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다, 싸" 불티나게 팔린 '그 상품권' 휴지조각…조용히 배불린 '카드사'
[편집자주] 티몬과 위메프는 셀러들에게 줄 판매대금을 정산기일 전까지 다른 용도로 활용했다. 판촉 등 마케팅 비용으로 썼고 인수합병(M&A) 자금에 보태기도 했다. 그 사이 부족한 유동성을 메우는데는 상품권 판매가 활용됐다. 상품권은 판매 시점과 사용시점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했다. 유동성이 부족해질수록 상품권 할인율은 높아졌고 티메프의 상품권은 상테크족, 상품권깡 업자들에게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카드사들은 이런 수요를 파고 들어 매출을 늘렸다. 그리고 폭탄이 터지자 모두 다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티메프 사태로 드러나 상품권 시장의 민낯을 파헤쳐봤다.
올해 상반기 이커머스에서 거래된 상품권 거래액만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카드사는 '상품권깡' 위험에도 거래액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선 정황도 드러났다. 금융당국의 관리부재 속에 상품권시장의 거품이 커졌고 티메프 사태의 뇌관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올 상반기 상품권 이커머스 거래액 2조120억...그 중 절반 이상이 '티메프'서 거래
1일 머니투테이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카드사별 주요 이커머스 상품권 거래 현황'을 살펴본 결과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이커머스에서 거래된 상품권 규모는 2조 12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롯데카드를 통한 거래가 583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롯데카드의 카드업계 순위는 5위에 불과하지만 상품권 결제액은 가장 컸다. 이어 비씨카드가 3388억원, 신한카드 3015억원, 삼성카드 3007억원 순이었다. 다만 비씨카드는 비씨카드를 발행하는 은행 12개사와 자체카드 결제 금액을 포함한 금액이다.
하나카드는 844억원이라고 보고했지만 일부 판매금액을 누락한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확인됐다. 실제 이커머스에 거래된 상품권 거래액은 2조 120억원보다 크다는 얘기다.
상반기에 거래된 2조원 중 58.7%는 티몬과 위메프, 인터파크 커머스 3사(이하 티메프)에서 거래됐다.
◇티메프가 판깔고 카드·PG사가 키웠다
티메프는 올초부터 상품권 할인율을 높여 판을 키웠다. 티메프의 상품권 판매는 유동성 확보의 통로였다. 실제로 구영배 큐텐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상품권 거래액이 갑자기 빠지면서 유동성에 문제가 생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커머스가 액면가보다 많게는 10% 할인된 금액에 상품권을 판매하면서 상품권으로 재태크를 하는 이른바 '상테크'족은 물론 상품권을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깡' 세력까지 가세하면서 온라인 상품권 판매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상품권 환급처인 간편결제 회사(PG사)들은 충전 한도를 높여 상테크를 부추겼다. 시장이 커지자 온라인에서 할인판매되는 상품권을 대리 구매해주는 법인도 생겨났다. 개인의 경우 상품권 구매 한도가 한 카드당 한달에 100만원으로 제한돼 있지만 법인카드 구매한도는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이다. 법인의 경우 값싸게 풀린 상품권을 다량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카드사들도 일반 소비자들에게 상품권 구매도 결제 실적에 포함하면서 소비자들을 적극 유치했다. 또 상품권 구매 대행 업체에는 2% 안팎의 리워드를 제공하며 적극적인 영업에 나섰다. 한달에 수백억원의 상품권을 구매하는 상품권 구매 대행 업체가 자사 카드를 이용할 경우 이용금액의 2% 안팎의 돈을 돌려줬다. 일부 카드사는 상품권 구매 시 거쳐야 할 인증절차를 간소화해주기도 했다.
◇관련 규제 부재 속 덩치키운 '상품권깡' 시장
사태가 커진 건 정부의 방치 탓도 크다. 정부는 1999년 기업경제 촉진을 내세우며 상품권법을 폐지했다. 이렇다 할 가이드라인 없이 상품권깡이 방치된 사이 결과적으로 티메프 사태 이후 소비자들이 구입한 상품권은 휴지 조각이 됐다.
지난달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소비자상담 가운데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에 따른 '신유형상품권'(온라인상품권) 관련 상담이 가장 많았다. 총 5만5277건 가운데 신유형상품권 관련 상담이 1476건(2.7%)이었다. 소비자원이 진행 중인 티메프 상품권과 해피머니 집단 분쟁조정에는 약 1만3000명이 참여했다.
