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케이팝이, 태국에는 티팝이 있다

 미의 기준과 여성 차별에 과해 이야기하며 현지 음악계를 재창조하는 방콕의 뮤지션들.

1939년, 태국 최초의 대중 음악 밴드인 순타라폰(Suntaraphorn)이 결성되었다. 그들이 연주한 곡은 어린이를 의미하는 ‘룩(luk)’과 도시를 의미하는 ‘크룽(krung)’을 합쳐 ‘룩 크룽(Luk Krung)’으로 불렸으며, 재즈에서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서양 악기와 음악 스타일을 노래에 폭넓게 적용했다.

이러한 방식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었는데, 왜냐하면 태국의 보수적인 문화 환경 속에서 자국 음악계에 서양의 영향을 처음으로 주입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순타라폰 이전에 태국은 이름에 시골을 의미하는 ‘퉁(thung)’이 들어가는 ‘룩 퉁(luk thung)’이라는 음악 스타일에 가장 익숙했다. 룩 퉁은 청자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시적인 스토리텔링과 부드럽고 서글픈 가락이 특징인 비교적 전원적인 장르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방콕으로 가는 시골 소녀의 이야기와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가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태국의 대중 음악 문화가 서양 음악과 패션의 영향을 더 폭넓게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였다. 예컨대 조이 보이(Joey Boy, 본명 아피싯 옵사사임리킷(Apisit Opsasaimlikit))가 태국의 독립 음악 분야를 개척한 레이블인 베이커리 뮤직(Bakery Music)과 계약하여 태국에 힙합을 처음으로 소개한 사례도 이러한 흐름의 일부였다.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젊은 태국 예술가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영감을 얻고 있으며 태국 음악 산업은 매우 독특한 결실을 맺고 있다.

룩 크룽의 진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태국의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태국 문화 속 깊숙이 뿌리 내린 음악적 전통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젊은 태국 예술가들은 이제 작업을 통해 개인의 음악적 뿌리를 탐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국 북동부 이산(Isaan) 출신의 래퍼 VKL은 태국 인구 대다수가 교육받지 못한 시골 사람들의 언어라고 여기는 현지 방언과 악기 소리, 그리고 문화를 자랑스럽게 사용한다. 이산 문화와 현대적인 미국 힙합을 결합하는 것은 도발적인 움직임이지만 VKL은 "동부 힙합, 서부 힙합, 그리고 레게톤(reggaeton)처럼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는 각기 다른 사운드와 캐릭터가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 문화를 보여주는 이산의 언어를 사용한다."

오늘날 태국 음악은 태국 속 다양한 현대인들의 삶을 반영한다. 래퍼 영옴(Youngohm)의 앨범인 ‘Bangkok Legacy’는 노동 계층 아이들과 함께 사원 내부에 있는 공립학교에 다녔던 경험과 방콕에서의 삶에서 영감을 가져왔다. 영옴은 "방콕은 매우 강한 개성을 가진 도시이고 이 앨범은 모든 방콕 아이들의 유산이다."라고 자신의 앨범을 소개한다.

방콕은 눈에 띄게 활기찬 도시이며 파티가 흔히 벌어지는 지역에서는 BDSM 파티부터 언더그라운드 힙합 공연까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 영옴의 학교 동창이자 어릴 때부터 함께 작업해 온 동료 래퍼 SONOFO는 “우리 문화를 음악에 쏟아붓는 것은 세계인들이 우리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서 500,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20세 래퍼 다이아몬드(Diamond)는 지난 10년간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이 증가했기 때문에 젊은 예술가들이 더 이상 보수적인 주류 미디어 플랫폼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유튜브에 백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면서도 여전히 주류 음악계에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의 사례가 꽤 많다고 꼬집는다. "우리는 매스 미디어 없이도 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도움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힙합 아티스트들은 태국에서 놀림을 받곤 했다." 25세의 가나계 태국인 뮤지션 NGAZ는 말한다. "과거에는 대부분 사람이 팝이나 록 음악에 더 익숙했고 랩 음악은 매우 틈새시장이었지만 지금은 스트리트나 힙합 패션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태국의 주류 팝 음악은 부드러운 러브송과 느끼한 댄스 트랙이 대부분이다. 그보다 더 실험적인 음악은 종종 외면받는데, 이는 곧 실험적인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은 음악을 세상에 발표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국을 넘어 전 세계 아티스트의 사랑을 받는 오 통타이 쥬얼리(O Thongthai Jewellery)의 창립자 오 통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립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수익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지점을 찾아야 한다. 최우선 순위는 창작이다."

