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의 노래가 품은 역사]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박정희 정권의 음영이 뚜렷이 교차했던 1969년. 독창적 창법과 섹시한 춤으로 가요계를 강타한 한 여가수가 나타났다.
그 이름은 김추자(金秋子). ‘가을 여자’다.
치마와 머리카락 길이조차 통제의 대상이던 그때 그 시절, 그녀는 ‘문화적 다이너마이트’ 노릇을 자임했다. 꽉 죄인 옷의 터질 듯한 곡선은 무척이나 뇌쇄적이고 관능적이고 도발적이었다.
광기까지 내비치는 김추자의 춤사위와 파격적인 의상은 50년이 훨씬 더 지난 요즘 기준으로 봐도 전위적 시도로 꼽힐 만하다.
김추자에게 춤과 노래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노래를 가르쳤던 작곡가 신중현은 “김추자는 움직이지 않으면 목소리가 안 나온다. 김추자는 몸에서 노래가 나온다. 김추자의 춤은 ‘소리를 내기 위한 율동’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정확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녀의 독특한 춤사위와 창법은 당대가 소화하기엔 너무나 앞서가고 있었다. 무릇 ‘전위’란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법.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공연을 펑크 내고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호출을 거부한 그의 일탈과 저항성은 가수 제명과 간첩설, 소주병 테러, 대마초 파동 등으로 이어지며 엄청난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학 1학년 때 ‘신중현 사단’ 합류
김추자는 1951년 1월 2일 춘천의 딸 부잣집(5자매) 막내로 태어났다. 김추자의 예술적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싹수’를 보였다. 그녀는 춘천여중, 춘천여고를 거쳐 1969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다. 원래는 미대를 가려고 했지만 미대 필기시험에 떨어지면서 연극영화학과로 선회했다고 한다.
활달한 성격에 운동, 노래, 무용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이던 그녀는 방송국 합창단과 무용학원, 노래학원 등을 다니며 ‘끼’를 가다듬었다. 운동에도 소질을 보여 강원도 배드민턴 대표선수와 기계체조 선수로 활동했다.
고교 비평준화 시절, 춘천여고는 강원도 지역의 여학생 수재들이 모이던 곳이었다. 김추자의 언니들도 사범대나 약대를 졸업했을 만큼 공부를 잘했다. 그녀는 공부, 노래, 춤, 운동까지 못하는 게 없었다. 게다가 춘천여고 응원단장까지 했으니 춘천시내 남자 고등학교에서 그녀의 인기는 단연 최고였다.
그녀는 “춘천고 미술선생님이 모델이 돼달라고 해서 몇 차례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남학생들이 유리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추자 왔다’라며 환호해 부끄러워 혼났다”라고 회고한다.
김추자는 1969년 대학 진학과 동시에 신중현 작곡․작사의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이 수록된 1집을 발표하며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김추자와 신중현의 인연은 그녀의 형부가 다리를 놨다. 김추자의 형부가 친한 사이였던 신중현의 매니저를 통해 처제를 신중현에게 소개했던 것이다. 김추자가 2007년 시사월간지 ‘신동아’ 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중현 선생님 매니저이던 맹승호 씨가 제 형부와 잘 아는 사이였는데, 그분 소개로 가게 됐어요. 그때 신 선생님은 최고의 전성기였기 때문에 대형 가수들과 작업하느라 매우 바빴어요. 그냥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는데 노래를 시키길래 불렀죠. 그 자리에선 별말씀이 없었는데 며칠 후 ‘늦기 전에’라는 곡을 툭 던져주셨어요. 기회가 그렇게 빨리 올 줄 몰랐죠. 선생님이 저를 무척 잘 본 모양이에요.”
타이틀곡 ‘늦기 전에’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을 정도로 대중문화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리고 당시 온 국민의 화두였던 월남전을 소재로 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친숙한 한국적 사운드로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받아온 명곡이 됐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사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 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 동생 반기며 그 품에 안겼네
모두 다 안겼네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1집 앨범의 빅히트로 단숨에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추자는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가수로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김추자의 등장은 ‘펄 시스터즈’와 더불어 한국 대중음악계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당시 이미자, 배호, 남진, 나훈아 등으로 대표되는 트로트와 최희준, 한명숙, 현미, 패티김 등으로 대표되는 스탠더드 팝 흐름의 가요계에 솔(soul)과 사이키델릭의 복합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여과 없이 드러낸 타이트한 의상과 힙을 현란하게 움직이는 인상적인 춤으로 비디오 시대의 개막을 이끌어낸 것이다. 미국의 ‘댄싱 퀸’ 마돈나보다 10년 앞선 대중가요의 전위였다.
