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저널리즘] '떡쉬움이' '꾀복쟁이'가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언어 저널리즘 (05)] 표준어·문화어·국내외 지역어까지 언어의 우열 없앤 겨레말큰사전
겨레말큰사전 수석편찬원 이길재 "지역어 사라질 것 같지만 또 새로 생겨나"…"표준어가 지역어 억눌러선 안돼"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한국어는 서열을 전제한다. 상대와 나의 위치를 파악해 높임말과 낮춤말을 적절히 골라야 한다. 비민주적인 표현도 많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지 한 세대밖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독재의 유산이 언어를 통해 계승되고 있다. 언어에도 신분이 있다. 표준어는 나머지 지역어(방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 언론은 그동안 이러한 한국어의 특징을 비판적으로 해석하지 못했고 오히려 널리 유포해온 책임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저널리즘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2023년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지 살펴보고, 저널리즘은 언어 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다루는지 '언어 저널리즘'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 편집자주
언어엔 삶이 녹아있다. '떡쉬움이'란 단어가 있다. '떡을 쉬게 만드는 것'이다. 조선 말기나 일제강점기, 수탈을 피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단어다. 당시 고려인들은 빵과 유제품을 주로 먹었는데 '빵'과 '발효'는 일제강점기 이후 사용한 말이라 아직 이 단어들을 알지 못했다. 대신 비슷한 말인 '떡'과 '쉬다'로 대체해 '떡을 쉬게 하는 것'을 '빵을 발효하는 것'이란 뜻으로 썼다. '떡쉬움이'는 빵을 발효하는 이스트, 즉 효모균을 가리킨다.
언어의 유래는 이를 쓰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나온다. 충남 해안가에서 주로 쓰는 '갱갈할매숟가락'은 키조개의 방언이다. 키조개가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삼각형 모양이 곡식을 고르는 키를 닮아 붙은 이름이라면, '갱갈할매숟가락'은 갯벌(갱)에서 '할매'들이 작업하다 새참먹을 때 '숟가락' 대신 키조개 껍데기를 사용한 것을 이용한 표현이다. 키조개가 그 모양을 본떠 붙인 이름이라면 '갱갈할매숟가락'에는 사람들의 생활이 녹아있다.
방언은 표준어로 단순 대체하기 어렵다. '꾀복쟁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벌거숭이'의 전남 방언”이라고 나온다. 벌거숭이는 '옷을 죄다 벗은 알몸뚱이'를 말한다. '꾀벗다(깨벗다)'는 옷을 다 벗는 것이 아니라 윗도리만 입은 것을 뜻한다. 방언을 표준어로 바꾸면서 의미가 달라진 사례다. 따라서 '꾀복쟁이 친구'는 성별에 상관없이 아랫도리를 벗고 지내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어린 나이부터 지낸 친구를 뜻한다.
방언이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하다. 다음은 함경도 설화다. 해와 달이 없는 까막나라의 왕이 불개에게 이웃나라에 가서 해와 달을 물어오라고 명했다. 불개가 해를 가져오기 위해 해를 덥석 물었는데 너무 뜨거워서 뱉었다. 달을 가져오기 위해 달을 덥석 물었는데 이번엔 너무 차가워서 뱉었다. 이에 따라 함경도에선 일식을 '해개먹음(해개)' 월식을 '달개먹음(달개)',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각각 '해개먹음이', '달개먹음이'라고 쓴다.
이처럼 언어는 자연스럽게 흐른다. 방언은 이를 쓰는 사람들의 정서를 잘 담고 있다. 특히 문학작품에서 지역방언을 살리는 이유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국가가 주도해 표준어로 정하면 다양한 방언은 '2등 언어'로 격하된다. 국가가 주도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은 언어의 우열을 명문화한다. 사전에 어떤 단어를 넣을지 결할정뿐 아니라 뜻풀이를 통해 언어의 해석·사용법까지 독점한다. 여기에 맞춤법·띄어쓰기 등 어문규범까지 규정하며 언어생활 전반에 간섭하고 이는 언어의 획일화를 초래한다.
때문에 표준어 정책이나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표준어와 표준국어대사전 등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있고, 국가가 민간 사전 시장을 지원하되 간섭하진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단기적으로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시대착오적인 뜻풀이를 바꿔야 할 필요도 있다. 필요한 개혁이지만 언어의 우열까지 없애긴 어려운 조치들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곳곳에서 방언사전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17년 <경남방언사전>, 2019년에는 경남 창녕군 토박이말 1만3000여개를 담은 <창녕방언사전>이 출간됐다. 지난 2020년에는 <충남도 예산말사전 제4권>이 나왔고 지난해 경남 진주시에선 <진주 사투리 사전>, 강릉방언을 집대성한 <강릉방언 자료 사전>이 탄생했다. 두만강 지역 조선인들 방언을 모은 <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사전>도 출간됐다. 제주도는 지난 2009년 발간한 <제주어사전>을 보완해 내년 출간을 목표로 <제주어대사전>을 작업 중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다.
표준어·문화어·지역어 구분 없이 만든 사전
<겨레말큰사전>은 표준어·지역어 가리지 않고 사전에 담아 언어의 우열을 없앤 사전이다. 겨레말큰사전은 남(대한민국)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동으로 하는 사업으로 남북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등 해외 지역어까지 차별 없이 실었다.
