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더 일해야 연금 준대” …거리 나와 불지르는 이나라 국민들

한재범 기자(jbhan@mk.co.kr) 2023. 3. 1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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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반대에도 연금 개혁 강행한 佛 정부
여야 막론하고 비난 폭주...“민주주의 위기”
재선 1년만에 레임덕 위기 처해
야권, 불신임 예고했지만 현실성은 낮아
[사진 = 연합뉴스]
연금 개혁안을 추진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야당과의 타협에 실패하자 결국 헌법 조항에 근거해 법안 강행처리라는 초강수를 뒀다. 국가 지도자의 ‘무덤’이라 불리는 연금 개혁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국민들의 반발에 역풍을 맞아 재선 1년 만에 레임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연금 수급을 시작하는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개정하는 연금 개혁안을 헌법 49조 3항에 근거해 하원의 표결 없이 통과시키로 결정했다. 이 조항은 정부가 긴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각료 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을 총리 책임 아래 의회 투표 없이 발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이 법안은 16일 오전 상원에서 통과됐다. 같은 날 오후 하원에서도 과반을 확보할 시 최종 통과될 예정이었다. 다만 하원 내 중도우파 공화당의 표 이탈이 우려돼 과반 확보가 불투명해졌고, 마크롱 대통령은 이에 하원 표결 생략이라는 긴급 타개책을 발표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거센 반발에도 연금 개혁안을 강행한 이유는 다가올 연금 재정 적자를 막기 위해서다. 정년 기준을 상향시키면 근로자들을 일터에 오래 두어 보험료를 더 많이 거둘 수 있다.

프랑스는 최근 출산율이 낮아지는 반면 기대수명은 오르는 등 연금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 또한 일명 ‘베이비부머’의 대거 은퇴로 연금 지급액이 늘어남에 따라 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프랑스 재정경제부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오는 2030년 연금 제도 적자는 135억유로(약 18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연금 제도를 고친다면 2030년 177억유로(약 24조원)의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패싱’을 단행함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여야 간 합의 도출을 포기해 법안의 절차적 정당성을 약화시켰는 비판이다.

2022년 대선 결선 투표에서 맞붙은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는 이날 “정부가 완전히 실패했다”며 마크롱 대통령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개혁을 지지했던 보수 공화당의 에릭 시오티 대표도 “정부의 이번 결정은 두말할 나위 없이 잘못됐다”며 “우린 지금 민주주의 위기 속에 있다”고 비판했다. 집권 여당 의원들 조차 공개적으로 정부를 저격했다. 집권당 르네상스의 에리크 보토렐 의원은 정부의 결정이 있고 나서 “실망과 분노 사이를 오가고 있다”고 밝혔다. 르네상스와 함께 집권당을 구성하는 민주운동의 에르완 발라낭트 의원도 트위터에 “우리는 의회의 표현을 존중하고 모두가 정치적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옳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마크롱 대통령은 남은 임기 내 의회로터 정책적 지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선에 성공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른바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블룸버그는 “마크롱은 프랑스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한 ‘인기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더욱 적대적인 입법 환경을 조성했다”라며 “향후 이민과 고용개혁 등 마크롱의 공약이 더 이상 실현가능하지 않을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야권은 내각 불신임 예고한 상태다. 불신임안이 하원에서 과반을 얻어 통과될 시 연금 개혁안은 취소되고 총리 등 내각은 총사퇴해야 한다. 우파 공화당이 반대 입장을 밝힌 만큼 내각 총사퇴의 현실성은 현재로선 낮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전했다. 다만 여야 간 갈등은 강대강 대치로 굳어져 향후 마크롱 정부의 개혁 추진을 위한 동력은 크게 약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정년과 연금수령 연령이 다른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정년에 퇴직하는 순간 연금을 수령하게 된다. 이런 프랑스에서 정년 연장은 곧 ‘더 오래 일하고 더 늦게 연금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거세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퇴직 이후의 삶을 중시하는 전통적 공감대도 작용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프랑스에서 노동이 은퇴 이후의 삶과 상쇄되는 ‘형벌’로 널리 간주된다고 지적하며 “많은 시민이 마크롱 대통령의 일방적인 행보를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여긴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저학력·육제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FT에 따르면 고학력 일반 사무직종은 노동시장에 비교적 늦게 진입한다. 또한 연금 100% 수령을 위한 최소 기여기간 42년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정년을 초과해서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동환경도 안정돼 정년을 넘어서도 계속 근무하려는 이들도 많다. 정년 연장이 큰 비용으로 다가올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반면 건설현장 인부, 환경미화원, 가게 점원 등 저학력·육체 노동자들은 비교적 일찍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만큼 빠른 은퇴를 보장해주고 연금 수령시기도 더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대다수의 육체 노동자들은 평균 수명이 짧은데다 60대에 이르러 각종 질병과 신체 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FT는 “이번 법안에는 조기 취업자에게 혜택을 더 주는 내용이 수정 반영됐다”면서도 “지금보다도 더 훨씬 세분화된 연금 지급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편 프랑스 전국 노동조합의 연금개혁 반대 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8차시위까지 걸친 시위를 조직해온 주요 8개 노동조합은 이날 제9차 시위를 오는 23일에 개최할 것을 예고했다. 철도공사(SNCF), 파리교통공사(RATP), 관제사 노조 등이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고 있어 수도 파리는 열차, 지하철·버스, 항공편 운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파리 쓰레기 수거업체 노조까지 파업에 동참하면서 시내 길거리에 쌓여있는 쓰레기는 약 7000t에 달한다고 파리시청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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