패티김 대타로 부른 ‘님은 먼 곳에’ 빅히트
김추자는 데뷔곡인 ‘늦기 전에’ 이후 ‘님은 먼 곳에’, ‘봄비’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당시 최고급 담배였던 청자와 더불어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다.
젊은 층에겐 조관우의 리메이크 곡으로 더 유명한 ‘님은 먼 곳에’는 1969년부터 1970년 2월까지 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주제가로 만들어졌다. 김추자에 앞서 처음 이 곡을 부르기로 내정된 가수는 패티김이었다. 그런데 녹음 당일 패티김이 “이런 곡은 못 부르겠다”라고 거절하면서 김추자가 급하게 대타로 선정됐다.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갔네
님은 먼 곳에
'님은 먼 곳에' 등 히트곡을 부르는 김추자.
‘님은 먼 곳에’는 작사가가 누군가를 놓고 법정 다툼이 있었다. 드라마 ‘님은 먼 곳에’ 작가였던 유호(본명 유해준)가 2005년에 신중현을 상대로 “이 노래의 작사는 내가 했는데, 작곡가 신중현이 작사도 자신이 한 것으로 등록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중현은 “드라마 주제가니까 원작자가 제공한 부분을 전혀 안 쓸 수는 없어 ‘마음 주고 눈물 주고’만 인용한 것을 가지고 저작권이 그 쪽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라며 반박했다.
법원은 “드라마 출연자였던 강부자․이순재 씨나 노래를 처음 부른 가수 김추자 씨 등의 진술에 비춰 유호 씨가 작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중현 씨는 유호 씨에게 저작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2,000만 원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해 유호의 손을 들어줬다.
데뷔 앨범(1969년)에 수록된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로 각종 가요상을 휩쓸던 김추자는 ‘님은 먼 곳에’의 빅 히트로 스타의 입지를 완전하게 굳혔다. ‘님은 먼 곳에’는 그 후 여러 가수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그러나 원곡의 깊은 맛을 내는 가수는 흔치 않았다. 가장 호응을 받은 조관우조차 “김추자 선생님의 원곡을 따라갈 리메이크 곡은 있을 수 없다”라고 단언할 만큼 김추자의 음색은 흉내 내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독특하다. 이 노래가 크게 히트를 하자 “리듬이 내게 맞지 않다”라고 거절했던 패티김도 후일 이 노래를 불러 자신의 앨범에 끼워 넣었다.
이 노래는 2008년에 개봉한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님은 먼 곳에’에서 여주인공인 수애가 불러 또 다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김세레나와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다?
‘님은 먼 곳에’의 빅히트로 MBC 10대가수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김추자는 TBC 방송가요대상에서는 7대가수에 선정됐다. 가요계의 정상권에 진입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요계의 보수적인 서열 구조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신인이 급격히 부상하여 자신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1971년 7월 부산에서 김추자, 김세레나, 배호 등 여러 가수가 출연했던 공연에서 김추자는 피날레 무대를 자신 대신 김세레나를 내세우려 한 것에 불만을 품고 공연에 불참하는 시위를 벌인다.
이런 행동 때문에 김추자는 쇼 흥행계, 방송계, 음악계 선배들로부터 무차별 공격받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졌다. 급기야 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로부터 1971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연예활동 중지라는 징계를 받게 된다.
항간에는 김추자가 선배가수 김세레나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김추자는 이를 부인한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공연을 ‘펑크’ 냈다고 하지만, 제 처지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계속됐기 때문에 공연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었던 것뿐이에요. 부산에서의 리사이틀은 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연이었습니다. 당시 포스터를 보면 제가 제일 크게 나와 있고 다른 사람들은 게스트 형식으로 참가했어요. 당연히 제가 피날레 가수가 돼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해도 안 되기에 그런거죠. 자격정지의 이유는 김세레나씨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워 가수의 품위를 손상했다는 것인데 그건 완전한 오보였죠. 홧김에 제 화장품 박스를 걷어찬 게 전부예요.”
가수들 간 ‘피날레 갈등’은 가요계에서 오랫동안 있어왔다. 김추자 vs 김세레나 사건 외 가장 유명한 사건은 송대관 vs 김연자 사건이 있다. 2017년 가수 송대관이 한 매체를 통해 병원에 입원한 사진을 공개하면서 김연자의 매니저 홍상기로부터 심한 폭언을 듣고 급성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송대관은 “KBS ‘가요무대’ 녹화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던 중 홍 씨와 마주쳐 인사를 나누던 중 그로부터 ‘왜 그렇게 인사를 받아? 이걸 패버리고 며칠 살다 나와?’라는 폭언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연자 매니저인 홍상기는 “송대관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인사 관련 문제로 약간의 말다툼은 있었으나, 위협을 가한 적은 전혀 없다. 내가 정신 나간 놈도 아니고 선배한테 먼저 욕할 일이 전혀 없지 않느냐”라며 송대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당시 가요계에서는 ‘김연자가 방송 무대에 마지막 순서로 오르는 것에 대해 송대관이 불만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느닷없는 간첩설, 괘씸죄 때문?
