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나의 해방일지> 2화, 구 씨에게 나를 추앙하라고 말하는 미정

<나의 해방일지>는 교과서에서는 봤지만 평소에 쓸 일이 거의 없는 단어 ‘추앙’을 전 국민적인 유행어로 만들었다. 평범하고 자기표현이 없는 미정이 처음으로 해방을 찾으려는 순간 보는 이의 마음도 함께 나아간다. “나를 추앙해요.”는 2022년 가장 유혹적인 멘트, 세상에서 가장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다.
애플TV <파친코> 시즌 1 8화, 마지막 선자의 얼굴 클로즈업

<파친코>는 선자라는 여성을 통해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따라가는 작품이다. 드라마에는 김민하와 윤여정이 연기하는 선자의 얼굴을 화면 가득히 잡아주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클로즈업은 시즌 1을 마무리하는 오사카 시장에서의 신이다. 삶에 밀려오는 어떤 파도도 헤치고 나아가겠다는 결심. 역사의 흐름이 우리를 어디로 떠내려 보내든지 거기서 살아나오겠다는 의지가 빛난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4화, 로펌 회의실의 고래 사진 앞에 선 영우와 준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의 다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드라마였다. 4화에서 재판이 끝난 후에 준호는 영우를 회사의 대회의실로 데려가 혹등고래 사진을 보여준다. 각종 물고기가 살아가는 커다란 바다처럼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한바다’라는 로펌에서, 친절하고 착한 혹등고래 같은 영우가 살아갈 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에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것. 환상적이지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었다.
MBC <멧돼지 사냥> 1화, 오발로 사람이 맞았다고 직감하면서도 그저 돌아서는 영수

MBC 극본 공모 당선작인 <멧돼지 사냥>은 2022년 최고의 스릴러이지만 저평가된 드라마로, 인생의 갈림길을 만드는 순간의 선택과 그로 인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파국을 그렸다. 충청도의 시골 마을, 주민 영수의 로또 당첨을 다 같이 축하해주는 순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마을의 농작물을 해치는 멧돼지를 잡기 위해 사냥을 나갔다. 영수는 수풀 속 부스럭거리던 존재를 향해 총을 쏘고, 순간 사람을 쐈다는 것을 짐작하지만 그저 돌아선다. 이후로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진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 8화, 성준의 결혼식 가족사진 촬영

그리하여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은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들의 바람이 응축된 인물이다. 자신과 가족을 무너뜨린 재벌들, 도준에게는 그 가족의 막내로 태어나 그들에게 복수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 거창한 우주적 복수극에서 도준이 재벌가 순양과 그 수장 진양철을 향해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 바로 이 결혼식 장면이다.
글. 박현주 (드라마 칼럼니스트)
NHK 드라마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2022년 한 해 국내 방영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25편에 달한다고 한다. 모두가 공공연히 남의 연애 사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 드라마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을 보는 건 대세에 어긋나는 일이었을까. 10년 차 드라마 연출가 오시다 유타는 ‘로맨스가 빠지면 드라마를 만들 수 없는 걸까?’라는 문제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타인에게 연애 감정을 가지지 않고(에이로맨틱) 성적으로 끌리지도 않는(에이섹슈얼) 성적 지향을 가진 인물들이 한집에 모여 ‘(임시)가족’이 된다. 로맨스가 부재한 상태로도 무탈하게 흘러가는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설득력을 가져야만 할 것 같은 때, 이 드라마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나 역시 주인공의 자리로 초대해주었다.
이영지 ‘숨 참고 러브다이브’

2022년 6월 11일, 래퍼이자 인플루언서인 이영지의 본명 풀네임을 그대로 기입한 유튜브 채널 ‘이영지’에 업로드된 1분 28초짜리 비디오. 이것은 틱톡을 위시한 챌린지 영상이 케이팝 히트곡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던 정점에서 출현한 아이브의 ‘LOVE DIVE’ 챌린지 영상이다. 이 영상의 배경은 태국 코사무이의 한 숙소에 딸린 수영장이었는데, 간헐적으로 뒤에 비춰지던 사람들은 tvN 예능 <뿅뿅 지구오락실>의 제작진이었음이 이후에 밝혀졌다. <뿅뿅 지구오락실> 본방에서는 이 영상의 제작기가 송출됐다. ‘빠른 앵글 전환’, ‘수준급 무빙’, ‘엠카 감독님급 집중력’ 같은 자막처럼 네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일해온 팀처럼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나간다.
김태리 브이로그 <거기가 여긴가>

연기자 김태리가 여행 브이로그를 시작하게 된다면, 그 시리즈의 제목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잇 플레이스’가 아닐 거라는 건 어렴풋이 예상했다. ‘거기가 여긴가’는 그가 이제껏 출연한 드라마 및 영화 촬영지에 도착했을 때 홀로 조용히 외치는 구호다. 영화 <미스터 션샤인>의 안동,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대구, 영화 <1987>의 목포,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전주. 그는 일 때문에 방문했던 곳들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가며, 자신이 들르는 곳곳마다 팬들을 위한 수제 아이템을 하나씩 숨겨둔다. 김태리가 기획, 제작, 촬영을 전담했으며, 4일간 매일 신규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이제껏 어떤 오리지널 콘텐츠도 이렇게 속 시원한 주기에 맞춰 공개된 적은 없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 앤 프랭키> 시즌 7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다만, 지금으로부터 5년 후에는 내가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아는 사람’ 정도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레이스 앤 프랭키>의 일곱 번째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을 보면서 그런 바람에 더욱 힘이 실렸다. 부부동반 모임에서 ‘그레이스’의 남편과 ‘프랭키’의 남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고백한다. 남편들의 커밍아웃은 남겨진 두 아내들의 우정을 위한 다리를 속성으로 짓는다. 이 드라마는 70대 할머니가 되어 나와 성향이 전혀 다른 이와 친구가 되는 일의 아찔함에 대해 가늠해보게 만든다. 동시에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도 알게 해준다.
카라 ‘킬링 보이스’

지난여름, 셀프 사진관에서의 완전체 인증샷을 통해 ‘재결합 논의 중’이라는 깜짝 소식을 알렸던 카라가 한 계절이 지나 데뷔 15주년 기념 앨범 <Move Again>으로 돌아왔다. 건재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MAMA’, 오랜만에 춤을 추느라 “땀이 절절 났다”는 한승연의 말이 기사화될 정도였던 <문명특급>, 동료 뮤지션들끼리 진심 어린 격려를 주고받는 <아이유의 팔레트>까지 카라의 컴백 주간은 숨 가쁘게 채워졌다. 그중에서도 동선 변경 없이 일렬로 마이크 앞에 서서 자신들의 역대 히트곡들을 이어 부르는 ‘킬링 보이스’는 단연코 올해의 장면이다. 7년 반의 공백기, 데뷔 15주년 기념 앨범. 카라는 지난 기억을 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글. 서해인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 발행인)
전문은 빅이슈 289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