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마다 밥 퍼주는 사람들

박성태 2002. 10. 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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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시인 김지하는 밥을 일컬어 "밥은 하늘이다"라고 일찍이 말한 적이 있다. 생명의 원천이자 생명의 끈이기도 한 밥의 의미는 때론 친구가 되고 넉넉한 대화가 되기도 한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가 되면 전남 여수시 여서동 여문공원에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밥퍼주는 사람들을 기다린다. 이들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한끼 식사보다 한끼로 인해 친구를 만나고 넉넉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다. 이들에게 밥은 친구이자 대화다.

우연히 병원을 갔다가 친구 소개로 나오게 됐다는 편동윤(87, 여수시 경남아파트)씨는 "점심을 얼마나 정성껏 해오는 지 모른다"며 "나는 네 번 나왔는데 친구도 많이 사귀게 됐다"고 흐뭇해 했다.

@IMG2@이 곳을 찾는 노인 중 김두엽(여수시 부영아파트)씨는 99살의 최고령이다. 지팡이를 간신이 짚고 이 곳을 찾는 김 할머니는 "귀도 멀고 눈도 멀어 움직이기가 힘들지만 운동삼아 매주 빠지지 않고 나온다"며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들 숫자가 적어 같이 놀 수가 없다고 푸념을 하는 할머니, 날씨가 추워지면 모일 수가 없으니 노인당이라도 지어주면 좋겠다는 할머니, 버스를 내주면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할텐데라며 아쉬워하는 할아버지 등 이런 저런 얘기꽃이 즐겁기만 하다.

(사)한국BBS여수지회(김욱성 회장・동성공업사 대표) 회원 36명이 회비를 모아 매주 수요일 독거노인들을 위해 한끼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초부터이다.

태풍 "루사"가 들이닥친 날을 제외하곤 단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소리없이 봉사를 해온 이들은 그저 봉사하는 일이 재밌어 이제 안 하면 뭔가 허전함을 느낀다고들 한다. 회원들에 따르면 "이상하게도 비가 오다가도 이 날만 되면 비가 오지 않는다"며 한 주도 거르지 않았던 배경을 설명했다.

@IMG3@2일 이들이 준비해온 식사 메뉴는 비빔밥. 매주 식사를 준비하는 이인소(45)씨는 이 일이 "할수록 재밌다"고 대답한다. 봉사가 재밌다니 쉽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봉사를 해본 사람들만이 느끼는 희열이 있다고 한다. 어쩌면 봉사는 "아름다운 중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매주 수요일은 약속이 없는 날로 정하고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는 이씨는 "여기 오시는 분들이 못살아서 오시는 건 아니다"며 "밥 한끼 드신 노인들이 고맙다고 10번씩이나 인사를 할 때는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한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왔는데 우리 엄마가 이렇게 자랑스러운 일을 할 줄 몰랐다며 칭찬을 해줬다"며 "좀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독거노인들까지 대접을 하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고 덧붙였다.

이 날은 특별히 세계박람회 여수유치위원회 김영현 부장과 여수시 지역경제과 정학근 과장도 특별 봉사 회원으로 참석해 밥퍼주는 일을 거들어 눈길을 끌었다.

@IMG4@BBS(big brothers sisters) 여수지회는 설립 당시 경찰 예산으로 구두닦이 소년들을 위해 간이구두방을 차려주는 일부터 시작해 지금은 결식아동과 등록금을 못내는 소년소녀 가장 20여명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일로 봉사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여수에서 손꼽히는 부자로 알려진 김욱성(동성공업사 대표) 회장의 참여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한 주도 쉬지 않고 이 일을 챙기고 직접 설거지까지 도맡아 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는 "아버님 이름으로 봉사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한다"며 "공장이 있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BBS여수지회가 이 일을 시작할때는 20여명의 노인들이 참석했지만 지금은 매주 100여명이 넘는 노인들이 참석하고 있다. 다만 날씨가 추워지면 노인분들이 모이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지회는 실내 장소를 물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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