올 상반기에 이커머스에서 거래된 2조원이 모두 상품권깡에 사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중 절반 가까이가 티메프에서 거래됐고 티메프 사태의 뇌관이 됐다는 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승래 의원은 "신용카드사들이 실적을 위해 상품권깡을 부추겼고 금감원은 사실상 이를 방치했다"며 "결국 당국의 감독 실패가 티메프 사태와 상품권깡 피해를 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티몬과 위메프(이하 티메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상품권 시장의 판을 키웠을 때 일부 카드사가 이를 활용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꼼수' 영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카드사들은 상품권 거래소들의 자금을 모아 온라인에서 상품권 구매를 대행해주는 업체에 구매금액의 2% 안팎의 리워드를 제공했다. 100억원 가량의 상품권을 자사 카드로 거래하면 2억원을 이른바 '백마진'(Back margin)을 제공했다는 얘기다. 상품권 구매 시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ARS(음성자동응답) 본인인증도 일부 카드사는 상품권 구매 대형 업체에는 간소화했다.
◇"추가인증 절차 간소화해줄게"…편의 제공해준 카드사
1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중소형 A카드사는 올해 초 상품권 구매대행 B업체에 법인기명 신용카드 발급을 권유하며 2.1%의 리워드 제공을 제안했다. 통상 50만~100만원 이상 상품권을 구매할 때 거쳐야하는 추가 인증절차도 간소화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다른 카드사로부터 2%의 리워드를 제공받았던 B업체는 올해 1월부터 A카드를 이용해 상품권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올해 A카드로 구매한 상품권만 약 1500억원 규모다.
B사는 오프라인 상품권 거래소의 자금을 모아 이커머스에서 풀리는 저렴한 상품권을 대신 구매해주는 업체다. 보통 상품권 거래소는 오프라인에서 상품권을 구하는데 지난해부터 티메프 등을 중심으로 상품권이 싸게 팔리면서 온라인 구매 대행 업체에서 상품권을 구했다. B사 관계자는 "우리처럼 영업하는 상품권구매대행법인은 아는 것만 10여개는 된다"고 말했다.
구매대행 업체는 대행 수수료 외에도 카드사 리워드를 주요 수입원으로 삼는다. 특히 카드사 경쟁이 심해지면서 리워드 비율이 커지면서 수익도 늘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개인 신용카드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권의 한도는 월 100만원이지만 법인 신용카드는 관련 규제가 없다. A카드사도 상품권 구매 대행 업체에 한도를 제한하지 않았다. 대신 결제 불이행 등에 대비하기 위해 결제대금을 미리 예치하는 조건을 달았다.
일반적으로 카드사는 명의도용 등 부정결제를 방지하기 위해 온라인에서 상품권과 같은 환금성 상품을 결제할 때 기본 본인인증 외에 추가 본인인증을 거치도록 한다. 추가 본인인증에는 △ARS인증 △SMS인증 △계좌 1원 인증 등이 있다.
법인회원에게 추가 본인인증을 받는 건 법적 의무는 아니다. 다만 상품권 구매는 명의도용과 자금세탁이 흔하게 일어나는 고위험 업종이어서 모든 카드사가 추가 본인인증을 받는다. A카드사 역시 50만원 이상 온라인에서 상품권을 구매할 때 추가 본인인증을 요구한다.
상품권 대형 업체가 100억원어치 상품권을 사들이기 위해선 수만건의 ARS인증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A카드사는 추가 본인인증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편의를 제공했다. A카드 앱에 휴대전화 번호만 입력하면 곧바로 결제가 이뤄지는 방식으로 바꾸어줬다. 추가 본인인증 시간이 건당 2분에서 40초로 단축되면서 상품권 구매 규모는 커졌다. B사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상품권을 월평균 100억원가량 사들였으나 올해 법인카드를 바꾸면서 구매액이 두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A카드사는 상품권 구매대행 업체에 온라인상에서 상품권이 싸게 풀리는 정보도 공유해주기도 했다.
티몬 사태로 인해 B사가 입은 피해규모는 30여억원 가량이지만 아직 결제액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B사는 지난 7월 선주문 상품권 30여억원어치를 주문하고 바코드가 발송되기 전 카드결제를 취소했다. 바코드가 발송되지 않은 선주문 상품권은 배송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돼 원칙적으로 결제취소 대상이지만 카드사와 PG사 모두 책임을 회피하면서 B사가 피해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A카드사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따랐다고 해명했다. A카드사 관계자는 "ARS인증이 제외된 대신 본인인증이 가능한 다른 방식으로 추가 본인인증을 진행했다"며 "ARS인증 제외를 요청하는 업체에 한해 (다른 추가인증) 옵션을 이용할 수 있게끔 해준 것일 뿐 모든 절차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안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민우 기자 minuk@mt.co.kr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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