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쓰는 편지

이종찬 2002. 11. 4.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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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모두"여보세요?""지금 빨리 내려오소. 아버지께서 곧 돌아가실 것 같소""아, 예. 알겠습니다."2002년 10월 26일 새벽 5시 30분, 이 시간에 무슨 전화? 혹시... 그랬습니다. 부산00병원에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동생과 함께 밤샘을 하고 있었던 큰형수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설마, 설마했던 바로 그 전화였습니다. 이윽고 제가 마악 고양이 세수를 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였습니다.

"병원까지 오려면 시간이 너무 늦으니까 창원 집으로 바로 오소.""아, 예""...만약 집에 아무도 없으면 000병원으로 오소. 아무래도..."아! 아버지~이제 정녕 그렇게 가시는 겁니까.2002년 10월 26일 오전 7시 38분. 저희 오남매의 아버지께서는 끝내 부산00병원에서 그 질긴 목숨의 끈을 놓고 말았습니다. 1991년 6월, 위암에 걸린 어머니께서 57세의 짧은 연세로 바람처럼 훠얼훨 날아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지 꼭 11년만의 일입니다.

남들은 아버지께서 75세를 사셨으니 호상이라고 말하지만 저희들이 보기엔 호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의 아버지께서는 나이 차가 7살이 나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3~4년 뒤에 그만 치매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실제로 사신 이 세상의 삶은 66~7세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오남매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큰형 집으로 모시려 했습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이미 늦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더러 곧바로 창원 000병원으로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불효자... 천하의 이런 불효자도 없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 오남매 중 유일하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임종을 끝내 지켜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큰형 말처럼 저는 부모님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할 팔자를 타고 태어났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서울에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이른 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 000병원에 들렀다가 큰형 집에 마악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렇게 저를 기다리시다가 마악 10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가시는 날은 제가 경주에서 부산행 버스를 타고 마악 언양 근처를 지나갈 때였습니다.

"푸름이 아빠...""으응...""방금 아버님께서... 돌아... 가셨어...요""......"눈물 묻은 아내의 전화... 않았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는 꽃향유가 보랏빛 눈빛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버지의 상여를 바라보며 끝내 보랏빛 눈물을 툭, 툭, 떨구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저희 오남매가 어머니 돌아가신 뒤부터 11년 동안이나 다녔던 논둑길입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찾으려 해도 잘 보이지 않았던, 어릴 때 가끔 아버지께서 베어온 소풀 속에서 흔히 보았던 그 보랏빛 꽃향유가 오늘따라 왜 저리도 많이 피어나고 있는지... 어머니 산소 가는 길에 언제부터 저 꽃향유가 꽃밭을 이루고 있었는지는...4일장을 치룬 아버지 가시는 날,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창원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더없이 푸르고 맑기만 합니다. 저희들은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반쯤 엎드려 "에고~ 에고~" 곡을 하며 어머니 곁으로 가시는 아버지 상여를 뒤따랐습니다. 그때 그 길목 곳곳에 피어난 꽃, 그 보랏빛 눈물방울을 툭, 툭 떨구고 있는 그 꽃이 꽃향유였습니다.

@IMG2@아버지를 어머니 곁에 묻고, 지관의 말처럼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세 바퀴 돈 뒤 돌아온 그날 저녁, 큰형 집에서 오남매와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초우제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재우제, 삼우제를 지낸 뒤 저희들은 다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리도 찬란하게 떠올랐습니다. 연푸른 안개가 덮힌 들판에서는 수확을 마친 빈 논에 줄지어 서 있는 벼 밑둥이 꺼이꺼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짚빛으로 변해가는 나락에 맺힌 이슬이 찬란한 햇살을 받아 반짝, 눈물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잎사귀 몇 개 달랑 매단 감나무가 피빛으로 잘 익은 감홍시 하나를 툭, 떨구고 있습니다.

오남매와 일가친척들이 탈상을 하며 마지막으로 "에고~ 에고~" 곡을 하는 시간, 갑자기 묘지 아래 숲에서 큰나무와 큰나무가 서로 부대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끄르르륵, 하는 그 소리는 청설모가 우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티없이 맑은 하늘에선 청둥오리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철새들이 브이 자를 그리며 떼를 지어 주남저수지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에고~ 에고~"시월의 마지막 날, 저희들은 마침내 아버지의 혼백을 아버지의 무덤 왼편에 묻고 탈상을 했습니다. "에고~ 에고~ 에고..."저희들은, 아니 아버지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제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구 치며 환히 웃던 아버지의 웃음도, 농약에 취해 쓰러진 날, 하룻밤 얼음찜질로도 큰기침 한번으로 일어나 어깨에 삽을 메고 논으로 나가시던 아버지의 그 긴 그림자도...이제 저희들은 아버지께서 남기신 사진을 바라보며 오래 오래 아버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저희들의 가슴에 묻었던 것처럼 아버지도 저희들의 가슴 속 깊숙이 묻을 것입니다.

아버지! 뒤돌아보지 마시고 그렇게 가십시오. 이승의 얽힌 모든 일들은 저희들에게 모두 맡겨두고 그냥 그렇게 저 철새처럼 훨훨 날아가십시오. 11년전부터 기다리시던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하실 것입니다.

"에고~ 에고~ 에고..."아버지.. 이젠 뒤돌아보지 마시고 그렇게 잘 가십시오."에고~ 에고~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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