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백신 맞고 떠나간 지 1년여…"살아내느라 슬플 겨를도 없습니다"
주부 김씨, 접종 5개월 만에 재생불량성빈혈로 숨져
남편 이씨, 아내 빈자리 채우며 생계, 살림 병행
늦은 밤, 주말 엄마 아내 빈자리 느끼며 '침잠'
주말 납골당, 코백회 찾아가 "고인 위해 목놓아 울뿐"
2021년 11월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을 받고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김수진(당시 39세) 씨의 남편 이재호(44) 씨는 “살아내느라 슬퍼할 겨를도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2021년 9월 화이자 2차 접종을 받은 백신 이상반응자다.
백신 피해 리포트 취재를 하면서 접종 이상 반응으로 가장이 떠나간 가정의 사연은 많이 접했다. 지난 16일 들은 이 씨네 이야기는 그런 집들의 사정과 많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아내가 백신 접종을 받았고,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깥에서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남편은 퇴근 뒤 초등학생인 두 아이와 살림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자녀들도 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삶이다. 이 씨는 “아내가 잘 키워준 덕분에 아이들이 처음에 조금 혼란스러워했지만, 이제는 열심히 지내려 한다”며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꿋꿋하게 살아가려고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모든 일상이 잠시 멈추는 밤이 되면 이 씨와 아이들 모두 아내, 엄마의 빈자리를 느낀다. “아내가 사라진 현실이 체감되면 끝없이 가라앉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이 씨와 두 아이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 엄마가 남긴 자리를 애써 외면하며 하루를 또 묵묵히 시작한다.
▮거짓말처럼 갑자기 찾아온 이별
이 씨 가족은 경남 진주시 정촌면에 산다. 아내 김 씨는 집 근처 병원에서 백신을 접종한 뒤 첫 월경 때 이상 반응을 겪었다. 갑자기 온몸에 타박상과 같은 멍이 났고, 병원 검사 결과 혈액 속 호중구 수치가 0에 가까웠다. 통상 호중구 수치가 100 밑으로 내려가 면 몸의 면역 체계가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7개월 전인 2021년 4월 백신 1차 접종 이후 흔히 겪는 몸살 기운 외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던 터라 이 씨와 아내 모두 걱정이 컸지만, 병원에서는 여성들이 월경 중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다. 김 씨는 서울 큰 병원에서 재생불량성 빈혈 극상 진단을 받은 뒤 희귀질환자로 등록됐다. 김 씨는 골수 이식을 받기 위해 조혈모세포 공여자를 기다리다가 나오지 않자 여동생으로부터 가족 공여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력이 바닥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는 투병 3개월 만인 2022년 3월 8일 패혈증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아내가 떠나가기 전 얼굴을 보지 못하고 통화만 했다.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병원 혈액내과 병실에는 보호자 상주가 안 됐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여러 환자를 돌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입원하고 3개월 동안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김 씨는 그 주에 골수 이식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피곤하니까 내일 통화하자”는 말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됐다. 떠나는 아내의 옆자리를 지키지 못한 회한은 어떤 말과 방법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이 씨는 “아내를 쓸쓸히 보냈다. 아픈 아내의 손도 한 번 못 잡아주고, 물 한 잔 못 떠줬다”며 “3개월째 생이별하고 있다가 결국 보내버렸다”고 전했다.
결혼 생활 13년 차에 찾아온 비극이었다. 이 씨는 “아내가 평소 댄스 학원에 다니면서 건강했다. 아무도 이렇게 빨리 세상을 뜰지 몰랐다”고 당시의 혼란했던 심경을 전했다. 김 씨는 백신 2차 접종 2개월 전 자궁에 생긴 근종을 떼내는 수술을 하면서 혈액검사를 했다. 당시 검사 결과 이상한 부분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김 씨는 죽었고, 지난 8일은 그의 첫 기일이었다. 남편 이 씨는 “건강하던 사람이 그런 일을 겪은 것은 말이 안 되는 거”라고 했다.
▮남겨진 가족, 슬플 겨를은 아주 잠시
아내 사망 당시 10세, 12세였던 두 아들은 늘 건강하던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을 믿지 못했다. 이 씨도 처음에는 그냥 병원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내를 집에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씨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백신 맞고 불의의 병을 얻어서 저 세상에 갔다”고 설명해줬다. 당시 아이들은 접종 강제성이 없어서 백신을 맞지 않았다.
이 씨는 마음의 준비 없이 아내를 여의고 처음에는 따라서 죽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상황이 제대로 판단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인기피증이 생겼고 누군가 집안 사정을 묻는 게 싫었다.