29세의 패션 디자이너, DJ 겸 파티 주최자인 날린 사테아루지카논(Nalin Satearrujikanon)에게 태국 신의 장점은 언더그라운드 파티의 다양성이다. 날린은 통로(Thonglor)처럼 초호화 파티가 벌어지는 지역의 고급 클럽 대신 방콕의 홍등가인 팟퐁(Patpong)의 고고 바에서 주로 파티를 연다.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 외에도 날린은 모델 활동을 비롯하여 마른 몸매와 밝은 피부를 중시하는 여타 아시아 국가의 미의 기준과 유사한 태국식 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길거리 캐스팅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또한 사회가 자신을 상자에 가두거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것과 되지 못하는 것을 구분하려 한다고 느끼는 태국의 수많은 젊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을 위해 앞길을 닦았다. "나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라고 날린은 말한다. 그는 또한 ‘미래는 레이디보이(The Future is Ladyboy)’라는 슬로건의 바이럴 티셔츠 시리즈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나는 레이디보이라는 단어를 비난하는 이들로부터 되찾아 와 이를 둘러싼 오명을 없앤 뒤 멋있어 보이도록 만들고 싶었다.”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렇다. 나는 레이디보이고, 내 정체성이 자랑스럽다."

태국 사회는 여전히 전반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이런 분위기는 때로는 창의력과 자유를 활용해 저항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아티스트들에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한다. SILVY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탈리아계 태국인 뮤지션 파비다 모리기(Pavida Moriggi)는 열다섯 살 때부터 ‘더 스타(The Star)’라는 TV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수로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동안 그는 외모와 체중 때문에 유명해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난 공세에 직면했다. "그들은 나를 틀 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이 업계에서 살아남고 싶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곤 했다.”라고 SILVY는 말한다. "마침내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SILVY는 음악을 통해 태국의 전형적인 미의 기준에 도전하며, 그의 노래 대부분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던 시절을 담고 있다. "오늘날 태국 소녀들은 이전보다 훨씬 자신감이 넘친다"고 SILVY는 말한다. “태국 소녀들은 더 이상 여성 차별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태국인 여성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이들이 스스로 섹시하다고 느끼는 옷이라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입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모든 곳과 마찬가지로 방콕의 젊은이들은 클럽들이 문을 닫고 자신을 표현할 창구가 없어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통타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상황이 다시 나아지기 시작한 것 같다”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태국의 보수적인 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증거도 하나둘씩 보인다. “태국은 얼마 전에 대마초를 합법화했기 때문에 어디서든 대마초를 구할 수 있다. 클럽은 다시 문을 열었고 성황리에 영업 중이다. 흥미로운 음악을 트는 바도 이전보다 늘었다. 코로나19 이전처럼 사람들이 나와서 파티를 하기 시작했다.” 태국 음악의 과거와 현재가 의미 있었던 만큼,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Photography 조이스 첸(Joyce Chen)
Fashion 오 통타이(O Thongthai)
Models 폭 마인드셋(Pok Mindset), 마지 발렌시아가(Margie Balenciaga), 영옴(Youngohm), 다이아몬드 MQT(Diamond MQT), NGAZ, 제이 사노포(Jay Sanofo), 자오쿤(Jaokhun), 자오나이(Jaonaay), 노텝(Notep), 실비(Silvy), 날린(Nalin)
All jewellery 오 통타이(O THONGT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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