당대 톱스타 반열에 오른 김추자에게는 여러 가지 소문들과 사건사고들이 잇달았다. 대표적인 소문이 바로 ‘간첩설’ 이다.
1971년 ‘거짓말이야’로 활동하고 있을 당시 ‘노래와 함께 지르는 손짓이 북한과의 교신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여 실제로 중앙정보부에서 내사하기도 했다. 그녀의 집에서 간첩들이 사용하는 난수표가 발견됐다는 루머도 돌았다. “수상하면 다시 보자”라는 간첩에 대한 경각심에서 생긴 과도한 공안적 상상력이 빚어낸 해프닝이었지만 이것은 김추자의 위치가 그만큼 독보적이고 인기가 절정의 상태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직접 불려가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저는 음악이 주어지면 그때마다 동작이 저절로 나와 거기에 맞추거든요. 그뿐이죠. 그런데 그 무렵 청와대 비서실에서 저더러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결국 안 들어갔거든요. 그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절이었어요. 저뿐만이 아니고 많은 가수가 중앙정보부 파티에 불려갔었죠. 1971~72년 언저리쯤입니다. 재벌 회장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나간 적도 있고 ‘저무는 바닷가’ 노래를 촬영하러 바닷가 인근의 컨트리클럽에 갔을 때는 녹화 도중에 모 언론사 사장이 밥을 먹자고 해서 불려간 적도 있습니다. 청와대 제의를 거절해서 괘씸죄에 걸린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거짓말이야’는 알고 보면 간첩설이나 반체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랑 노래다.
사랑하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왜 나를 버렸어, 이 모든 것은 거짓말이야’라며, 실연의 현실을 애써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사랑과 이별 노래’로 인식하는 대중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중은 ‘거짓말이야’가 금지곡에 오르자, 이 노래를 박정희 정권을 부정하는 노래로 인식하게 된다. 노래에 24차례나 나오는 ‘거짓말’ 가사를 계속 듣다 보면 귀에 ‘거짓말이야’ 이 부분만 확 꽂힌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
영화 '밀양'의 한 부분. 8분짜리 영상에서 7분이 지나는 부분에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흘러나온다.
신중현이 ‘실연’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로 만들었지만, 대중에 의해 노래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거짓말이야’가 ‘조롱’의 노래로 전환된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한 장면을 보자.
초등생 아들을 한 명 둔 신애(전도연 분)는 남편이 죽자 남편의 고향인 경남 밀양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아들과 행복한 삶을 꿈꾸지만, 이내 아들이 납치되어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큰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약국 주인의 권유로 열심히 교회에 다니게 된다. 그녀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느낄 때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리라 생각하고 교도소로 면회를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범인은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이다. 범인은 “교도소에 들어와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고,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한다.
신애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받았다고 생각한 구원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반발심이 생긴다. 그녀는 하나님에게 복수하기 위해 철저히 어긋나기로 작정한다. 교회 전도행사에 찾아가 목사가 한창 설교를 하고 있을 때, 훔친 CD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노래를 틀어 버린다. ‘거짓말이야’가 크게 울러 퍼지고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이처럼 ‘거짓말이야’는 어떤 권위에 대한 조롱의 노래로 인식되어졌다. ‘거짓말이야’가 한창 히트하던 1975년, 유신정권은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를 정권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판단한 듯하다.
‘거짓말이야’는 1975년 예술문화윤리위원회(예륜)과 방송윤리위원회(방윤)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1983년에는 공연윤리위원회(공윤)에 의해서도 금지곡으로 묶였다. 공식적인 금지 사유는 ‘가사 내용 불신 조장’과 ‘창법 저속’이었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영훈 가요연구가는 국제신문, 동아일보 등에서 신문기자로 20여 년간 근무하다 방송으로 옮겨 10년째 기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채널A 보도본부에 근무하면서 메인뉴스 편집데스크와 디지털뉴스부장을 지냈고 쾌도난마, 뉴스톱텐 등 여러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데스크로 일해 왔다. 보도본부 선임기자를 거쳐 현재는 심의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벌로 보는 한국야당사>, <한국정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유행가는 역사다>, <그 노래는 왜 금지곡이 되었을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