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의 가치 입증한다는 미친 섭외력의 비밀

이 영상을 보라. 2000년대 등장한 유명 광고인데 전 국민이 위 건강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이 사람은 배리 마셜 박사다.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엔 생소했던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위암을 유발한다는 걸 입증해 실제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한 이 유명 석학이 내년에 위 건강을 주제로 강의하는 모습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이름값이 엄청난 세계적 지식인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 EBS ‘위대한 수업’을 통해서다. 올해가 벌써 시즌3인데 노벨상 수상자급을 100명이나 섭외해 진정한 수신료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섭외 비결이 뭘까. 유튜브 댓글로 “EBS  위대한 수업에 나오는 유명 학자들은 어떻게 섭외했는지 궁금하다”는 의뢰가 들어와 ‘위대한 수업’ 제작을 총괄하는 허성호 피디에게 전화했다. 

최고의 위대한 생각들을 한 곳에 모아보자는 야심찬 기획의도도 결국 실현되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첫 시작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당연히 제작진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겠지만 이와 별개로 출연진 중에서 한 사람을 주목해야 한다. 시즌1에서 국제무역전쟁을 주제로 출연했던 비노드 아가왈 미국 UC버클리대 교수

허성호 피디는 15년 전인 대학 시절 이 교수가 한국에 왔을 때 배드민턴을 함께 쳤던 놀라운 인연이 있다. 아가왈 교수가 배드민턴 매니아였기 때문인데 당시에 학내 교양배드민턴 수업을 활용했다고 한다. 처음 연락은 허성호 피디의 연세대 은사이자 아가왈 교수를 잘 아는 구민교 서울대 교수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허성호 EBS 피디
"선생님 옛날에 한국 오셨을 때 배드민턴 같이 쳐드렸던 학생 기억나시냐고 (아가왈 교수가) 아~ 기억나지! 걔가 지금 피디가 됐는데 이런 프로그램한대요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랬더니 도와야지! 하면서..."

위대한 수업이 알려질 때 담당 피디가 아가왈 교수와 테니스를 쳐서 섭외에 성공했다는 글도 있는데 이건 배드민턴을 착각한 잘못된 정보. 그는 태어나서 테니스를 쳐본 적은 없다고 한다.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이렇게 이어질 거라곤 생각 못했겠지만 15년전 당시엔 아가왈 교수에게 특별한 한국 가이드 역할을 했다고 한다. 

허성호 EBS 피디
"(외교부) 자문 끝나고 한국에 과자 맛있는 거 뭐 있냐 물어보셔서 구멍가게 가서 새우깡 빼빼로 대표적인 한국과자 마구마구 골라드렸던 추억이 있습니다"

극적으로 아가왈 교수와 연결된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인맥 굴리기가 시작됐다. 아가왈 교수가 연결해준 사람은 ‘소프트파워’로 유명한 국제정치학계 거목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교수, 역사학계 탑티어인 폴 케네디 미국 예일대 교수였다. 이들 모두 시즌 1 출연자들인데 아가왈 교수의 연락 한방에 해결됐다고 한다.

허성호 EBS 피디
"다른 분들에 비해서 출연료를 좀더 높게 책정했더니 아가왈 교수님이 아잇! 다 균일가로! 싸게 맞추라고 해서 출연료도 깎아버리고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출연하는 데 도움 주셨습니다"

2010년 EBS에 입사한 허성호 피디는 원래 ‘다큐프라임’을 오래 제작한 역사전문 피디이기도 하다. 다큐프라임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해외 인적 네트워크가 이번 위대한 수업 제작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해외 유명인사들을 섭외한다는 것 자체는 피를 말리는 일이다. 허성호 피디는 이번 시즌을 시작하기 두달 전 독일 촬영을 하고 있었을 때는 섭외 연락 때문에 독일 시간과 미국 동부, 미국 서부, 한국까지 4개의 시간대를 모두 감안해야해서 잠을 제대로 못잤다고 한다. 

허성호 EBS 피디
"바로바로 답해주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시차 때문에) 24시간 이상 지연될 수 있습니다. 하루에 석학들한테 오는 메일이 저도 하루에 100개가 넘는데 그분들은 몇백개가 올 거기 때문에 이메일이 묻혀버리면 제가 연락을 안한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벌어져서..."

시즌2에 나온 재레드 다이아몬드 UCLA 교수는 ‘총 균 쇠’의 저자로 유명한데 이 책은 베스트셀러지만 75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어서 다 읽은 사람이 거의 없기로도 유명하다. 암튼 다이아몬드 교수는 인류 문명 발전의 3대 키워드로 세균을 제시한 학자답게(?) 제작진이 방호복을 입는 조건으로 그의 자택 마당에서 하는 촬영만 허락했다고 한다. 해외 석학들의 경우 고령자가 많고 당시엔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무더운 여름에 방호복을 입고 촬영한다는 자체가 극한직업이라고 부를 만하다. 

허성호 피디에게 휴가 얘길 조심스럽게 꺼냈는데 잠시 망설이더니...

허성호 EBS 피디
"최근에 지난주 첫 휴가 냈는데 절친한 동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초상집 지키고 운구하느라고 그때 휴가 처음 냈습니다. 정말 뭐..험한 월급쟁이 생활입니다.."

체력의 한계와 위대한 생각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겠다는 사명감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제작진의 노력 덕분에 시청자들은 유명한 석학들의 대중강연을 맘껏 누릴 수 있게 됐는데 ‘오래된 미래’에서 히말라야산맥의 라다크, 최근엔 기안84도 여행했던 그곳에서 세계화의 문제점을 돌아보면서 로컬의 역할을 강조했던 헬레나 호지 대표, 그리고 영화 ‘아바타: 물의 길’로 올해초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넘겼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처럼 각 분야 권위자들이 강연자로 등장한다. 

허성호 피디는 이번 시즌이 앞으로 위대한 수업 시즌10까지 가느냐의 분수령이라고 했다. 시즌3에서는 특히 노벨상 수상자 라인업으로도 알려졌는데 이 중에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인트로에 나왔던 배리 마셜 교수도 포함돼있다. 위대한 수업에서 만나는 위에 대한 강의는 어떨까.

허성호 EBS 피디
"배리 마셜 교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라는 균 발견으로 (노벨)생리의학상 받으신 분이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위 건강을 찾을 수 있는지 한국은 또 위염이나 위암 유병률도 높은데 위 건강에 대해 강의를 하시게 될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