남쪽 '표준어'를 담은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쪽 '문화어'를 기반한 <조선말대사전>을 중심으로 총 30만7000여개 어휘(지역어 10만여개)를 담았는데 표준어, 문화어, 여러 지역어를 구분 짓지 않는다. 이 단어들을 가나다순으로 싣고 각 단어가 표준어면 '남', 문화어면 '북', 특정 지역의 방언이면 해당 지역명, 조선족 등이 중국에서 사용하면 '중'이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또 이 지역들이 공동으로 쓰는 말은 각각의 용례를 함께 넣었다. 북한과 중국에서 쓰는 단어의 경우 북한의 서적과 중국의 서적에서 해당 단어를 사용한 예시를 표기하는 식이다.
남북이 공동 편찬하는 최초 우리말 사전인 겨레말큰사전은 마지막 종이사전으로 불린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온라인으로만 업데이트하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뜻풀이·용례 등 4가지 정보, 조선말대사전은 5가지 정보를 제공하지만 겨레말큰사전은 발음·활용정보 등을 포함해 총 19가지의 정보를 제공한다. 겨레말큰사전 전자사전도 준비 중인데 80만여개의 단어(지역어 16만여개)를 실을 예정이다.
겨레말큰사전, 어떻게 시작했나?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은 목사 문익환이 1989년 방북 때 김일성을 만나 사전을 만들자고 한 합의에서 유래한다. 문익환의 유지를 받아 사단법인 통일맞이 이사로 활동하던 그의 아들 배우 문성근이 모친 박용길의 편지를 들고 김정일을 찾아 다시 제안했다. 2005년 2월 금강산에서 공동편찬위원회 회의를 시작으로 정기적으로 남북 위원들이 만나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돼 편찬위원들은 한동안 만나지 못했고, 박근혜 정부 때 잠시 교류가 있었지만 2015년 12월 중국 다롄에서 제25차 회의를 끝으로 현재까지 교류가 중단됐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이사장 민현식, 이하 겨레말사업회)는 총 1만7000쪽 분량의 10권짜리 가제본을 만든 상태(현재 비공개)다. 다시 만남을 시작하면 가제본을 전달해 북쪽과 의견을 주고받을 예정이다.
주목할 점은 남북이 각각 표준어와 문화어를 국가가 규정하면서 언어의 우열을 만든 것과 달리 겨레말큰사전은 한반도는 물론 해외동포 등이 쓰는 지역어까지 동등하게 실었다는 부분이다. 겨레말큰사전을 만들 때 지역어도 차별 없이 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는 겨레말사업회에서 유일한 지역어 전공자인 수석편찬원 이길재였다. 그는 2006년 2월부터 겨레말사업회에 참여했다.
이길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학교 들어가면서 표준어와 아닌 말로 구분해서 배우는데 그러면 사람들도 맞고 틀린 것, 이분법으로 생각하도록 변한다”며 “서울에서 쓰던 뜻으로 쓰지 않는다고 잘못이라고 할 수 없고 지역어의 정서가 표준어와 다르기 때문에 억지로 꿰어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떡쉬움이, 꾀복쟁이 등 지역어를 언급하며 “이런 말들이 나쁜 말이 아니고 틀린 말이 아니지 않나”라며 “언어의 위계를 만드는 표준어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원 중 지역어 담당자는 그가 유일하다. 수많은 지역의 언어를 어떻게 혼자 담당할까. “해당 지역어 전공자를 찾아 1차적으로 뜻풀이를 받는다. 겨레말큰사전에선 이전까지 조사하지 않았던 말을 주로 조사했다. 반드시 그 지역 사람이 뜻풀이를 해야 한다. 여기서는 겨레말큰사전에 맞게 교정을 보는 방식이다.”
가령 전북 방언 중에 '폭폭하다'는 말이 있다. 이를 일부 사전에선 “'답답하다'의 전북 방언”으로 표기하지만 폭폭하다는 좀 더 억울하고 화가나는 상태가 담겼다. 전북 지역사람은 '폭폭하다'에서 '답답하다'로 표현하지 못하는 뉘앙스를 느끼는 반면 타 지역사람은 '폭폭하다'는 말을 적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따라서 해당 지역어는 그 지역사람이 뜻풀이해야 한다.
지역어도 그 자체의 필요성이 있다. “지역어는 그 지역 사회적 자본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경상도에 가면 경상도 말을 써야 어울릴 수 있다. 서울에 오면 어설프더라도 서울말을 써야 관계를 맺기 편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다 중국에서 중국어를 쓰는 것만 이중언어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 가면 언어코드를 바꾸는 것도 이런 이유다.”
소멸하는 지역어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는 생각이 좀 다르다. “방언을 살리기 위한 방법? 이건 질문의 전제가 잘못됐다. 언어도 자생해야 한다. 사람들이 사용해야 살아남는 것이고 죽은 언어를 억지로 살릴 순 없다. 쓰려고 노력을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억누르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표준어는 방언을 억제하고 사실상 못 쓰게 하니까 표준어 정책이 문제다. 방언이 다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말은 사라지지만 또 새로운 말이 생긴다.” 언어도 물처럼 흐르는 존재고 이를 막아선 안 되는 까닭이다.
수어와 손말, 서로 달라
한편 겨레말사업회는 남북수어(남:수어, 북:손말)의 차이를 발견해 이를 알리는 작업도 하고 있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농인선수들 대화시 수어통역사가 별도로 있는 것이 언론에 나왔다. 이를 보고 남북수어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겨레말사업회에서도 살펴보기로 했다.
수어와 손말을 연구하는 청년모임 '데프누리'와 협업해 수어와 손말의 차이를 카드뉴스나 영상으로 제작해 알리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겨레말사업회 관계자는 “남북 장애인의 언어 차이 문제”라며 “정식사업은 아니지만 수어와 손말의 차이도 조금씩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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