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 때문에 황제가 미술관까지 지었다?! 러시아 최고 명작의 숨겨진 이야기!-(1)

[김희은의 울림 깊은 러시아 예술이야기]

19세기 러시아의 '제 2 르네상스'

“러시아 미술사상 가장 뛰어나고 훌륭한 러시아 그림이며, 생생한 표현력이 최고인 작품이다. 특히 예술을 향한 작가의 순교자적인 자세는 모두가 본받아 마땅하다”

러시아 최고 화가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일리야 레핀이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러시아 미술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으며 한 말이다.

그가 지목한 알렉산드르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18세기 초상화 시대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작이며 명작이다. 솔직히 러시아 그림의 역사는 이 작품 탄생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서유럽 나라들과는 달리 러시아 회화 역사는 아주 짧다. 1700년대 초반 표트르 대제의 대개혁과 함께 러시아 미술계도 발전하기 시작,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300~400년 정도의 짧은 미술사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이전 러시아 미술은 러시아 이콘화나 공예품 제작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또한 예술 창작의 차원보다는 신앙 숭배와 기도 대상으로서의 활동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미술은 20세기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을 탄생시켜 현대 추상 미술의 뿌리가 되었으며 칸딘스키와 샤갈의 예술적 창조는 색채 혁명의 원천이 되었다. 러시아 미술이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반증이 되는 부분이다. 그 시작에 알렉산드르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있다 할 것이다.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트레챠코프 미술관에 전시된 모습. 중앙에 원작이 걸려 있고 양쪽 벽에 습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두 번 놀라게 되는 그림

이바노프의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우선 가로 7m, 세로 6m 크기의 대작이 러시아 대표 박물관인 트레챠코프 미술관 한쪽 벽면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작품을 처음 소장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엄청난 크기의 그림을 걸기 위해 모스크바 루미얀체프 박물관을 새로 지어 전시했다. 훗날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으로 옮겨진 후에도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특별 전시홀을 증축한후 1932년부터 대중에게 선보였다 하니 작품의 위용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이 그림은 크기에 한 번 놀라고, 또 이 그림에 담겨 있는 스토리와 미술사적 위치를 알게 된 후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대작 중의 대작이다. 그만큼 러시아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며, 러시아 미술이 19, 20세기 폭발적 부흥을 일으키는 데 불꽃 같은 역할을 한 그림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르 이바노프(1806-1858),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 1837-1857년, 캔버스에 유채, 540 х 750, 트레챠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데카브리스트 반란, 그리고 지식인의 좌절

우선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데는 역사적 사건 하나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 대관식날 러시아 최초의 근대적 혁명인 <데카브리스트 반란>이 일어난다. 농노제 폐지를 목표로 귀족 출신의 청년 장교들이 전제 군주 정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으나 현실 장벽을 넘지 못한 채 거사는 실패했고, 보수 반동 정치를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일로 주동자 다섯 명이 공개 처형당하고 1,000여 명이 넘는 젊은 지식인들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혁명과 개혁의 불씨를 심는 계기가 된다. 러시아 대문호 푸시킨도 <데카브리스트 반란>에 대한 황제의 처사에 분노를 느끼며 「시베리아에 보낸다」라는 시를 썼다. 당시 이바노프와 그의 아버지 또한 데카브리스트 당원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순수한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희망이 처형과 유형으로 무참하게 짓밟히는 현실을 목도하며 깊이 좌절했다.

알렉산드르 안드레예비치 이바노프(1806~1858년)

발전과 개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러시아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이바노프는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군주정치의 압제 하에 태어난 나는 처형되는 형제들의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다. 대귀족들의 오만함과 고관들의 변덕스러움을 보았고, 주인의 부정행위에 대한 하인들의 불만을 항상 귀로 들었다. 어릴 적부터 세상의 온갖 추함에 놀랐으며, 결국 타인을 경계하여 믿지 않게 되었다…” -A.A. 이바노프의 생애와 편지 ,115쪽

시베리아에 보낸다
- 푸시킨
시베리아의 광산 저 깊숙한 곳에서
의연히 견디어 주게
참혹한 그대들의 노동도
드높은 사색의 노력도 헛되지 않을 것이네
불우하지만 지조 높은 애인도
어두운 지하에 숨어 있는 희망도
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나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은 오게 될 것이네
사랑과 우정은 그대들이 있는 곳까지
암울한 철문을 넘어 다다를 것이네
그대들 고역의 동굴에
내 자유의 목소리가 다다르듯이
무거운 쇠사슬에 떨어지고 감옥은 무너질 것이네
그리고 자유가 기꺼이 그대들을 입구에서 맞이하고
동지들도 그대들에게 검을 돌려줄 것이네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감옥에서 떡 굽는 자와 술 맡은 자에게 꿈을 이야기하는 요셉, 1827년, 178.5X213, 러시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완성한 작품

당시 《감옥에서 떡 굽는 자와 술 맡은 자에게 꿈을 이야기 하는 요셉》으로 미술 대전에서 금메달을 받은 이바노프는 황실의 후원으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면서도 참담한 조국의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황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그리기 시작한다. 참혹한 러시아를 구원해 줄 새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이바노프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실은 것이다.

이 작품 제작이 알려지자 이바노프는 국비 유학생으로서 자격 모두를 박탈당하고 미술 아카데미 교수였던 아버지조차 학교에서 쫓겨났다. 새 세상의 도래를 꿈꾸는 작가의 순수한 마음을 황실 전복에 대한 갈망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후 불순한 반정부 세력으로 낙인찍힌 이바노프는 고국으로 돌아올 수도 없었다. 극도로 불우한 생활로 연명해갔지만, 예술과 조국에 대한 자존심을 꺾을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머물렀던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그림과 관련된 습작 600여 점 이상을 그렸고, 마침내 대작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를 완성한다.

작가는 떠나도 위대함은 남는다

이바노프는 차르 니콜라이 1세 사후 2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만 고향 땅을 밟은 지 두 달 만에 콜레라에 걸려 1858년 세상을 떠난다. 작가는 살아 생전에 고국에서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는데, 이 그림은 이바노프가 세상을 떠난 후 경매에 부쳐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중 앞에 나타난 그리스도》는 니콜라이 1세의 아들인 알렉산드르 2세가 구매했다. 그가 대작을 걸기 위한 미술관을 따로 설립했다는 사실만 봐도 그림에 대한 황제의 강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가 그토록 핍박했던 작가의 그림을 아들이 주저없이 구입했다하니 예술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러시아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파벨 트레챠코프 또한 이 작품에 강한 애정을 보였지만, 황제에게 그림을 양보하고 자신은 이 그림의 습작들을 사들인다. 당시에는 그림이 그렇게 나뉘어 수집되었지만 1932년부터 현재까지 <트레챠코프 미술관>에는 원작과 습작이 함께 전시되어 그림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렇게 이바노프는 데카브리스 반란으로 수많은 지식인과 민중을 죽음으로 내모는 비참한 러시아, 더 이상 믿을 것이 없는 세상, 억압과 타락과 부패로 가득한 세상, 바로 그 모순의 땅으로 구원의 예수, 진리의 예수를 불러들인 것이다. 이 작품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희은은 20년 가까이 아트 딜러, 전시기획자,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러시아 그림 전문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중이다. 일반인들에게 그림 이야기를 전하는 도슨트 활동도 열심이다. 러시아 트레챠코프 국립 미술관과 푸쉬킨 박물관 전문 도슨트다. 저서로 <소곤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 이야기>가 있다. 유튜브 채널 <갤러리 까르찌나>를 운영하며, 러시아 예술의 한국 대중화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