이 씨는 앞서 가족을 먼저 떠나 보낸 경험이 두 차례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동생이 백혈병에 걸려 고인이 됐다. 결혼 이후에는 사업이 부도가 나서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경험도 했다고 한다. 당시 아내와 돈은 열심히 벌면 되고 건강하면 된다고 의기투합했다. 이후 살 만하니까 일이 터져버렸다. “이보다 더 힘들어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내가 사라진 다음에 더 힘 들었습니다. 아내의 빈자리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전기 공사 관련 회사에 재직 중인데, 3개월간 휴직한 채 혼란스러운 상황과 마음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어지러워진 가정과 아이들이 보였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회사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6개월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회사에서는 한동안 이 씨를 위험 작업에서 빼줬다.
아직 아내의 빈자리를 홀로 메우기는 쉽지 않다. 일이 있기 전에는 청소기 돌리는 아빠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살림과 직장 모두 잘 해내야 하는 ‘워킹 파파’가 됐다. 퇴근 뒤 집으로 돌아와 밥 차리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챙기다 보면 슬퍼할 겨를도 없다. 올해 칠순을 넘긴 어머니가 반찬을 만들어 주고 직장에 있는 동안 살림살이를 돕지만, 그는 힘에 부친다.
엄마가 떠난 직후 정서적으로 불안 증세를 보이던 아이들도 아빠의 상황을 눈치 챘는지 지금은 성실하게 학교에 갔다가 학원에 가는 일상을 열심히 살아낸다. 삼시세끼 해주던 엄마의 따뜻한 밥이 없고, 엄마가 늘 해주던 많은 것들이 사라지면서 스스로 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이 씨는 아이들에게 “그간 엄마가 열심히 키워놨으니 엄마가 없을 때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생활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마음은 아직 회복하지 못했나보다. 이 씨는 하루를 정신 없이 지내다가 저녁이 되면 아내의 빈자리가 갑자기 느껴져 먹먹함과 공허함에 어쩔 줄을 모른다. 아내가 떠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대처할 방법을 모르겠다. 주말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기에 아빠와 아이들은 일요일마다 납골당에 가 아내,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씨는 “아이들이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 지 얼마 안 됐다. 아내가 3개월간 투병 생활을 했으니까 병원에 있는 것으로 착각할 때도 있었다”면서 “그래도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인 것 같다. 꿋꿋하게 받아들이고 학교생활도 열심히 한다. 엄마가 잘 키웠다. 아이들끼리 꿋꿋하게 열심히 해줘서 먼저 간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강조했다.
▮보건 당국은 1년 넘게 묵묵부답
이 씨는 서울에서 열리는 코로나19피해자가족협의회 추모 집회 행사에 두 달마다 참석한다. 힘들게 떠난 아내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아내를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잠시 목놓아 울어주는 것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인터뷰가 진행될 수록 담담하던 그의 목소리는 촉촉해졌다.
아내가 아플 때인 2021년 11월 재생불량성 빈혈 진단이 담긴 병원 소견서를 받아서 지역 보건소에 코로나19 백신 피해보상 신청을 했다. 하지만 그는 보건소로부터 1년 6개월 넘게 답변을 못 들었다. 보건소에 “90일 이내에 답변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하면 “순차적으로 심사중”이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중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이 소식을 보건소에 전하니 “그러면 심사에 시간이 더 걸린다”는 대답만 들었다.
이 씨는 “백신을 맞지 않으면 식당 커피숍 등 대중시설 출입이 제한되는 방역 패스 때문에 아내가 백신 접종을 받았다. 당시 방역 당국은 백신을 안 맞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제한했다. 그런데도 백신 접종을 강제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정부 지침을 잘 따른 국민이 죽었는데,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없는 정부에 환멸을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적으로 백신 접종을 권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멀쩡하던 가족이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 났는데도 나라에서는 아무런 사죄도 없었다. 돈을 받는 보상을 바라는 게 아니라 원통하게 돌아가신 분들과 그 가족을 나라가 위로해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외면하는 행태에 화도 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씨는 또 “아내의 그리움을 견디는 게 제일 힘들다. 살아있어야 할 사람이 옆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게 제일 어렵다. 정부 정책에 잘 따른 국민들이 왜 가장 힘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 “말은 안 하지만 아이들도 엄마의 허전함을 느끼고 있다. 엄마가 언제 제일 생각 나느냐고 물으면 작은 애는 맛있는 것 먹을 때, 큰 애는 잠 들기 전이라고 대답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렇지만 현재 이 씨의 머리와 마음을 가득 채운 가장 중요한 일은 두 자녀를 잘 키우는 것이다. 그는 “어른들 말씀처럼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누구를 원망할 짬도 없다”며 “아이들이 지금처럼 해맑게 커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