개(63・순천시 옥천동) 할머니는 "이회창 후보는 정이 안 간다. 자식을 군대 하나도 안 보낸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재산을 헌납한다고 하는데 누가 믿겠냐"면서 "우리 자식들은 빽이 없어 군대에 다 보냈다"고 병역비리에 대한 원성을 크게 표시했다.

또 이 할머니는 "어찌됐든 대통령이 되면 전쟁이 안 일어나게 잘 해야되는디 이회창은 끄떡하면 트집잡고 싸울라 그래 쌌고 전쟁할라고 항께 겁나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조금 도와주면 퍼준다고 그래 쌌는디 남도 아니고 이북의 배고픈 사람들 도와준 게 뭐시 잘못한 것이요."라며 한나라당의 반대는 발목잡기였다고 성토했다.

"전라도 혜택 없어도 지역감정 없앨 후보가 대통령 되어야 한다"@IMG3@중앙시장 주변의 한 약국의 계산대 위에는 "노무현 후원금"이라고 적힌 작은 돼지저금통이 놓여 있었다. 약값을 치른 손님들이 동전과 지폐를 넣는 모습이 취재 중에도 눈에 띄었다. 이 약국 관계자들은 노사모 회원 집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그냥 노무현 후보의 깨끗한 정치를 돕기 위해 저금통을 놓았다"고 밝혔다.

서울이 고향이라는 이 약국의 이지은(약사・여・39・순천시 왕지동)씨는 "전라도 사람들이 노무현 후보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 같다"면서 "노무현 후보가 아니면 찍을 사람이 없다고들 이야기를 한다"고 전남의 대선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분명히 표시했다. 이씨는 "노무현 후보가 선거에 이기려고 정몽준 후보와 손잡은 것에 실망했다"면서 "자라온 환경과 이념이 틀린 사람이 같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후보단일화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내놨다.

이씨는 또 "본 받을 만한 정치인이 없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똑 같을 거라고 생각해 선거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투표를 할 생각이다. 다만,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고 짤라 말했다.

약국을 찾은 황화숙(여・41・덕암동)씨는 약값으로 치르고 남은 동전을 노무현 후원돼지저금통에 돈을 넣었다. 황씨는 "노무현 후보가 청문회에서 활동했던 모습이 인상이 너무 좋게 기억됐다"면서 "이미지도 좋고 깨끗한 정치를 할 사람이라고 생각돼 지지할 생각이다"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이수진(여・21・순천시 연향동)씨는 지난 6.13지방선거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번 대선이 첫 번째 참정권 행사가 되는 셈이다. 이씨는 "노무현 아저씨한테 관심이 있는데 투표할 지는 모르겠다"면서 "가족・친구들 모두 노무현 아저씨를 이야기를 하고 이회창 후보에 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4시께 순천역전에는 15대 가량의 영업용 택시들이 줄을 세우고 있었다. 불황에 울상을 짓고 있는 택시기사들은 기름만 축날 뿐이라며 차를 세워놓고 역전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기사들은, 승객들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젊은 사람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이중 한 택시기사는 "영부인이 될지도 모를 대통령 후보 부인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대통령이 되야 한다는 막말을 해야 쓰것냐"면서 "이회창 후보가 지역감정을 부추기면서 전라도를 잘못되게 말하고 있다"고 반감을 표시했다.

17년째 택시운전을 한다는 김영철(57)씨는 "그 동안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법 위에 존재하면서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면서 "이제 새로운 대통령은 법 밑에 있으면서 국법을 잘 지키고 또 잘못된 정치인은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정치인들을 성토했다.

김씨는 또 "승객들 대다수가 노무현 후보를 이야기한다. 물론 노 후보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면서 "이번에 전라도 출신 후보가 나오지 않은 것은 잘 된 일이며 전라도가 혜택이 없어도 젊은 대통령이 뽑혀 망국병인 지역감정을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두희(40・여수시 중흥동)씨는 16일 "노무현 후보가 전남을 찾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전남에서 열띤 지지분위기가 나타날 경우 영남의 유권자들을 자극해 또 다시 지역감정이 선거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책과 철학보다는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지지하는 낙후된 선거풍토는 이번 대선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한나라당 두 자리가 목표, 민노당은 제1야당 차지에 자신감 보여@IMG4@광양시 공무원 이충재(34・공무원노조 전남본부 정책기획단장)씨는 16일 "반(反) 이회창 정서가 강하고 큰 흐름은 친 노무현 분위기이다"면서 "공무원 정치세력화를 위해 권영길 후보를 지지해야한다는 당위성이 간부들 중심으로 퍼지고 있지만 노 후보에 대한 표 잠식 우려가 커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걸림돌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씨는 지방선거에서는 공무원의 영향이 작용하지만 대선에서는 전무한 상태다면서 "대체로 차분한 분위기이며 선거업무를 준비하는 정도가 선거와 관련된 모습이다"며 "총선 등을 비롯한 향후 선거에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많은 무게를 두고 공무원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한나라당 전남도지부당 김영돈(48) 부국장은 같은 날 "이번 대선의 목표는 두 자리 득표가 목표이며 최소한 97년 대선(3.1%)보다 배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회창 후보가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연고와 외갓집이 전남이라는 점 그리고, 정치보복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적극 알리고 있다"고 말했지만 반(反) 이회창에 대한 밑바닥 정서에는 속수무책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민주당 전남선거대책본부 김치회(60) 사무처장은 같은 날, 중앙당의 지원은 일체 없다면서 오히려 돼지저금통 등을 모아 중앙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사무처장은 "전남지역의 최대목표는 기권 방지와 젊은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참여이다"면서 "선거분위기는 차분하지만 내부적 열기와 응집력은 97년대선 때보다 오히려 높은 것 같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 놓았다.

민노당 전남선거대책본부 정영섭(37) 사무처장은 16일 "전남은 노무현 후보 지지와 반(反) 이회창 분위기에 쏠려 민노당뿐만 아니라 각 당의 선거운동이 무의미할 정도로 차분하다"면서 "진보정당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민족・민주 운동세력이 어디에 표를 찍느냐 정도가 관심이며 지난 지방선거처럼 민노당이 한나라당을 앞선 지지율로 제1야당이 될 것이 확실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대선 나흘 앞둔 전남의 대선 민심은 차분하다. 그리고 밑바닥에는 민주당에 대한 전통적인 지지분위기가 역력하다. 하지만 지난 수 십 년 동안 DJ에 대한 사랑과 소외된 한을 선거를 통해 폭발시켰던 전남의 유권자들은 지역색에 의한 투표보다는 새로운 정치와 국가발전을 책임질 후보 선택에 무게를 두는 모습 또한 나타나고 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