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스마트폰에 내 합성 음란물이 있다면… [질문+]
노윤호 변호사의 기록
10대 파고든 딥페이크 성범죄
AI 기술이 바꿔 놓은 범죄 양상
피해자, 합성 음란물 확산 공포
2020년 법적 규제 마련했지만…
유포 목적 증명해야 처벌 가능
올해 9월 성폭력처벌법 개정
범죄 중대성 인식 자리 잡아야
# "어디에 올린 것도 아니고, 그냥 갖고만 있었는데 왜 문제인가요?"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해 합성 음란물을 만드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확산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에 익숙한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딥페이크 성범죄가 뿌리내리고 있다.
# 문제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과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합성 음란물을 유포하지 않고, 스마트폰에 저장만 해놓으면 범죄가 아닌 걸까.
기술의 발전이 범죄 양상을 바꿔놓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한 '딥페이크(deepfake) 성범죄'가 대표적이다. 최근 수년 새 딥페이크 성범죄가 불편한 이슈로 떠올랐지만 사실 이 문제는 '사이버 폭력'이란 개념이 등장했을 때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엔 포토샵 등 어설픈 기술로 조악한 합성 음란물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교묘한 합성 음란물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대상으로 삼던 합성 음란물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확산하는 이유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성 음란물이 텔레그램과 같은 SNS나 온라인 사이트로 유포되면서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실제인지 합성인지 알아채기 힘든 합성 음란물이 누구에게, 또 어디까지 유포될지 가늠할 수도 없다.
더 큰 문제는 딥페이크 성범죄가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10대 청소년을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다른 연령대보다 온라인 활동이 활발하고, 새로운 기술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청소년들이 딥페이크 성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관련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중학생 A는 절친인 B가 자리를 비운 사이, B의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었다. 그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자신의 SNS에 전송하려고 사진첩에 들어갔는데, 이상한 사진들이 가득했다. 놀란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려보니, 같은 학교 학생들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이 숱했다.
심지어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음란물도 있었다. 얼마 전 SNS에 올렸던 자신의 사진이 누군가의 나체사진과 합성돼 있었던 거다. A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B는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걸까….' 결국 A는 이 사실을 선생님에게 알렸고, 그렇게 B의 딥페이크 성범죄가 세상에 드러났다.
이 사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경찰청 조사 결과, 지난 9개월간(1월 1일~9월 25일) 딥페이크 성범죄로 검거된 피의자는 총 387명이었다. 이중 10대 피의자가 324명으로 전체의 83.7%에 달했다.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촉법소년'도 66명이나 됐다. 그 외 20대 50명(12.9%), 30대 9명(2.3%), 40대 2명(0.5%), 50대 이상 2명(0.5%) 등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이들은 딥페이크 성범죄에 빠져든 걸까. 가해 학생들을 상담해 보면 "호기심"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에 저장만 해놓은 것도 문제가 될지 몰랐다는 거다.
다소 뻔뻔한 대답을 내놓은 아이들도 있다. "피해자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SNS에 보라고 올려놓은 사진에서 얼굴만 가져다 사용한 건데 뭐가 문제인가.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
안타까운 점은 가해 학생을 훈육해야 할 부모 중에서도 "걸리지 않았다면 문제 되지 않았을 텐데, 학교에서 내린 징계가 과하다"고 억울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는 것만이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게 아니다. 타인의 나체가 마치 나의 신체인 것처럼 내 얼굴과 합성돼 불특정 다수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 보자. 더욱이 그 합성 음란물을 만든 사람이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면 어떨까.
앞선 사례의 중학생 A처럼 가해자에게 가까운 이에게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수치심과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보다 더 큰 공포는 자신을 대상으로 한 합성 음란물이 어디까지 유포됐을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합성 음란물을 만드는 게 범죄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딥페이크 성범죄가 증가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피해자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공감하지 못한 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거다.
이런 안일한 인식이 확산한 데엔 미비한 법 규정 탓도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을 마련한 건 4년 전인 2020년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에 따라 유포할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신체·음성을 성적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한 경우, 이런 합성물을 유포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은 범죄자들이 웃으면서 빠져나갈 만큼 구멍이 컸다. 합성 음란물을 제작했더라도 '유포할 목적이 없었거나' '유포하지 않고 제작·보관만 한 경우'엔 처벌할 규정이 없어서다.
실제로 이런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처벌을 피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딥페이크 성범죄 관련 처벌 규정이 생겼지만 최근 3년간 실제 처벌 건수(경찰청·조은희 의원실)가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에 그친 이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 9월 26일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을 강화한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점이다.
개정안에 따라 합성 음란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만 하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 재석 249인 중 241인이 찬성했을 만큼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덴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부도 딥페이크 성범죄를 근절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8월엔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아울러 '위장수사 확대' '피해자 신고 절차 개선' '피해자 지원 강화(합성물삭제·심리상담·법률·의료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범정부 종합대책을 10월까지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AI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는 지금 정부가 피해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들키지 않는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합성물을 내 휴대전화 속에만 저장해 놓아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호기심이나 장난이란 말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여서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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