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리 논란]①점점 커지는 압력
"합리적 체계 마련" vs "기밀까지 밝히라니"
올들어 금융당국의 연이은 압박에 대출금리를 인하한 은행들에게 추가적인 압력이 더해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영업비밀중 하나인 금리산정체계를 들여다 보겠다는 의중을 내비치면서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행보에는 은행들이 '이자'를 통해 쉽게 돈을 벌고 있다는 시각이 자리잡고 있다.
은행권은 관치금융을 넘어 '관치금리'라고 지적한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등 지표금리 변화를 무시하고,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연이은 압박, 떨어지는 대출금리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및 수수료 담합 여부 조사를 시작했다. 금리 산정 과정에서 담합이 있었는지 여부를 들여다 보겠다는 취지다. 은행들은 사실상 금리인하 여력을 보려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공정위만 나선 것이 아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대출금리가 치솟자 은행들에게 '상생'을 요구하며 대출금리 인하 압박을 가해왔다.
특히 지난달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공개하자 추가 금리인하 압박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상생 금융 확대를 위한 금융소비자 현장 간담회'이후 기자들과 만나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날 신용대출·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등의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KB국민은행 고객의 이자부담이 약 1000억원 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다른 은행들 역시 이에 동참할 것을 주문했다. 이 원장은 "KB국민은행의 지원방안 발표가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라며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형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압박에 주요 은행들의 가계대출 금리는 하락세다. 지난달 초만 하더라도 5대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6.89%로 7%에 근접했지만 최근에는 6.5% 아래로 떨어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추가 인상 여지를 남겨뒀다는 점, 시장금리는 이를 선반영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시장의 흐름과는 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은행 관계자는 "최근 대출금리 조정은 각 대출상품의 벤치마킹 금리의 흐름과 동시에 금융당국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 원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현재 금리 합리화 방안 등에 대한 검토가 진행중"이라며 "이는 합리적인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차원으로 기준을 잘 정해야 한다"라고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SVB사태, 한 숨은 돌렸지만
최근 대출금리 수준은 은행들에게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 파산의 여파로 한 숨은 돌리게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압력이 낮아졌고 이에 따라 은행 대출의 준거 금리인 채권금리가 일제히 하락세로 돌아서면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역시 당분간은 기준금리 결정에 여유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앞서 대출금리를 내렸던 것이 일종의 '선제적 대응'이 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다만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의 분위기는 더 강해지고 있다. 가산금리 산정체계까지 거론되는 모양새다.
은행들은 대출금리 산정시 조달자금 금리(기준금리)를 기본으로 고려해야 하는 요건을 반영한 가산금리를 더한다. 인건비나 각종 비용, 위험에 따른 부담금 등을 종합한 일종의 수수료다.
은행들의 가산금리 산출 방식은 핵심 기밀사항이다. 가산금리 산출 방식이 공개되면 은행의 비용 및 리스크 관리 등에 대한 핵심 경영사안을 역으로 산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은행의 가산금리 인하 여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내용이 담긴 '은행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은행 고위 관계자는 "법을 개정하면서 까지 은행들의 영업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시장논리에 맞지 않다"라며 "은행권에게 상생을 요구하면서 기본적인 경쟁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침해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당국의 개입이 점점 심해지자 이같은 접근이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합리적인 금리산정을 위한 정책 동향 및 쟁점' 보고서를 통해 "금리산정체계에 대한 정책개입은 대출시장이나 은행 경영자율성에 미치는 영향 및 은행의 수익성과 사회적 책임간 균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과다한 이자부담으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면서도 은행의 경쟁력 강화를 함께 도모할 수 있도록 금리산정체계 개선 논의가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경남 (lk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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