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납폐함 문화 개선돼야

윤도균 2002. 8. 29.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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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아들만 둘을 두었다. 이런 나를 잘아는 사람들은 욕심도 많다느니 얼마나 좋으냐느니 또는 아들만 둘 보다는 딸이 하나 있는 것이 났다느니 키우는데는 딸이 더좋고 믿음으로는 그래도 아들이 제일 이라느니 하며 우리 가족의 구성원 문제에 대하여 호감을 보인다. 하지만 자식의 성별을 부모가 임의로 선택하여 낳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시대의 실정이고 또한 윤리이다.

그런데 막상 두 아들을 키우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솔직히 사내 아이들만 둘을 키운다는 것이 아내의 입장에서는 여자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보다 힘이 들다는 것도 잘알고 있다. 우선 여자 아이를 키우는 동생네 집만 비교를 하여 보아도 여자 애들은 초등학교 들어갈 연령만 되어도 웬만한 일은 엄마를 도와 제법 심부름도 잘한다. 나의 욕심 같아서는 어디 사회 복지기관 같은 곳에서 딸 아이를 입양이라도하여 키우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였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엄마인 아내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아내의 입장에서야 뻔히 안된다고 할 것을 잘아는 나로서는 꿈 정도로 만족을 해야만 했다.

어렸을 적이나 군 복무를 마친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우리집 아이들은 한결같이 밖에서 집에 들어오면 옷을 벗어 사방팔방에 던져 늘어놓는다. 그렇게 말썽만 부리던 두 아들놈들이 군입대를 하였을때는 평소에 말로는 골백번도 넘게 죽일놈 살릴놈 하며 아들들의 무정함에 대하여 원망하던 엄마였는데도 큰 아들을 의정부 306보충대에, 또 작은 아들을 논산 훈련소에 입소시키고 돌아오던 날은 아내도 후유증으로 고생을 했다.

그런 큰 아들은 이미 2000.11.5일 결혼식까지 올렸다. 아들아이의 결혼이 내 인생으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치르게 되는 큰일이 되어 매사가 생소하고 어렵게 생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신부댁에 보내게 될 납폐함(納弊函)을 준비하는 일이 가장 쉽지가 않었다. 물론 금전적인 액수 여하에 따라 신부에게 본낼 패물의 크기 목록이 결정이 되고 이를 기준으로 사돈댁에서 납폐함을 잘받았다 못받았다는 평가를 심판받게 되게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상의를 하여 우리가정 경제 사정에 걸맞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 패물을 정성들여 준비하였다. 이렇게 사돈댁에 보낼 납폐함 내용물 준비를 모두 마치고나니 마치 아들 아이의 결혼식을 다 치른듯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납폐함 준비를 마치고나니 이제 남은 것은 납폐함에 넣을 혼서지(婚書紙) 글을 쓰는 일이었다. 다행히 나는 한학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고 또한 취미로 십여년 이상 서예 활동을 하다보니 뜻하지 않게 결혼을 앞둔 지인들의 혼서지 글을 많이 대필하여 준 경험이 있었다. 문제는 혼서지 글 내용의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옛부터 내려오는 풍습이기 때문에 쓴다는 것이다.

내가 혼서지를 쓰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자니 아내가 "대장장이 집에 식칼이 논다더니 영락없는 그 격"이라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혼서지를 쓰지 않고 잠들어서 인지 땀만 흘리다가 새벽 4시경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둘러 화선지와 붓을 꺼내놓고 벼루에 먹을 갈아 "새 사돈어른 두분께"라는 타이틀의 제목을 붙인 편지 형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뜻도 모르는 맹목적 혼서지 보다는 격식을 떠나 이해하기 쉬운 편지로 며느리를 얻는 나의 솔직한 심정과 생각 그리고 나름대로의 약속의 글을 올리기 위하여 필을 들었으니 이해를 하시고 받아 주시라는 식의 글을 말이다.

결혼하는 아이들의 과정을 사랑과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성원을 해주며 행복을 빌어주고 울타리가 되어주자고 결론을 맺어 봉인을 하여 납폐함에 깊숙히 넣었다. 아들은 신세대 함진애비 패거리 문화가 별로 좋아보이지 않았는지 굳이 신랑인 저 혼자 납폐함을 챙겨 가지고 사돈댁으로 떠나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나홀로 납폐함을 가지고간 아들이 돌아와서는 하는 말이 "아버지 함에다 뭐라고 글을 쓰셨는데 장모님께서 가족들 앞에서 글을 읽으시다가 아파트 베란다로 나가셔서 한참을 울고 들어오셔서 아버님에게 고맙다고 말씀을 드리랬다고 장모님이 전하셨다"는 말을 전한다.

아들아이를 통해서 안사돈 어른께서 졸필이지만 감명을 받으셨다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일단은 내가 늘 생각하는 풍습으로 전해오는 혼서 글 전달 관습에 결례를 무릅쓰고 내가 나름대로 생각하여 시도한 혼서 편지 전달 방법이 어느 정도는 현시대 문화에 조화가 되고 있는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닳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한후 나에게 혼서지 글을 써달라고 찿아오는 절친한 사람들에게 내용이나 뜻도 모르는 형식의 혼서지 글을 맹목적으로 써서 전하지말고 사돈 당사자들에게 진솔함이 담긴 편지를 써서 납폐함에 넣어 보내라고 권유를 하니 지금까지 나의 권유를 듣고 그렇게 실행한 사람들의 숫자만도 수십명에 달하는데 이들중 대부분이 후에 나를 찿어와서 인사를 나누며 후사를 했다.

더 늦기전 신세대 구세대의 갈림이 교차하는 싯점의 현대시대에서 개선할 것은 과감하게 현실에 부합하게 개선을 하여 장려 보급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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