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능젱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세형 2002. 8. 3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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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아직도 경제발전의 뛰어난 지도자인지 개발독재로 우리나라의 민주발전을 지연시킨 장본인인지를 놓고 평가가 엇갈리는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한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때. 그 때까지도 우리 고향 즘터에는 춘궁기가 계속되고 있었고, 보릿고개라는 말이 어린 나의 귀에 심심치않게 들렸다.

쌀이 바닥난 건 이미 오래고, 겨우내 점심을 해결해주던 고구마도 떨어지고, 어렵게 어렵게 보리타작을 기다렸다가 끼니거리가 해결되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네 집, 다섯 집이 모여 보리개떡이나 쑥버무리로 점심도시락을 싸서 오두리 앞바다로 "그이"(게의 충청도 발음-"그" 와 "이" 음이 거의 동시에 나오도록 빨리 발음하여야 한다. 굳이 한 글자로 표현하면 "긔" 라고 할까?)를 잡으러 가곤 하였다.

물론 아무 때나 "그이"를 잡으러 가는 것이 아니고,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그이"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사리(사전적인 의미로는 달과 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이게 되어 밀물과 썰물의 차가 최대가 되는 것, 또는 그 시기를 의미) 때 가게 되는데, 운 좋게도 일요일이나 공휴일이 이 시기와 맞아떨어지는 때면 학교에 다니던 꼬맹이들도 엄마를 따라나서곤 하였다.

일요일이나 공휴일이라고 늦장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어머니를 따라나서, 냇물을 건너고, 산을 넘어 열심히 걸으면, 아침 젓밥 때쯤에(오전 10시쯤) 오두리 앞바다에 도착하였다.

벌써 바닷물은 저 만치 물러나 있고, 바다와 바로 접해 있어서 바닷물에 깎인 산밑둥이의 바위틈새로는 이름 모를 여러 종류의 "그이" 와 작은 바다생물들이 기어다니거나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놀다가, 예기치 않은 침입자에 놀라 바위틈새로 급히 몸을 숨긴다.

나무그늘아래 적당한 곳에 도시락을 모아놓고, 바로 "그이"를 잡기 시작하는데, 그 때 우리가 주로 잡았던 "그이"는 바로 "능젱이" 라고 부르는 갯벌 속에 살던 게였다.

갯벌 속에는 능젱이 외에도 껍질이 단단하고 은회색 빛을 띤 참게, 본체(?)보다도 훨씬 크고 위용 있는 붉은색 집게다리를 자랑하던 황발이(어린 내가 힘들게 먼길을 걸어 오두리 앞바다까지 따라 간 데는, 바로 이 황발이를 잡아 가지고 놀려는 속셈도 꽤 작용하였다), 등딱지가 둥그스름하고 다리가 좀더 롱다리였던 방게 등이 살고 있었는데, 능젱이가 비록 색깔이 검고 생김새는 제일 수수했지만, 개체수가 제일 많았고, 잡기도 쉬웠을 뿐 아니라(황발이나 참게를 잡으려고 섣불리 덤볐다가는, 날카롭고 힘센 집게 발가락에 손가락을 물리기 십상이었다), 껍질이 비교적 부드러워 게장을 담갔다가 통째로 씹어 먹기에는(너무 잔인한가?)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능젱이를 잡아 담기 위한 구럭을 하나씩 들고 갯벌에 들어서면, 눈 앞에 펼쳐진 넓은 갯벌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능젱이들이 기어다니다가 사람이 다가가면 구멍으로 재빨리 숨어버릴 뿐만 아니라, 갯벌이 순 진흙이어서 발목까지 푹푹 빠지기 때문에 도저히 기어가는 능젱이를 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밖에 나와 있던 게를 주시하며 다가가 보면, 수많은 게구멍들이 흙이 덮인 채 몰려있어서 어느 구멍으로 들어갔는지 헛갈리기 십상이었다.

따라서 능젱이를 잡으려면 저 앞에 보이는 능젱이들은 다 무시하고, 그저 발 밑에 게구멍마다 손가락을 쑥 넣어보면 뭔가 딱딱한 감촉의 조약돌 같은 느낌이 드는 물체가 손끝에 걸리는데, 그것이 바로 다리를 모아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능젱이인 것이다.

손끝에 게가 걸릴 때의 느낌이란, 아마도(나는 낚시를 잘 안하기 때문에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낚시꾼들이 고기가 낚시 바늘에 걸렸을 때 느끼는 손맛이란 것이 이런 맛일 것이다.

이렇게 한 두어 시간 정신없이 능젱이를 잡다보면, 어느새 어머니가 점심먹자고 부르신다. 손발은 물론 얼굴까지 진흙투성이로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먹는 보리밥 도시락과 개떡은, 세상의 어느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은 꿀맛 같은 점심식사였다.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쉴 틈도 없이 다시 능젱이를 잡기 위해 갯벌로 들어가는데, 두세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이 들어오기 때문에 쉴 틈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물이 들어올 때까지, 가끔 아픈 허리를 펴고 하늘을 쳐다보며 능젱이를 잡고 나면, 어느새 구럭에는 검은 능젱이들이 가득 차게 된다. 들어온 바닷물에 구럭 채 담가 몇 번 흔들어 씻은 다음, 아픈 다리를 끌고 집에 돌아오면,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려 넘어가곤 하였다.

이렇게 잡은 능젱이는, 일부는 그날 저녁에 당장 국을 끓여 먹고, 나머지는 간장에 담가두고 여름내내 가난한 농촌 마을 사람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밑반찬의 역할을 다하였고, 게를 담갔던 간장은 가을이 지나 초겨울에 들어서면, 김장하고 남은 우거지와 호박을 버무려 게국지를 만들어, 겨우내 아침밥상에 구수한 게국지찌개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두리 앞 바다의 갯벌은 70년대 말에 정주영씨가 서산 앞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들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 서산 A지구 방조제 중간에는, 물막이 공사 막바지에 물살이 세서 공사에 어려움을 겪자, 정주영씨가 폐유조선을 가져다 중간을 막아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쳤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서 있는데, 볼 때마다 씁쓸하고 안타깝기가 한이 없을 뿐이다.

지금도 마을 앞으로 난 서해안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꼬리를 물고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어른들은 "허... 오두리 앞바다에 능젱이처럼 많기도 하다"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저 앞에서 두 눈을 곧추 세우고 옆으로 슬슬슬 기다가, 살금살금 다가가면, 어느 순간 일제히 구멍 속으로 들어가 재빠르게 구멍 위를 흙으로 덮어버리던... 오두리 앞바다의 그 많던 능젱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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