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에 100만원”... 회장님들의 화장품 사랑 ‘쉽지 않네’
공룡 백화점 판로 확보했지만 수익까진 첩첩산중
“기초화장품은 고관여 상품…웬만해선 바꾸지 않아”
정지선 회장의 ‘오에라’, 정유경 총괄사장의 ‘연작’. 오에라와 연작의 공통점은?
두 브랜드의 공통점은 여럿이다. 회장님이 꽂힌 화장품 사업인 데다가 국내 여심을 겨냥한 기초화장품 라인이라는 점, 여기에 백화점이라는 막강한 유통채널을 갖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뼈아픈 공통점도 있다. 아직 회사에 이익기여를 못하는 상품이라는 점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두 화장품의 부진이 기초 화장품이라는 특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초 화장품은 한 번 쓰기 시작한 상품을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 고관여 제품이라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판로가 있고 공들여 마케팅을 하더라도 소비 패턴을 바꾸기 정말 어려운 상품이 기초화장품”이라면서 “차라리 색조화장품으로 접근했다면 단기간에 경영실적을 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 정지선의 야심작 오에라… “적자 벗어나기 쉽지 않네”
현대백화점 그룹 패션 계열사인 한섬이 한섬라이프앤을 앞세워 화장품 시장에 뛰어든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섬은 2020년 5월 한섬라이프앤(옛 클린젠코스메슈티칼) 지분 51%를 100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한섬의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섬라이프앤의 분기 순손실은 34억1857만원을 기록했다. 2분기 손실액(44억4146만원)보다는 줄었지만 수익선을 여전히 넘지 못했다.
한섬라이프앤의 대표 브랜드는 ‘오에라(Oera)’. 오에라는 한섬이 작심하고 만든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다. 오에라의 주요 제품 가격은 20만~50만원대다. 최고가 제품은 시그니처 프레스티지 크림(50mL)으로 120만원대다.
한섬에선 오에라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야심작이라고 부른다. 1987년 창립해 패션 외길을 걸어온 한섬이 패션 사업에 편중된 사업구조 다각화를 위해 처음으로 한 눈을 판 사업분야이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은 한섬이 쌓아온 패션 사업 노하우를 화장품 사업에 접목시키고 현대백화점 판로를 앞세워 빠르게 시장 장악에 나선다는 것이었다.
한섬은 사업보고서에서 “타임(TIME)이나 마인(MINE) 등(을 즐겼던 소비여력이 높은) VIP 고객 풀을 활용하여 럭셔리 뷰티 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현대백화점 본점·무역센터점·판교점, 더한섬하우스 광주점·부산점, 오에라 청담 애비뉴점 등에 입점하면서 판로를 넓히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소비자 반응은 크지 않다.
하누리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섬은 여러 장점이 있는 기업이지만) 주가가 단기간에 상승 반전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경기 위축 우려가 있는 데다가 신사업 투자(화장품)가 수익성을 훼손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수입 화장품 안착 노하우 있어도… 정유경의 연작은 부진
사실 화장품 사업에 가장 먼저 뛰어든 패션회사는 신세계인터내셔널이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은 2012년 색조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를 인수하며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출시 5년 만인 2017년에 흑자전환했다.
흑자전환의 일등 공신은 비디비치. 2014년부터 선보인 해외 럭셔리 브랜드 산타마리아노벨라, 딥디크 등도 흑자전환에 가세했다.
하지만 2018년 자체 신규 화장품 브랜드 ‘연작’의 실적은 아직 자랑할 수준이 못 된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신세계 인터내셔널 화장품 부문에서 연작이 속한 국내 자체브랜드의 올해 3분기 영업손실은 67억원이다. 1분기(-43억원), 2분기 (-54억원)에 이어 꾸준히 적자를 보고 있다.
정지윤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화장품 부문의 이익률은 약 5% 수준인데 해외 브랜드의 경우 이익률도 높고 성장세도 가파랐지만 자체 브랜드인 연작이나 뽀아레 등은 이익률이 전분기보다도 떨어졌다”고 했다.
연작은 한방 성분을 원료로 썼고 자연주의 화장품을 지향하는 기초 라인이다. 기획부터 제조까지 신세계인터내셔널이 모든 과정을 준비한 첫 화장품 브랜드로 그만큼 공들여 제작했다.
이탈리아 화장품 제조사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화장품 제조 기술력을 보유한 인터코스그룹의 소재 연구소인 비타랩과 기술제휴를 해 전 제품을 생산했다.
토너, 에센스, 크림 등 스킨케어 제품과 임산부 및 아기를 위한 제품 등으로 구성됐고, 가격대는 클렌징 상품이 3만~4만원대, 에센스와 크림은 10만원대다.
◇ 패션사가 자체 화장품 출시하는 까닭은... “마진, 반복구매율 높아”
패션업체들은 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것일까. 그 중에서도 토종 기초 화장품 출시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화장품이 패션보다 마진과 반복 구매율이 높다는 점을 꼽았다.
예컨대 ‘타임만 입는다’는 소비자를 만나기 쉽지 않지만 화장품의 경우 한번 설화수 에센스를 바르고 피부에 좋다고 느끼면 앞으로 설화수만 쓰게 된다는 것이다.
박종대 하나증권 전 연구원(현 우리밀 대표)은 “그래서 화장품이 의류·패션보다 반복 구매율과 시장점유율이 더 높다”면서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국내 화장품 시장점유율은 각각 10%를 훨씬 넘지만, LF와 한섬 등 국내 5대 의류회사의 시장점유율을 합쳐 봐야 10%가 조금 넘는 이유”라고 했다.
화장품 수입에 그치지 않고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 이유는 이익률 때문이다. 화장품과 의류는 대표적으로 이익률이 높은 업종이다. 옷의 원가율은 통상 25~35% 정도인데 화장품의 원가율은 20~30% 수준으로 옷보다 5%포인트 더 낮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화장품은 한번 소비자의 인식에 자리 잡으면 이익을 많이 누릴 수 있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패션회사 대표들이 자체 화장품 론칭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자리잡기까지가 어렵다는 점을 늘 간과한다”고 했다.
화장품 론칭을 하고 쉽게 이익을 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기는 쉬운 반면 자리잡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형 백화점을 우군으로 판로를 확보해도 그렇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일단 어떤 화장품에 정착한 소비자는 피부에 이상을 느끼는 정도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웬만해선 상품 구매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면서 “특히 색조가 아닌 기초일수록, 저가가 아닌 고가일수록 그렇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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