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궁-II의 이라크 수출에 드리운 안보 리스크 [무기로 읽는 세상]
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중동 정세도 악화일로를 거듭하며 전 세계적으로 무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방위산업 강국이었던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오랜 평화로 인해 무기 생산 인프라를 크게 줄인 상태였고, 단기간에 급증한 무기 수요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한국이 치고 들어가면서 세계 무기 시장에는 이른바 ‘K방산 돌풍’이 불었다.
우크라이나·중동 전쟁으로 무기 수요↑... 'K방산 돌풍'
정치·외교적인 요소를 배제하면 한국산 무기는 분명 매력적인 무기다. 미국과 유럽의 최신 무기에 필적하는 우수한 성능을 가지고 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서방 진영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대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생산 기반도 탄탄해 납품 속도와 후속군수지원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최근 이라크에 28억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한 천궁-II는 항공기·탄도탄에 대한 요격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1개 포대 가격이 미국 패트리엇 시스템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해 시장에서 큰 호평을 얻고 있다.
무기 수출은 분명 좋은 소식이다. 무기체계는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파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이익이 되고, 무기 수출을 통해 확대된 군사교류가 우리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을 키워주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무기 수출은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다. 바로 최근 계약 체결이 화제가 된 이라크 천궁-II 수출과 같은 경우다.
항공기·탄도탄 요격 능력 가진 천궁-II '호평'
이라크가 우리나라에 천궁-II 구매 의사를 전해온 것은 올해 초였다. 정확히는 지난 3월, 이라크 국방장관이 방한해 천궁-II를 구매하고 싶다는 의사를 우리 측에 전했고, 그러한 의사표명 6개월 만에 계약이 체결됐다. 일반적으로 무기 거래 협상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소요되는데, 이라크는 번갯불에 콩 볶듯 28억 달러짜리 계약서에 서명했다.
천궁-II 8개 포대를 도입하는 이라크는 우리 정부에 3개 포대를 조기 납품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다급하게 이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이라크에는 천궁-II라는 고성능 방공 시스템이 당장 필요할 정도의 안보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접한 이란은 사실상 동맹 관계나 다름없을 정도로 친하고, 시리아 역시 돈독한 관계인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쿠웨이트 등 다른 인접국 모두 이라크와 우호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이라크는 천궁-II와 같은 무기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가 이처럼 다급한 것은 다른 속내가 있기 때문이다.
집권 직후부터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모하메드 시아 알 수다니 총리는 이라크 내 최대 친이란 정치 파벌 중 하나인 이슬람다와당 소속이다. 이 정당은 호메이니 혁명을 지지했고, 지난 수십 년간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세력을 키워온 정치세력이다. 이 때문에 수다니 총리는 미국과 미국 주도의 서방국가 군대의 이라크 철군을 요구해 최근 이를 관철시켰고, 이라크 정규군 대신 친이란 민병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민병연합체 ‘인민동원군(PMF)’에 막대한 투자와 지원을 제공해 자신의 세력 기반으로 삼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수다니는 집권 후 2년 만에 PMF의 병력을 11만6,000여 명 늘려 23만 명 규모로 키웠고, 무려 27억 달러의 예산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PMF는 공식적으로 이란·북한·러시아·시리아와 동맹 관계임을 표방하고 있다. 이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진 후 중동 전역의 미군을 공격하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수다니 총리는 미군을 공격하는 PMF를 제재하기는커녕,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천궁-II 도입한 이라크의 PMF는 이란·북한과 동맹 관계
수다니 정부가 중거리 방공무기 도입에 열을 올리기 시작한 시점은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의 군용기들이 자국 영공을 휘젓고 다닌 시기와 일치한다. 이라크는 불과 1년 사이에 러시아제 S-400, 프랑스제 SAMP/T, 중국의 FD-2000B 등 여러 방공무기 구매를 추진했지만 모두 좌절됐고, 판매 허가가 나온 천궁-II를 부랴부랴 구매했다. 그렇다면 이라크의 천궁-II가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는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이라크 천궁-II 수출을 ‘방산 잭팟’이나 ‘쾌거’ 등으로 포장하기 전에 이 계약 이행을 전후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이 계약이 현재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이행될 경우 우리나라의 안보는 물론, 한미동맹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천궁-II 조기 인도에 따른 방공망 구멍 발생 문제다. 우리나라는 최근 해외 무기 수출 과정에서 우리 군에 납품될 물량을 빼내 수출용으로 돌려 납기를 앞당기는 ‘꼼수’를 많이 쓰고 있다. 폴란드에 수출된 FA-50GF 전투기, K9A1 자주포, K2 전차 물량 중 상당수는 우리 군 납품용으로 생산됐지만 수출용으로 돌려진 케이스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대부분의 언론과 국민들은 ‘수출 잭팟’에만 열광할 뿐, 노후 장비 교체 지연으로 인해 발생한 우리 군의 전력 공백과 안보 상황 악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천궁-II 물량을 수출용으로 돌리는 것은 앞서 언급한 전투기나 자주포, 전차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당장 북한이 신형 탄도미사일을 대량생산하고 여기에 핵탄두까지 얹고 있는 상황에서 단 1발의 요격미사일도 아쉬운 우리나라가 북한 탄도탄을 막기 위해 우리 군에 배치돼야 할 무기를 빼서 남에게 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이라크에 조기 납품이 가능하다고 밝힌 2개 포대는 우리 군 납품용으로 발주·생산된 물량이 절대 아니어야 한다.
무기 수출이 우리 안보와 한미 동맹에 영향 주지 않아야
우리 정부는 이라크 수출용 천궁-II의 사격통제장치에 엄격한 피아식별 안전장치를 적용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라크 정부가 급히 방공 무기를 도입하려는 것은 자국 영공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며 PMF를 공습하는 미군기를 격추하기 위한 목적일 가능성이 크다. 즉, 우리가 수출한 미사일에 미군 군용기가 격추될 공산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이라크 방공무기 수출은 동맹국인 미국에 ‘배신’ 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이라크 수출용 천궁-II는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피아식별장치를 가진 항공기를 조준·공격할 수 없도록 다중 안전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우리 정부는 천궁-II의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비해 이라크가 이 미사일의 핵심 구성품을 열어보고 분석할 수 없도록 추가적인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 이라크 정부의 세력 기반인 PMF는 북한의 핵심 우방국인 이란과 동맹관계이고, 대외적으로 북한과도 동맹임을 표방하고 있는 집단이다. 천궁-II의 레이더, 특히 미사일에 내장된 종말 단계 유도용 레이더, 사격통제용 레이더와 미사일이 주고받는 전파 특성이 PMF를 통해 북한에 유출되면, 북한은 한국을 공격할 때 사용할 탄도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에 해당 전파 특성에 맞춘 교란 장치를 장착해 요격을 회피할 수도 있다. 이는 천궁-II를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의 무력화를 의미한다.
이처럼 이라크에 대한 천궁-II 수출은 무기 판매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보다 수출로 인해 발생하는 리스크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험한 거래다. 혹자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잔칫상에 재를 뿌린다고 성토할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최근 위험할 정도로 과열되고 있는 이른바 ‘국뽕’이나 ‘국수주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해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천궁-II 수출이 한미동맹 균열은 물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앞에 우리 국민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안보 위협으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의사결정권자들 역시 이라크 천궁-II 수출을 관료 개개인의 임기 중 치적으로 삼고 이를 선전하는 데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이번 결정이 우리 국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국익과 국가안보보다 개인의 치적 선전에 관심이 더 많은 관료나 정치인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이 요직에 많으면 많을수록 국가안보는 더 빨리 무너져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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