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시 32 - 백석의 < 박각시 오는 저녁 >

김영환 2002. 10. 1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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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콩밥에 가지 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집은 안팎 문을 횅 하니 열젖기고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다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돌우래며 팟중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늘 밤이 된다.

- <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이 한여름 밤. 하느님은 초롱초롱한 하늘의 별, 그 숫자만큼이나 소담스러운 개체들을 지상에 쏟아내려 주셨습니다.

- 돌콩. 자귀풀. 상사화. 칠면초. 수크렁. 골무꽃. 강아지풀. 칼퀴망종화. 약모밀. 큰까치수염. 끈끈이대나무풀. 흰바위초. 금불초. 둥근이질풀. 흰송이풀. ....- 가락지나비. 시골처녀나비. 알락방울벌레. 애남가뢰. 썩덩나무노린재. 애뀌두라미. 알락뀌뚜라미. 줄베짱이. 긴꼬리. 금테줄배벌. 물땡댕이. 항라사마귀. ....그렇게 마냥 받고서만 깊어가는 평북 정주(定州) 땅.그 한여름 밤.정중동(靜中動)이- 바가지꽃에 박각시가 주락시가 붕붕 날아들고돌우래가 팟중이 들이 산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대충 당콩밥을 가지 냉국에 말아서 먹고 나서인간들은 안팎문을 휑하니 열어젖히고모두 마을 뒷산 야트막한 등성이에 올라 멍석자리를 펴고바람을 쐰다.

풀밭에는 하이얀 다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이윽하기를 기다려돌우래며 팟중이 들이 울어대는 것이 아직 산골 초저녁이다.

이리하여 하늘에는 무수히 별들이 마당에 늘어 놓은 잔콩 같고이윽고 강낭밭에는 이슬이 비 오듯 초롱초롱 맺는 한밤이 된다.

- 꾸밈 하나 없는 일제(日常).산골의 그냥 이대로인한여름 밤.무위(無爲)!앗아간 내 꿈이다.

그렇지만당콩밥바가지꽃박각주락시한불돌우래팟중이아니고서는 노장(老莊)이, 시(詩)가, 정주(定州) 땅의 백석(白石)도 아니지 않은가.참으로 신기(神奇)한 것이- 농부가 흙을 먹고 사는 듯이시인의 토양도 흙에 뒹구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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